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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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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왜 탈출을 꿈꾸는가 산/이효석(1907~1942)/1936년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산업화는 섬유나 의류봉제공업 등 경공업을 중심으로 본격화되었다. 경공업이 발전하기 위한 핵심은 충분한 인력 공급이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농촌은 산업화 시대 도시에 생긴 국가공단의 주요 인력 공급처였다. 너나 할 것 없이 도시로 떠났다. 도시 변두리가 농촌에서 올라온 젊은이들로 넘쳐나는만큼 농촌은 노인들과 빈집들만이 늘어났다. 산업화라는 명목으로 농촌은 국가정책으로부터도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더 이상 농촌 마을에 내걸린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깃발이 아니었다. 농촌경제는 그야말로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고 전통은 구시대 악습 취급을 받았다. 더..
'허벌나게'와 '허천나게', 어느 쪽이 맞는 표현일까 이문구(1941년~2003년)의 소설 는 1970년 『월간중앙』제31호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이문구의 소설이 그렇듯 도 맛깔스런 충청도 방언이 읽는 재미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방언이 점점 사라져가는 요즘 독자들이 읽으면 문맥을 파악하는데 다소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 소설이다. 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초 충청도의 어느 농촌이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소외되어가는 농민들이 겪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황구만과 박선출은 주인과 머슴 사이지만 박선출이 입대하면서 둘 사이는 채무자와 채권자 관계가 된다. 그러나 박선출이 군에 있는 동안 황구만은 다른 사업에 투자해 실패하면서 박선출은 이자는커녕 원금도 못 받게 된다. 이즈음 5.16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농어..
한국에도 표범이 살았다 한국의 마지막 표범/엔도 키미오 지음/정유진,이은옥 옮김/이담북스 펴냄 살짝 비탈진 마당과 기울어진 듯한 기와지붕의 작은 집. 돌을 쌓아 점토로 굳힌 허리 높이의 토대가 집을 받치고 있었다. 마당에서 보이는 격자문의 창호지는 찢어져 있고, 구멍 난 흙벽은 감색 종이로 막아 붙여 놓았다. 집 측면에 위치한 아궁이 입구는 온돌에 불을 지피는 곳이라 검게 그을려 있었다. 호랑이와 표범이 부부라고 믿고 있었던 순박한 부부가 이 가난한 산골 집의 주인이었다. 남편인 홍갑씨는 젊었을 적부터 사냥을 즐겼는데 총은 사용하지 않고 철사를 말아서 만든 올무만으로 노루나 멧돼지, 꿩 등을 잡았다. 그 해 겨울도 홍갑씨는 올무를 설치해 놓은 뒷산에 올랐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홍갑씨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돌아와서는 소리..
현대인에게 타인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홍의 부고/조해진/2012년 급격한 산업화와 현대화의 길을 걸었던 1970년대 일본에서는 외부와 연락을 단절한 채 집에만 틀어박혀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텔레비전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나친 자학증세나 우울증 증상을 보이기도 했으며 부모 의존적인 일상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런 젊은이들의 독특한 생활태도는 1990년대 들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2000년대 들어서는 노령화와 함께 심각한 노동력 부족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히키코모리'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번역해도 결코 낯설지 않은 용어, '은둔형 외톨이'가 바로 히키코모리이다. 현재 약 2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일본의 히키코모리가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도 시..
전성시대가 없었던 영자의 전성시대 영자의 전성시대/조선작/1973년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최근 영국에서는 비싼 등록금 때문에 성매매에 나선 여대생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해외토픽을 본 적이 있다. 덧붙여 영국뿐만 아니라 많은 전세계 젊은이들이 생활고로 인해 섹스산업과 관련된 일에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느낀 건 비단 필자의 생각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열정적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 젊은이들이 등록금에 발목이 잡히고 생활고를 이기기 위해 옷을 벗어야 하는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뉴스 가치가 없어진 지 이미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고 중년들은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전전긍긍하고 노인들은 폐지라도 주워야지 생활이 가능한 나라. 소비는 해마다 줄어든다는데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
독재와 맞짱뜬 <난쏘공> 연작의 첫번째 소설 뫼비우스의 띠/조세희/1976년 "미래가 깜깜하다. 난쏘공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철거촌의 상황은 오히려 그 때보다 더욱 심각해졌다." 2009년 1월 '용산 참사' 현장을 찾은 조세희 작가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참담한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1970년대 도시 재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강제로 쫓겨난 도시 철거민들의 아픔을 그리 소설 (이하 난쏘공)의 저자 조세희 작가는 우리 사회에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벼랑 끝에 세운 경고 표시가 바로 이었는데 갈수록 추락을 반복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조세희 작가는 또 선진국 운운하면서 여전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군대의 총만이 폭력이 아니며 배고파 우는 아이의 울음을 달래지 않고 그냥 두는 것도 폭력이다. 살게 ..
고달픈 서민들의 이상향 삼포를 아십니까 삼포 가는 길/황석영/1973년 마당 앞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온갖 채소들로 가득한 뒤뜰을 나지막한 산이 내려다보고 아이의 눈과 같은 높이로 서있는 언덕배기에는 누렁 송아지와 강아지가 한가로이 술래잡기 하는 곳. 반나절에 한 번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주름진 노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흐르고 굽이굽이 힘든 줄 모르게 고개를 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해가 내려앉은 곳. 질흙 같은 어둠 속에서도 이야기가 새어 나오는 곳. 누군가에게는 빛바랜 사진 속 풍경일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마음 속에 고이고이 담아둔 꿈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천박스럽다고 하지만 로또 한 장에 일주일이 희망인 서민들의 꿈은 소박하다. 아니 고달픈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민들의 꿈은 얕아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대..
의좋은 형제는 왜 도둑이 되었을까 오유권(1928년~1999년)의 /1963년 가난하지만 의좋은 형제가 있었다. 봄에는 같이 모내기를 하고 여름에는 함께 풀도 뽑았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프다는 속담도 있건만 이 형제에게는 예외였나 보다. 형제는 가을이 되자 넉넉하지는 않지만 무사히 추수를 끝냈다. 추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형과 아우는 서로의 비루한 처지를 생각하며 몰래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모두가 잠든 밤, 형은 자신의 볏단을 아우의 논에 옮겨놓고 아우는 아우대로 자신의 볏단을 형의 논에 옮겨놓는다. 귀신이 곡할 노릇도 아니고 밤마다 볏단을 날랐음에도 불구하고 볏단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형제는 어느날 밤 논 한가운데서 마주치고 그동안 벌어졌던 일에 대해 알게 된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