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부

(12)
입영통지서는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최상규(1934~1994)의 /「문학예술」14호(1956.5) 306보충대에 입소하는 날 아침 머리를 깎았다. 그날만큼은 촌스럽다며 발길을 끊은지 오래된 이발소를 찾았다. 이발소여야 했다. 거울에 비친 나의 마지막 얼굴(?)을 그토록 유심히 바라본 적은 없었다. 애써 웃어보지만 거울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흰옷의 정체가 이내 몸을 얼게 하고 말았다. 바리깡이 쓸고간 자리는 횡하니 신작로가 생기고 한움큼씩 바닥에 떨어진 나의 자화상은 불에 그을린 듯 새까만 잔디밭이 되었다. 거울 속의 낯선 그는 왈칵 눈물이라도 쏟을 듯 나를 애처로이 바라보았다. 나도 그를 슬피 바라보았다. 흑백필름이라도 돌리는 것일까? 길지 않은, 결코 순탄했던 그의 인생이 얼키성키 가시밭처럼 거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이 앞에는 ..
두 번 결혼한 여자 [20세기 한국소설] 중 김유정의 『산골 나그네』/「제일선」11호(1933.3)/창비사 펴냄 몹쓸 병에 걸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남편과 그 남편 곁을 묵묵히 지켜주고 있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병은 더욱 깊어가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약 한재 지어 먹일 수 없는 빠듯한 살림이었으니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어쩔 수 없이 아내는 남편을 데리고 이 동네 저 동네 찾아 다니며 걸식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동네 부잣집에서 마누라를 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마도 씨받이가 아니었나 싶다. 아내는 그 부잣집을 찾아가 남편을 살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첩으로라도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 부잣집에서는 근처에 남편이 기거할 수 있는 움막을 지어 주고 아내를 첩..
그들은 부부로 살기위해 달콤한 거짓말을 한다 달콤한 작은 거짓말/에쿠니 가오리 지음/신유희 옮김/소담출판사 펴냄 여기 결혼 3년차 부부가 있다. 테디 베어 작가인 루리코와 자동차 보험 계약담당 사원인 사토시가 그들이다. 루리코는 남편 사토시보다 두 살이 많다. 그들은 부부로 살기위해 오늘도 달콤한 거짓말을 한다. 뭐가 그리도 달콤하고 왜 그들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독일 시인 하이네(Christian Johann Heinrich Heine, 1797~1856)의 말처럼 그들은 일찍이 어떤 나침반도 항로를 발견한 적이 없는 거친 바다를 항해중이다. 그들은 안전하게 항해를 마치고 항구에 도착할 수 있을까? 솔라닌과 바꽃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달콤한 작은 거짓말]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가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소설의 진행에 긴장감과 ..
[주홍글씨]를 통해 본 간통제 폐지 논란 "자기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마땅히 겪어야 할 고행이려니, 참고 견디어야 할 종교려니 하고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참고 견디던 그녀가 이 괴로움을 승리로 바꾸려고 마지막으로 단 한번만 더 자진해서 고행을 맞이했다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었다. ' 주홍글씨와 그것을 단 사람을 마지막으로 보세요!' 사람들의 희생자요 평생의 노예로 여겼던 헤스터는 말했을 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그녀는 당신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갑니다. 몇 시간 후에는 당신네들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불타게 만들었던 주홍글씨를 저 깊고 신비한 바다가 영원히 감추어버릴 겁니다.! 자신의 인생과 깊이 얽혔던 고뇌로부터 해방되려던 순간에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서운함을 느꼈으리라는 추측이 인간성에 아주 어긋나는 추측은 아니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