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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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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래서 XX단에 가입했다 [20세기 한국소설] 중 최서해의 『탈출기』/「조선문단」6호(1925.3)/창비사 펴냄 ‘조선의 막심 고리키’ 최서해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냉전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의 슬픔이자 아픔이다. 나의 저급한 문학적 소양을 일반화시키는 오류일수도 있겠지만 우리 과거가 그랬고 현실이 또 그렇다. 색안경을 끼고 볼 기회조차도 억압받았던 시대, 소위 좌파문학이라 일컫는 우리 소설들은 교과서에서도 외면받았고 가령 교육을 받았다손치더라도 몇 줄에 불과한 설명뿐이었다. 최서해의 『탈출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약하나마 출판사가 제공한 작가 최서해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본명이 학송인 최서해는 1901년 함경북도 성진의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품팔이, 나..
고향에는 슬픈 신작로가 있었다 현진건의 /1926년 우리네 길은 꼬불꼬불 지루함이 없다. 굽이돌아 해가 드는 모퉁이에는 느티나무를 그늘삼은 큼직한 돌멩이가 있어 나그네의 쉼터가 되었다. 불쑥 튀어나온 어릴 적 벗이 더없이 반가웠다. 모퉁이를 돌아 마주친 낯선 이와도 엷은 미소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이런 길이 어느 날 논을 가로지른 아지랑이 너머로 끝이 가물가물한 지루한 길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길을 ‘신작로’라 불렀다. 누구나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 고향에는 신작로 하나쯤은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신작로를 60,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생겨난 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신작로는 그 이전부터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수탈한 식량을 원활하고 신속하게 운송하기 위해 우리네 꼬불꼬불했던 길을 쭉 잡아 늘어뜨린 길이 신작로였다. 신작로에는..
불은 누가 질렀을까? 나도향의 /1925년 “이러할 때마다 벙어리의 가슴에는 비분한 마음이 꽉 들어찼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아들을 원망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병신인 것을 원망하였으며 주인의 아들을 저주한다는 것보다 이 세상을 저주하였다.” -『벙어리 삼룡이』 중에서- 오생원집 머슴 삼룡이는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아도 상대를 원망하는 법이 없다. 사회적 약자로서 그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비록 강요된 선택일지라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고개는 몸뚱이에 대강 붙어있고 땅딸보에 불밤송이 머리를 하고 옴두꺼비마냥 더디게 걷는 삼룡이는 벙어리다. 세상 손가락질은 다 받고 살지언정 그도 사람이다. 그는 웃을 줄도 알고 울 줄도 안다. 흔하디 흔한 사랑, 그라고 못해봤을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지 마라. 뜨거운 불길 ..
설렁탕 한 그릇 못 먹고 떠난 아내 현진건의 /1924년 대학시절 학교와 자취집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늘 궁금하게 쳐다보던 안내표지판이 하나 있었다. 버스가 제기동을 지날 즘 언뜻언뜻 스치는 ‘선농단’.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 성격도 아닌 데 유독 ‘선농단’이 무엇인고 궁금했던 건 근처 식당을 한 번 들른 후였다. 무심히 설렁탕을 주문하고 차림표를 봤는데 ‘설농탕’만 있을 뿐 ‘설렁탕’은 없었다. 주인이 이르기를 같은 음식이라 했다. 그 집을 나오고 둘러보니 ‘설농탕’이라는 글자가 솔솔찮게 눈의 띄었다. 어째 ‘선농단’과 ‘설농탕’에는 깊은 인연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선농단은 조선 태조때부터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고대 중국인들에게 농사를 가르쳤다고 알려진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라고 한다.이 때 임금은 손수 밭을 갈고 논에..
할머니의 죽음으로 밝혀지는 위선의 실체 현진건의 /1923년 과거 70,80년대 허름해 보이는 점퍼에 밀짚모자로 한껏 멋을 낸 대통령의 모내기 장면은 뉴스와 신문의 단골메뉴였다. 그 한 컷을 내보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어렵사리 짐작이 가는 건 그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정통성 없는 권력은 그들이 풍기는 피비린내를 그런 식으로 씻어내곤 했다. 국민들에게는 고통스럽게 봐야만 했던 촌극이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사라지는가 싶던 이런 촌극이 21세기에 다시 부활하고 있다. 이번에는 뿌연 흑백필름 대신 천연색으로 더욱 화려해졌다. 화려해졌다 뿐인가! 발군의 연기실력까지 더해졌다. 나마저도 발길이 뜸해진 재래시장을 뻔질나게 드나든다. 어묵이며 떡볶이며 닥치는대로 드셔준다. 허그와 눈물은 덤이다. 거기에 준비된..
'뽕', 아직도 에로영화로만 기억하십니까? 나도향의 /1925년 사람의 기억이란 게 참 묘하다. 한 번 저장된 이미지는 쉬 변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새로운 이미지로 덧칠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낙인찍기’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도 이런 기억의 특성 때문이겠다. 나도향의 소설 『뽕』을 읽는 내내 야릇한 상상이 허공을 맴도는 것도 이런 이유일게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에로티시즘 영화가 바로 이다. 영화 의 원작이 나도향 소설이라는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을 대표하는 단편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는 이가 얼마나 있었을까? 혹여 알고 있었다치더라도 자극적이고 매혹적인 영상에 매료되어 과 소설은 어색한 동거가 되고만다. 에로티시즘 영화에는 늘 예술이니 외설이니 하는 논란이 따라붙는다. 예술의 한 장르로서 영화를 바라보는 아주..
그녀를 믿지 마세요 현진건의 /1925년 사랑스런 사기꾼 영주(김하늘), 범생이 시골약사 희철(강동원). 그들은 기차 안에서 짐가방과 프로포즈 반지가 뒤바뀌는 운명으로 용강마을에서 동거 아닌 동거를 하게된다. 뛰어난 연기에 넋이 나간 희철 가족의 유별난 사랑으로 용강마을 탈출이 번번이 좌절된 영주는 희철을 [고추총각 선발대회] 1등으로 이끈 일등공신이 된다. 그러나 고추총각 희철을 위해 마련된 마을잔치에 나타난 두 명의 여인. 그들은 영주의 교도소 동기들이다. 믿지 못할 그녀, 그녀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믿지 못할 그녀 영주와 찌찔한 남자 희철 그리고 희철 가족을 둘러싼 유쾌발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 영화 속 영주만큼이나 믿지 못할 그녀가 있다. 영주와는 전혀 딴판의 그녀다. 사..
이런 아내 또 없습니다 현진건의 /1921년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짤막한 대사가 인상깊던 드라마가 있었다. '부부 클리닉'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매회 새로운 주제로 이혼을 둘러싼 부부들의 사랑과 갈등을 다룬 옴니버스 드라마였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부부의 갈등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는 얼핏 보면 막장 수준이었지만 시청자의 제보로 제작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이혼 사유들은 부부의 개인적인 갈등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부부갈등의 원인을 세심히 들여다보면 경제적이고 사회구조적인 원인들이 심심찮게 발견되곤 한다. 특히 이런 원인으로 인한 이혼 사유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 갈등이 오로지 부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이혼 사유 중 경제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6년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