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나트

(3)
이슬람 이전 고대 페트라의 여신들 요르단 남서부 내륙의 사막지대에는 페트라라는 고대도시 유적이 있다. 해발 950미터 고원 바위산에 조성된 도시이다. 페트라는 향료무역으로 이 일대를 장악했던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고대 도시이다. 좁을 골짜기를 따라 극장, 목욕탕, 상수도 시설 등이 갖춰진 모습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신비한 나바테아 문명은 2세기경 이곳을 점령한 로마가 교역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급속한 쇠퇴의 길을 걷다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도시 전체가 흙으로 묻혔다. 지금의 모습은 19세기 초반에 발굴되었다. 그렇다면 산악 지대에 도시를 건설한 나바테아인들은 어떤 신들을 숭배했을까? 특히 이슬람 이전 이곳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여신들이 있었다. 알라트Al-lat, 마나트Manat, 알웃자Al-‘Uz..
마나트 이름으로 하는 맹세는 절대불변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 신화에서 마나트Manat는 믿음과 죽음의 여신이었다. 그녀의 숭배 장소는 야트리브(훗날 메디나) 근처의 알-무샬라 신전에 보관된 크고 어두운 대리석이었다. 마나트는 두 야트리브 부족의 지도자 여신이었다. 이 부족들은 바누 아와스와 바누 알-카즈라이였다. 그녀는 또한 서부 아라비아 반도의 히자즈 부족과 북부의 나바테아인 사이에서도 숭배되었다. 이 부족들의 몇몇 구성원들은 신전을 순례했다. 마나트는 알라가 낳은 세 자매 여신(마나트, 알라트, 알웃자) 중 나이가 가장 많았으며 아라비아반도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신이었다. 마나트의 배우자는 천둥의 신 쿠자였다. 나바테아, 케이샤, 타라하, 두샤라 부족들에게 마나트는 무덤과 묘지의 수호신이었다. 아나트의 또 다른 이름은 마나와야트로 그녀의 ..
무지(無知) 논쟁과 운명의 여신 마나트 아랍어에 자힐리야(Jahiliya)란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무지(無知)’에 불과하지만 아라비아 또는 이슬람 역사에서 자힐리야는 단순한 무지를 넘어선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AD 610년 이전을 자힐리야 시대라고 한다. 즉 무함마드(Muhammad, 570~632)가 알라(Allah) 신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창시한 610년 이전을 ‘무지의 시대’로 규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힐리야는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나오게 되었을까?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창시하기 전 아라비아 반도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부족들은 저마다의 신을 섬기고 있었다. 다신교 사회였던 아라비아에도 신 중의 신은 있었다. 바로 알라(Allah)였다. 최고신으로써 알라에게는 세 딸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웃자(Uz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