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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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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농, 현진건의 설렁탕이 떠오르는 건 인력거꾼 김첨지는 그날 따라 운이 좋았다. 님이 줄을 잇고 자신의 구역이 아닌 곳에서도 손님을 태웠다. 그야말로 행운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운에도 불구하고 김첨지에게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아내는 열흘째 아파 누워 있었고 세 살배기 아이는 아픈 엄마 젖이나 빨며 굶주리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아내는 아침에 일을 나서는 그를 말리기까지 했다. 소설에서 불길한 예감은 늘 틀리는 법이 없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고주망태가 된 김첨지는 집으로 갔다. 불길한 예감을 애써 지우려는 듯 누워있는 아내를 일부러 걷어 차보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보지만 아내는 이미 주검이 되어 있었고 아이는 죽은 엄마의 빈 젖을 빨다 지쳐 탈진해 있었다. 김첨지는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며 푸념을 한다. “ 설..
<책 소개>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천명관 지음/창비 펴냄 천명관은 그 이름 자체로서 힘이 넘치고 독자를 유쾌하게 만드는 작가이다. ‘희대의 이야기꾼’으로서 등단 이후 꾸준히 ‘폭발하는 이야기의 힘’을 선보여온 작가 천명관이 7년 만에 두번째 소설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선보인다. 풀리지 않는 인생, 고단한 밑바닥의 삶이 천명관 특유의 재치와 필치로 살아나는 여덟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여전히 웃음이 나면서도 어느 순간 가슴 한구석이 턱, 막히는 먹먹한 감동을 얻게 되고 그 여운은 진하게 오래 남는다. 그사이 천명관의 유머에는 따뜻한 서정과 서글픈 인생에 대한 뜨거운 위로가 더해졌고, 통쾌한 문학적 ‘한방’은 더욱 강렬해졌다. ‘고귀하게’ 태어났지만 처연하게 객사해 중음을 떠도는 ‘죽은 자’의 이야기(..
설렁탕 한 그릇 못 먹고 떠난 아내 현진건의 /1924년 대학시절 학교와 자취집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늘 궁금하게 쳐다보던 안내표지판이 하나 있었다. 버스가 제기동을 지날 즘 언뜻언뜻 스치는 ‘선농단’.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 성격도 아닌 데 유독 ‘선농단’이 무엇인고 궁금했던 건 근처 식당을 한 번 들른 후였다. 무심히 설렁탕을 주문하고 차림표를 봤는데 ‘설농탕’만 있을 뿐 ‘설렁탕’은 없었다. 주인이 이르기를 같은 음식이라 했다. 그 집을 나오고 둘러보니 ‘설농탕’이라는 글자가 솔솔찮게 눈의 띄었다. 어째 ‘선농단’과 ‘설농탕’에는 깊은 인연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선농단은 조선 태조때부터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고대 중국인들에게 농사를 가르쳤다고 알려진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고 한다.이 때 임금은 손수 밭을 갈고 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