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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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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홍 사과로 떠올린 1894년과 1991년 그날 1894년 프랑스 육군 대위였던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군중들의 야유를 받으며 악마의 섬으로 유배당했다. 당시 프랑스 군부가 제출한 유일한 증거는 스파이가 남긴 편지 글씨였는데 드레퓌스와 필체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드레퓌스를 되살린 사람은 의 작가 에밀 졸라였다.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신문에 기고해 독일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유배당한 드레퓌스는 결백하다는 것과 프랑스 군 고위층이 범죄를 은폐했다는 것을 폭로했다. 당시 에밀 졸라는 비난 여론에 못이겨 런던으로 망명해야 했지만 결국 프랑스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드레퓌스는 12년만에 무죄판결을 받고 누명을 벗었다. ▲에밀 졸라(1840년~1902년, 프랑스) 1..
세 남자가 사냥으로 깨달은 철학적 의문 셋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김연수/2001년 1980년대와 1990년대 대학가 풍경은 누가 봐도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에 대한 성취감과 치열했던 민주화 투쟁에도 불구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지 못했던 좌절감이 혼재된 시대였고 새로운 신세대 문화가 태동하는 시기였기에 1990년대 대학가는 집단주의보다는 개인주의가 서서히 싹트는 시기였다. 한편 1980년대와 달라진 1990년대 대학가 풍경은 필자가 새내기였던 1992년을 기점으로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는 게 좀 더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1991년에 발생했던 많은 정치적 사건들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민주진영의 분열로 6월 항쟁 이후 다시 정권을 잡게 된 노태우 군사 정권이 집권 4년차로 접어들면서 공안통치의 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