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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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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이 없다는 청와대, 과연 그럴까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특징 하나는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도 그랬고, 유우성 간첩 증거 조작 사건도 그랬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다 국무총리나 장관이 대신 사과하거나 여론이 불리하다 싶으면 그 때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는 관행이 생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은 해당 사고나 사건의 제3자 입장에서 정치권으로 모든 문제의 화살을 돌리기 일쑤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국가적 사고나 사건 때마다 머리 숙여 사과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이런 덕에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 국민적 신뢰를 잃으면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총리만 사과했을 뿐 대통령은 '어린 학생들이 수학여..
플라톤도 강조한 선장의 윤리와 의무 국가론/플라톤/BC 380년(추정)/최현 옮김/집문당 펴냄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과 함께 직업윤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수 백 명의 승객들을 침몰중인 배에 남겨둔 채 가장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은 그야말로 분노의 대상이자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언론에 의해 공개된 선장을 포함한 세월호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검경 수사합동본부의 수사 내용은 한 명의 지도자 또는 지도층의 무사안일과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세월호 갑판부·기관부 등 선박직 직원들은 세월호 침몰 당시 선원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해 한꺼번에 탈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세월호에 승선한 선원은 모두 24명으로 이중 갑판부·기관부 등 선박직 ..
버큰헤이드호와 세월호, 이렇게 달랐다 영국 해군 수송함 버큰헤이드(Birkenhead)호가 군인들과 가족들을 태우고 항해하고 있었다. 전체 승선 인원은 630명으로 이 중 130여 명이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순항하던 버큰헤이드호에 비상 상황이 일어난 때는 모든 승객들이 잠든 1852년 2월 26일 새벽 2시였다. 버큰헤이드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 케이프타운으로터 140km 떨어진 해상을 지날 때 암초에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잠에서 깨어난 승객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게다가 버큰헤이드호가 구비하고 있던 구명보트 정원은 승선 인원에 턱없이 모자란 180명에 불과했다. 이런 혼란 속에 버큰헤이드호의 함장은 병사들을 갑판 위에 집합시킨 뒤 부동자세를 취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구명보트에는 여자와 아이들을 태웠다. 병사들은 그대로 부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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