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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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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을 꿈꾸며 거리로 내몰린 우리시대 화수분들 전영택의 /1925년 최근 언론의 외면 속에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사측의 집단해고에 맞서 매일같이 눈덮인 아스팔트 위에서 규탄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의 임금은 고작 75만원이라고 한다.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학교측이 해고된 청소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고용한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일당이 최고 12만원인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실소마저 자아낼 수 없는 현실에 막막해질 뿐이다. 한편 작년 7월, 결정시한인 6월30일을 넘기면서까지 노동계와 경영계 사이에 지루하게 진행된 2011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4320원으로 결정됐다. 2010년의 4110원에서 고작 210원 인상된 금액이다. 실업난과 치솟는 물가상승률을 도외시한 비현실적인 결정이다. 게다가 틈만 나면 '서민'을 외치던..
혜선은 왜 이혼 대신 자살을 선택했을까? 전영택의 /1919년 1879년 발표된 헨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은 연극이 공연되지 못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설정을 담고 있었다. 주인공 노라는 '다람쥐'나 '종달새'로 불리면서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그녀의 역할은 남편을 즐겁게 해주는 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라는 집을 나가는 것으로 여자로서 아내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헨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은 '여성해방운동의 바이블'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로부터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노라의 가출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을까?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가부장적 유교 전통의 뿌리가 견고한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의 굴레를 벗어나..
10만원 빌려 51만원 갚고 파산한 사연 염상섭의 /1949년 "근대법에서 돈을 빌리는 것에 대해 위법한 이율을 부과하는 행위. 근대사회에 있어서도 금융기관의 기능이 미흡할 때, 자본축적이 미약한 저개발국가에서 투자수요를 충족할 수 없을 때, 금융기관의 금리수준이 현실과 차이가 많아 자금수급이 원활하지 못할 때 사금융이 발달하여 고리대는 계속 존재한다." 다음백과사전에는 '고리대금'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었고 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고리대금이다. 흔히 사채라 부르는 개인간 금융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합법을 가장한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기도 한다. 길 건너로 여자중학교와 국민학교가 있는 네거리 문방구. 도대체 이 작은 문방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일년 반만에..
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염상섭의 /1948년 1층을 덮을만큼 뾰족 튀어나온 2층 처마, 영화에서나 본듯한 벽난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유난스레 크게 들리던 발자국 소리. 어릴 적 자주 놀러갔던 친구의 집은 여느 집과는 달랐다. 뿐만아니라 숨을 길게 들이마시면 바다내음이 가득했던 그 동네는 친구네 집과 비슷한 꼴의 주택들이 늘어서 있어 이국적 향취를 물씬 풍기곤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살던 집이라고만 들었다.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런 집들을 적산가옥(敵産家屋)이라고 불렀다. 적산가옥이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국에 지어 살았던 집으로 말 그대로 적국의 재산이나 적국인 소유의 재산을 말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일본인들이 살았던 이 적산가옥은 대한민국 정부로 귀속되고 정부는 부족한 국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적산가옥..
내년 독서계획은 세우셨나요? 밤새 소리없이 내리던 눈으로 아무도 걷지 않은 길 위에 내 흔적들을 남기며 서둘러 퇴근했습니다. 저는 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얘기한다면 어릴 때부터 내 머리에 내려앉은 눈이 스르르 녹아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느낌이 싫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비와의 스킨쉽은 기분좋은 경험입니다. 이런 괴팍한 성격탓에 많은 분들과 눈내리는 겨울의 낭만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책이 있고 블로그가 있어 다행입니다. '책블로거'라는 이름으로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 또 공감하고 있으니까요. 책으로 만나는 놀이터, 어디 상상이라도 했겠습니까? 책을 읽고 글을 올리고 또 조잡스럽지만 그 글을 꼼꼼히 읽어주고 댓글 하나로 하루가 행복해지고 블로그가 있어 가능했겠지요...
"때르릉", 당신은 전화가 있어 행복하십니까? 염상섭의 /1925년 1876년 전화를 처음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장인 가디너 허바드는 당시 미국 최고의 전신회사인 웨스턴유니언사를 찾아가 전화기 특허권을 사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웨스턴유니언사는 내부 검토 결과 전화기는 신기한 장난감에 불과하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전화기는 결점이 너무 많아 통신수단으로 쓸 수 없다. 그저 장난감이나 신기한 물건일뿐이다.” 사실 전화를 최초 발명한 사람은 벨이 아니다. 안토니오 무치가 이미 1854년에 기계식 전화기를 발명했으나 1876년 벨이 전기식 전화기의 특허를 취득함으로써 잘못 알려진 것이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1973년 모토로라 연구소의 마틴 쿠퍼는 자신이 최초로 만든 휴대전화로 친구와 이런 통화를 했다고 한다. 쿠퍼와 통화한 친구는 최초로 ..
왜 일본은 이광수에게 조선예술상을 주었을까? 이광수의 /1917년 김동인의 소설 『태형』이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비인간성을 묘사하고 있다면 이광수의 소설 『무명』은 동일한 감옥이지만 일반 감옥이 아닌 병감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탐욕과 폭력을 그려내고 있다. 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여기서 무명은 빛이 없는 세상(無明)으로 닫힌 극한의 세계를 의미한다. 내용은 이렇다. 병감에는 작중화자 '나'를 비롯해 공문서 위조단의 공범 윤씨와 방화범 민씨, 설사병 환자 정씨, 신문지국 기자로서 부자와 과부 며느리의 불륜을 폭로하겠다는 댓가로 금품을 뜯어낸 강씨 그리고 또다른 방화범 간병부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비방하며 알수없는 자존감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를 헐..
처녀를 사랑한 유부남, 자유연애를 말하다 이광수의 /1917년 춘원 이광수는 육당 최남선과 함께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로 손꼽힌다. 이 두사람에게는 한국 문학사적 업적 외에도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이광수와 최남선은 각각 와 을 기초하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 투신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적극적인 친일로 변절의 길을 걷게 된다. 위대한 천재 문학가들이었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회유를 견디지 못하고 변절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만 했던 이들을 보면서 아픈 역사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어린 벗에게』를 살펴보기 전에 저자 이광수에 대한 짤막하나마 약력을 소개해야만 하는 것도 아픈 과거를 되돌아보고 반면교사로 삼기 위함이다. 출판사의 이광수 소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춘원 이광수는 189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후 동아일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