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결혼

(23)
목적이 상실된 현대인의 초상 이상한 정열/기준영/2013년 세족식(洗足式, 카톨릭 교회 의식의 하나)이 열리고 있는 성당, 남자의 시선이 한 여성의 다리를 향하고 있다. 이 남자의 이름은 프란시스코이고 그가 그렇게 집중하고 있던 다리의 주인은 글로리아다. 그 날 이후 프란시스코는 병적일 만큼 글로리아에게 집착한다. 글로리아는 프란시스코의 친구와 결혼할 사이다. 프란시스코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글로리아에게 끊임없는 구혼을 하고 끝내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못한다. 프란시스코의 의처증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짧은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프란시스코는 사제의 길을, 글로리아는 라울과 결혼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함께 프란시스코가 있는 성당을 방문한다. 헤어진 아내를 몰래 훔쳐본 프란시스코는..
서른,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벚꽃 새해/김연수/2013년 처음 만난 사람끼리 서로의 나이 물어보기를 꺼리는 서양인들은 십 년마다 돌아오는 아홉 번 째 생일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한다. 지난 십 년의 끝이면서 새로운 십 년의 시작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라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열아홉 번 째 생일은 본격적인 성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시기로 그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문화의 국경이 사라진 요즘 우리라고 시간이나 세월이 주는 의미가 다를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서른이 가지는 의미는 서양에서의 열아홉 번 째 생일만큼이나 특별한 시간이나 세월이지 싶다. 김연수의 소설 에서 요즘말로 주인공 성진의 '구여친'인 정연이 '내가 먼저 서른살이 됐다면, 내 쪽에서 먼저 보기 좋게 오빠를 차버렸을 ..
부자들의 허위의식을 고발한 촌철살인의 한마디 섬섬옥수/황석영/1973년 드라마 속 가난한 여주인공 앞에는 늘 '실장님'이 등장한다. '실장님'의 포스는 외모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잘생긴 얼굴에 훤칠한 키, 게다가 상대가 하류인생일수록 더 깍듯해지는 매너까지. 어디 하나 빠진 구석이 없는 완벽한 남자가 드라마 속 '실장님'의 캐릭터다. 또 한가지 뻔한 사실은 '실장님'은 늘 재벌가 2세거나 속칭 잘 나가는 기업의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차세대 실력가라는 점이다. 그런 '실장님'은 꼭 한 여성의 비루한 인생을 책임진다는 게 알고도 속는 인기 드라마의 불편한 진실이다. 결국 그저그런 삶을 살아왔던 여자 주인공은 비로소 신데렐라가 되어 여성 시청자들의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란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노력이 아닌..
아내를 보는 두개의 시선, 은희경vs현진건 빈처/은희경/1996년 6월17일 나는 독신이다. 직장에 다니는데 아침 여섯 시부터 밤 열 시 정도까지 근무한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다. 이 시간에 난 읽고 쓰고 음악 듣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외출은 안되지만. - 중에서- 은희경의 소설 는 주인공이자 남편인 '나'가 화장대 위에 놓인 가계부인 줄 알았던 아내의 일기장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아내의 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그녀가 ○○○ 줄은 몰랐다'를 반복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나'와 아내는 사랑해서 부부가 되었지만 둘 사이에는 크나큰 장벽같은 것이 있었음을 또 아내는 극심한 소외감 속에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즉 허다하게 반복되는 부부의 일상 중에서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을 뿐더러 그녀에게도 아내로서의 삶, ..
그녀에게 부부관계는 성적폭력이었다 불/현진건/1924년 아동 권리를 위한 국제 구호 기구인 플랜 인턴내셔널(Plan International)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20%의 여성이 15살 이전에 결혼해 세계에서 가장 조혼율이 높은 나라라고 한다. 유니세프(UNICEF, United Nations International Children’s Emergency Fund)는 방글라데시 여성의 66%가 18살 이전에 결혼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조혼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조혼은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혼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조혼은 여성인권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조혼은 여성의 ..
결혼 행진곡에 숨겨진 환상적이고 동화같은 러브 스토리 세익스피어의
딸이 사랑한 남자는 종놈의 자식이었다 손소희의 /1954년 과 의 저자 김동리가 첫째 부인이 자신의 문학세계를 이해해 주지 못해 방황하던 중 1948년 겨울 서울 명동의 '마돈나 다방(설마 요즘 다방과 같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을 터...)'에서 만나 불같은 사랑을 한 사람이 바로 손소희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어쩌면 천생연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손소희도 결혼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소설가 이호철이 한국일보에 연재한 기사에 따르면 한국전쟁 1.4후퇴 당시 부산에서 따로 살림을 차린 김동리와 손소희 집에 김동리의 본부인이 기습해 당시 부산중앙일보의 특종기사가 되었다는데 가두판매 역사상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후에 정식 부부가 되지만 각각 두번째였던 이들의 결혼생활도 오래가지 못하고 김동리가 새 안식처를 찾아 ..
사랑의 복수로 결혼한 어느 신여성의 주부생활백서 임옥인의 /1940년 신식교육을 받은 여자, 서양식 차림새를 한 여자. 개화기 당시 소위 ‘Modern Girl’이라 부르던 신여성의 출현은 봉건적인 가부장적 사회가 붕괴되는 과정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풍경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런 신여성은 외모의 파격만이 아닌 새 사고의 바람이 동반되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임옥인의 는 비록 세 번째 부인이긴 했지만 당당한 여성으로 또는 아내로, 어머니로 거듭나기 위한 신여성의 악전고투가 섬세한 심리묘사로 잘 표현되어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나’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랑관과 결혼관을 엿들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전개는 ‘나’의 내면의식을 확인하는 순간 당시 신여성이 가졌던 한계를 보게 된다. 당당한 신여성 노처녀의 도전은 ‘신여성’이 주는 사회적 의미와는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