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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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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레와 김지하, 두 시인의 같은 듯 다른 삶의 이유 존재의 형식/방현석/2002년 “문재인 지지하는 48%는 국가전복세력이고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이다.” 어느 극우주의자의 발언 같지만 안타깝게도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유신독재투쟁의 상징적 존재였던 김지하 시인이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그를 두고 누구는 화합을 위한 변신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역사를 부정한 변절이라고도 한다. 변절을 밥 먹듯 하는 정치의 계절에 변신과 변절의 차이가 백지장보다 얇다고 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타는 목마름을 호소했던 김지하 시인의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신이든 변절이든 당사자에게는 그만의 변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변화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높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
비상을 꿈꾸는 당신, 중력과 맞서 싸워라 산타페로 가는 사람/김승희/1994년 F =Gm1m2/R2 F: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 G: 중력상수, m1,m2: 두 물체의 질량, R: 두 물체 사이의 거리. 물이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고, 물체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은 만고의 진리였다. 근거는 없지만 종교적 믿음과 다를 게 없었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급한 과학적 영감을 얻기 전까지는. 그것은 바로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중력 때문이었다. 김승희의 소설 전편에서 독자는 '중력'의 압박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한편 '중력'의 압박은 '비상'이라는 탈출구를 향해 젖먹던 힘까지 쏟아내게 한다. 의 대결구도는 '중력'과 '비상'이다. 저자가 양자의 대결구도를 통해 힘겹게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
창랑정에서 바라본 한강은... 유진오의 /「동아일보」(1938.4.19~5.4) 유진오의 는 그가 동반작가에서 친일로 변절하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묘한 여운을 남겨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창랑정'에 얽힌 유년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이다. '창랑정'은 흥선대원군 시절 누구보다 맹렬하게 서양 오랑캐를 물리치자고 주장하던 서강대신(나의 삼종 증조부)이 그 뜻이 좌절되자 벼슬을 포기하고 말년을 보낸 정자 이름이다. 저자는 이 창랑정에 얽힌 두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향수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밝히고 있다. 하나는 서강대신의 쓸쓸한 죽음과 뒤이은 몰락한 가족사다. 몰락한 가족사는 서강대신의 신념과도 연결된다. 강력한 쇄국정책을 지지했던 서강대신에게 근대적 신식교육은 신념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고 종손인..
지식인이라고 다 지성인이 아니다 유진오의 /「신동아」39호(1935.1) 가 발표된 1935년 식민지 조선은 그 어느 때보다 일제의 사상탄압이 극심하던 시절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카프 맹원에 대한 검거 열풍이 있었고 문화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조선의 전통적 가치관은 황국신민의 지위를 강요받고 있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많은 지식인들 특히 문학인들은 조선 청년들을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데 그들의 지식을 아낌없이 동원하곤 했다. 자발적이었건, 강요되었건 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에는 지식인만 넘쳐날 뿐 지성인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시국이 되고 말았다. 의 저자 유진오가 문학인보다 정치인으로 더 기억되는 데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문학에 심정적 지지를 보냈던 동반작가로도 활동했던 유진오는 1939년 잡지「삼..
'민촌' 쥐는 쥐인 척 해야 제격이다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기영의 『민촌』/「조선지광」50호(1925.12)/창비사 펴냄 "쥐는 쥐인 척하는 것이 오히려 제격에 들어맞는 법이다. 작자는 여실하게 부르조와 연애소설이나 쓰던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비위에 맞는 강담소설이나 쓸 것이지 아예 이와 같은 무모한 경거망동의 만용은 부릴 것이 아니다. 아무리 관념론자이기로 이만한 이해관계는 구별할 만한 두뇌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사람이 있다면 가슴을 쓸어내려도 될 듯 싶다. 그대가 아니니 안심해도 좋다는 말이다. 쥐이면서 쥐가 아닌 양 행세한다는 이는 다름아닌 춘원 이광수이기 때문이다. 조국해방을 황국신민이 못된 아쉬움으로 토로했던 뼛 속까지 친일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로 추..
왜 일본은 이광수에게 조선예술상을 주었을까? 이광수의 /1917년 김동인의 소설 『태형』이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비인간성을 묘사하고 있다면 이광수의 소설 『무명』은 동일한 감옥이지만 일반 감옥이 아닌 병감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탐욕과 폭력을 그려내고 있다. 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여기서 무명은 빛이 없는 세상(無明)으로 닫힌 극한의 세계를 의미한다. 내용은 이렇다. 병감에는 작중화자 '나'를 비롯해 공문서 위조단의 공범 윤씨와 방화범 민씨, 설사병 환자 정씨, 신문지국 기자로서 부자와 과부 며느리의 불륜을 폭로하겠다는 댓가로 금품을 뜯어낸 강씨 그리고 또다른 방화범 간병부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비방하며 알수없는 자존감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를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