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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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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는 배설할 권리마저 없었다 백신애의 /1934년 백신애는 1929년 박계화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가 당선되어 등단한 여류 소설가다. 30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녀가 소설로 말했던 가난과 여성의 문제는 짦은 생을 무색케할 만큼 긴 여운을 남긴다. 백신애는 여성동우회와 여자청년연맹 등에 가입해 계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의 소설들에서 보여주는 리얼리즘도 직접 대중 속으로 뛰어들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백신애의 소설은 경향파적 성격이 강하지만 경향문학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살인이나 방화 등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여성의 섬세한 필치로 서민대중의 궁핍한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34년 발표한 은 백신애 소설의 가장 큰 주제라 할 수 있는 빈곤과 여성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
지나치게 솔직한, 그래서 더욱 매력있는 백운거사 수필가 피천득은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형식이라고 했다. 덧붙여 필자가 가고 싶은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지만 차를 마시는 것과 같이 차가 그 방향을 가지지 아니 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 또한 수필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비문학인이 가장 쓰기 쉬운 게 수필인듯 하면서도 일정부분 정형성을 띠고 있는 시나 소설에 비해 일정한 틀이 없기에 더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이 수필이라는 의미같아 더 난해해 지는듯 하다. 수필이 그 쓰는 사람의 가장 솔직한 내면을 보여주는 문학형식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글을 타인이 읽는다고 생각하면 아름답게 포장하고픈 유혹을 떨쳐버리기 힘든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더욱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만 한다면 말이다. 범우사에서 출판한 『돌과의..
손자병법, 병법서로만 보지마라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명장으로 연합국 사령관을 지냈던 몽고메리가 1961년 9월 중국을 방문해 모택동을 만난 자리에서 전 세계 군사 아카데미와 사관학교의 교재로 삼자고 제안한 고전이 있다. 바로 손무(BC535년~BC480년)의 이다. 우리에게는 손자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 세계적인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몽고메리가 왜 하필 수많은 병법서 중에서 2,500년이나 지난 을 그렇게 극찬했을까? 에는 전쟁에서 이기는 모든 수단과 방법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을 송두리째 내놓아야 하는 전쟁은 피하는 게 최상책이다. 그러나 일단 어떤 형태로든 전쟁이 시작되었다면 이기는 것이 미덕(?)이다. 윤리를 논하고 도덕을 논하는 공자와 노자가 평시에 위대한 사상가라면, 전시에는 손무만한 위대한 사상가도 없다. 승리..
장례식장에 울려퍼진 메이데이의 노래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북명의 『질소비료공장』/「분가꾸효오론」(1935.5)/창비사 펴냄 이북명의 소설 『질소비료공장』은 그가 흥남비료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1932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질소비료공장』은 연재 도중 일제의 검열로 중단되기도 했으나 한국 프로 문학의 대표 작품으로 인정받아 일본이나 중국에 번역 소개되기도 했던 소설이다. 창비사에서 발굴 소개한 『질소비료공장』의 출처가 일본의「분가꾸효오론,文學評論」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해방 후 이북명은 조선플롤레타리아문학동맹에 가담했고 이 후 북한에서도 문화계 요직을 두루 거친 북한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일제의 사상탄압으로 중단되었던 연..
전향 때문에 애인을 배신한 남자 [20세기 한국소설] 중 김남천의 『경영』/「문장」19호(1940.10)/창비사 펴냄 앞서 김남천의 소설 『처를 때리고』에서 어느 전향 지식인의 현실과 타협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김남천 또한 일제의 사상탄압의 와중에 전향서를 쓰고 병보석으로 풀려났다는 점도 살펴 보았다. 김남천의 전향은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위장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김남천이 전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1940년 「문장」지에 발표된 『경영』이다. 사회주의 운동으로 수감중인 오시형, 양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시형을 헌신적으로 보살펴 온 애인 최무경, 이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김남천은 이들의 사랑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려 했을까? 비록 보호관찰이기는 하지만..
어느날 당신에게 10억이 생긴다면 강경애의 /1935년 아무리 '통큰○○○'이 유행이라지만 1억원도 아니고 10억원 이라니 통이 커도 너무 크다. 사실 어느 때부터인지 액수만 있을 뿐 형체도 없는 돈의 가치가 저잣거리 필부의 술안주가 되어버렸다. 허상에 불과한 돈의 가치는 팍팍한 우리네 삶을 그 액수만큼의 무게로 짓누르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도 10억원이라면 아무리 돈의 가치가 아무리 땅에 떨어진 오늘이라도 결코 만만하게 볼 금액은 아니겠지 싶다. 어느날 당신에게 10억원이 생긴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먼저 힘들었던 과거를 들추어내어 내게 들어온 10억원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 들 것이다. 변변한 도시락 하나 챙겨갈 형편이 못되어 맹물로 허기진 배를 채웠던 학창시절, 양초가 타들어가는 것 처럼 고단한 몸 녹초가 되도록 밥먹듯 반복했던..
어느 전향 남편의 아내 폭행사건 전말 [20세기 한국소설] 중 김남천의 『처를 때리고』/「조선문단」속간11호(1937.6)/창비사 펴냄 작가 김남천은 1차 사상탄압 당시 검거되어 카프작가로는 유일하게 본심에 회부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남천이 피검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문학활동 때문이 아니었다. 1931년 있었던 ‘공산주의자 협의회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카프 작가들 사이에서는 전향론이 제기되기에 이른다. 김남천도 얼마 후 위장 전향이니 진짜 전향이니 논란 속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는데 이 사건 이후 김남천은 임화와 함께 카프 해산계를 제출함으로써 민족주의 진영의 순수문학론에 반발해 문학의 현실참여를 주장했던 카프 작가들의 조직적인 활동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사라지게 된다. 김남천의 소설 『처를 때리고』..
체 게바라는 왜 콩고로 갔을까? 혁명, 열정, 이상주의의 상징인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였다. 그는 입을 열 때마다 ‘체(che)'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체 게바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완성한 게바라는 쿠바 중앙은행 총재, 기업 국유화와 토지개혁 단행 당시 공업부장, 쿠바를 소련의 핵무기 계획에 포함시키는 협정의 쿠바 협상대표 등을 역임했으나 1965년 4월 갑자기 쿠바를 떠났다. 수개월 후 모습을 드러낸 게바라는 콩고에서 무장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왜 모든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혁명에 다시 뛰어들었을까? 역사는 미스터리이다. 이 미스터리가 아니었다면 인류의 운명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인류의 삶을 지배해 온 전쟁의 역사에서 영웅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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