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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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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교향곡에 숨겨진 사랑의 비밀 주요섭(1902~1972)의 /「조광」3호(1936.1) 키프로스의 왕 키뉘라스에게는 스뮈르나라는 예쁜 딸이 하나 있었다. 딸을 어찌나 예뻐했던지 키뉘라스왕은 딸 스뮈르나를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의 아름다움에 견주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아프로디테가 누군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그리스 최고의 미인으로 선택한 신이 바로 아프로디테였다. 그러니 원조 '공주병' 아프로디테가 스뮈르나를 가만둘 리 없었다.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불러 스뮈르나가 처음 본 남자에게 견딜 수 없는 사랑에 빠지도록 스뮈르나에게 황금 화살을 쏘게 했다. 이 어찌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었던지 에로스의 황금 화살을 맞은 스뮈르나가 처음 본 남자는 다름아닌 아버지 키뉘라스왕이었다. 이 사건은 스뮈르나뿐만 아니라 아프로디테에게도..
그녀에게는 배설할 권리마저 없었다 백신애의 /1934년 백신애는 1929년 박계화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가 당선되어 등단한 여류 소설가다. 30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녀가 소설로 말했던 가난과 여성의 문제는 짦은 생을 무색케할 만큼 긴 여운을 남긴다. 백신애는 여성동우회와 여자청년연맹 등에 가입해 계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의 소설들에서 보여주는 리얼리즘도 직접 대중 속으로 뛰어들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백신애의 소설은 경향파적 성격이 강하지만 경향문학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살인이나 방화 등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여성의 섬세한 필치로 서민대중의 궁핍한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34년 발표한 은 백신애 소설의 가장 큰 주제라 할 수 있는 빈곤과 여성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
세상에서 가장 슬픈 왼손잡이의 동행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조광」12호(1936.10)/창비사 펴냄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릭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한 편의 짧지 않은 시를 읽는 듯 서정적이다. 소설을 시문학으로 한단계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는 이유다. 유진오 등과 동반작가로도 불리는 이효석은 구인회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그의 소설과 달리 실제 생활은 커피를 마시고 버터를 좋아하는 등 도시적 면모가 강했다고 한다. 『메밀꽃 필 무렵』만 본다면 작가 이효석의 작가로서의 천재성을 확인하는데..
지나치게 솔직한, 그래서 더욱 매력있는 백운거사 수필가 피천득은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형식이라고 했다. 덧붙여 필자가 가고 싶은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지만 차를 마시는 것과 같이 차가 그 방향을 가지지 아니 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 또한 수필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비문학인이 가장 쓰기 쉬운 게 수필인듯 하면서도 일정부분 정형성을 띠고 있는 시나 소설에 비해 일정한 틀이 없기에 더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이 수필이라는 의미같아 더 난해해 지는듯 하다. 수필이 그 쓰는 사람의 가장 솔직한 내면을 보여주는 문학형식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글을 타인이 읽는다고 생각하면 아름답게 포장하고픈 유혹을 떨쳐버리기 힘든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더욱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만 한다면 말이다. 범우사에서 출판한 『돌과의..
손자병법, 병법서로만 보지마라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명장으로 연합국 사령관을 지냈던 몽고메리가 1961년 9월 중국을 방문해 모택동을 만난 자리에서 전 세계 군사 아카데미와 사관학교의 교재로 삼자고 제안한 고전이 있다. 바로 손무(BC535년~BC480년)의 이다. 우리에게는 손자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 세계적인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몽고메리가 왜 하필 수많은 병법서 중에서 2,500년이나 지난 을 그렇게 극찬했을까? 에는 전쟁에서 이기는 모든 수단과 방법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을 송두리째 내놓아야 하는 전쟁은 피하는 게 최상책이다. 그러나 일단 어떤 형태로든 전쟁이 시작되었다면 이기는 것이 미덕(?)이다. 윤리를 논하고 도덕을 논하는 공자와 노자가 평시에 위대한 사상가라면, 전시에는 손무만한 위대한 사상가도 없다. 승리..
장례식장에 울려퍼진 메이데이의 노래 [20세기 한국소설] 중 이북명의 『질소비료공장』/「분가꾸효오론」(1935.5)/창비사 펴냄 이북명의 소설 『질소비료공장』은 그가 흥남비료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1932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질소비료공장』은 연재 도중 일제의 검열로 중단되기도 했으나 한국 프로 문학의 대표 작품으로 인정받아 일본이나 중국에 번역 소개되기도 했던 소설이다. 창비사에서 발굴 소개한 『질소비료공장』의 출처가 일본의「분가꾸효오론,文學評論」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해방 후 이북명은 조선플롤레타리아문학동맹에 가담했고 이 후 북한에서도 문화계 요직을 두루 거친 북한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일제의 사상탄압으로 중단되었던 연..
전향 때문에 애인을 배신한 남자 [20세기 한국소설] 중 김남천의 『경영』/「문장」19호(1940.10)/창비사 펴냄 앞서 김남천의 소설 『처를 때리고』에서 어느 전향 지식인의 현실과 타협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김남천 또한 일제의 사상탄압의 와중에 전향서를 쓰고 병보석으로 풀려났다는 점도 살펴 보았다. 김남천의 전향은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위장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김남천이 전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1940년 「문장」지에 발표된 『경영』이다. 사회주의 운동으로 수감중인 오시형, 양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시형을 헌신적으로 보살펴 온 애인 최무경, 이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김남천은 이들의 사랑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려 했을까? 비록 보호관찰이기는 하지만..
어느날 당신에게 10억이 생긴다면 강경애의 /1935년 아무리 '통큰○○○'이 유행이라지만 1억원도 아니고 10억원 이라니 통이 커도 너무 크다. 사실 어느 때부터인지 액수만 있을 뿐 형체도 없는 돈의 가치가 저잣거리 필부의 술안주가 되어버렸다. 허상에 불과한 돈의 가치는 팍팍한 우리네 삶을 그 액수만큼의 무게로 짓누르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도 10억원이라면 아무리 돈의 가치가 아무리 땅에 떨어진 오늘이라도 결코 만만하게 볼 금액은 아니겠지 싶다. 어느날 당신에게 10억원이 생긴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먼저 힘들었던 과거를 들추어내어 내게 들어온 10억원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 들 것이다. 변변한 도시락 하나 챙겨갈 형편이 못되어 맹물로 허기진 배를 채웠던 학창시절, 양초가 타들어가는 것 처럼 고단한 몸 녹초가 되도록 밥먹듯 반복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