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소 행성과 와인으로 살아남은 이스터 섬의 창조신, 마케마케
폴리네시아 제도 끝에 위치한 칠레의 이스터 섬 라파누이(이스터 섬을 원주민들이 부르는 이름) 신화에 나오는 마케마케(Makemake)는 인류의 창조신이자 다산의 신으로 탕가타 마누 또는 조류 종파의 최고신이다. 마케마케는 마오리족 신화의 숲과 새의 신 타네의 라파누이 이름일 것이다. 그는 아내가 없었다. 큰 눈과 남근 코를 가진 마케마케는 라파누이 암각화의 단골 소재이다. 이스터 섬의 가장 성대한 새인간(Bird man) 축제는 마케마케와 관련이 있었다. 마케마케는 새들이 탕가타 마누(새인간) 종파의 중심인 모투누이 섬에 둥지를 틀게 했다. 네 명의 신 즉 마케마케, 하우아 투 타케 타케(보통 하우아라고 부리며 ‘달걀의 족장’이라는 뜻), 베 호아(하우아의 아내), 베 케나테아가 이 종파와 관련이 있었다. 네 신은 각각의 의식에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초자연적인 하인을 두었다. 이비 아투아는 모투누이로 헤엄쳐 갈 사람을 고르는 예언가였다. 호푸는 이 섬으로 헤엄쳐 가는 이 중 한 명이었다. 호푸 마누는 탕가타 마누를 섬기는 자들이었으며 첫 번째 마누타라 알을 발견한 후 오롱고로 가져갔다. 마누타라 또는 수티 턴(열대 바다새)은 의식의 중심이 된 새[鳥]로 의식의 목표는 첫 번째 마누타라 알이었다.
마케마케는 이스터 섬의 최고의 신성이자 라파누이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신화적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스터 섬 구전에는 다른 영혼과 작은 신들이 등장하지만 마케마케는 라파누이 신앙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다른 신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나 우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큰 원형으로 표현되는 마케마케 신만이 해안의 동굴과 다른 암석에서 발견되는 오롱고 암각화에 일정 빈도로 등장한다. 마케마케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1770년 돈 펠리페 곤잘레스 데 해도의 지휘 아래 이 섬에 도착한 두 번째 유럽 탐험대 소속 스페인 항해사들의 연대기이다.
그의 짧은 방문 기간 동안 250명의 군인, 선원, 장교, 성직자로 구성된 대규모 탐험대가 스페인 왕실을 위해 공식적으로 섬을 점령하는 임무를 수행하여 오바헤 해변에 상륙했다. 이 탐험대에는 많은 섬 주민들이 합류했고 포이케 화산으로 행진하여 세 개의 십자가를 세웠다. 스페인 사람들이 기독교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찬송가를 불렀지만 곤잘레스는 한 무리의 섬 주민들은 모두가 마케마케를 외쳤다고 회상했다.
코하우 키리 타쿠 키테 아투아(현재는 전해지지 않음)라고 불리는 일부 롱고롱고(이스터 섬의 문자) 문서에는 마케마케와 다른 초자연적 존재를 기리는 종교적 성격의 찬송이 들어 있었다는 설도 있다. 수수께끼의 상징이 해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매년 새인간 의식 기간 동안 열리는 오롱고 축제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최초의 가톨릭 선교사들이 이스터 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사도직을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는 주목할 만한 종교적 관행이나 기념 행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연구가 수행되면서 전문가들은 섬의 기독교화 이전에 마케마케가 공물이 바쳐진 최고신으로 숭배되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마케마케는 모든 것의 창시자이자 최초의 남성이자 최초의 여성이었으며 선한 사람들은 보상하고 악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마케마케는 일반적으로 가면과 비슷하게 큰 눈을 가진 얼굴로 표현되며 특히 코가 눈에 띈다. 남성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이 이미지는 그가 다산의 신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스터 섬에서 30년 이상 살았던 독일 태생의 캐퓨신회(프란체스코회 일파) 수도사인 세바스찬 엥글레르트 신부에 따르면 마케마케는 태초에 혼자였기 때문에 무척이나 외로웠다고 한다. 그는 물이 담긴 조롱박을 들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마케마케의 그림자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마케마케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인사했다. 그러자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마케마케의 오른쪽 어깨에 내려와 앉았다. 이 새는 부리와 날개, 깃털을 가진 존재를 보고 겁을 먹었다. 마케마케는 그림자와 새 모두를 가지고 떠났다. 어떤 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오롱고에서 숭배되고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탕가타 마누 또는 새인간이 된 마케마케의 맏아들 탄생 신화로 보고 있다.
잠시 후 마케마케는 자신처럼 똑같이 목소리를 내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을 창조하기로 했다. 그는 돌에 생명력을 주었지만 퇴적물이 비생산적이고 척박한 땅에 흘러 넘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는 물에 생명력을 주었지만 흩어진 정액에서 작은 파로코 물고기만 나왔다. 마침내 마케마케는 진흙에 생명력을 주었고 이로부터 인간(남성)이 태어났다. 최초의 남자를 창조했지만 그는 늘 외로웠다. 그래서 마케마케는 그를 집에서 재운 후 잠든 사이 남자의 왼쪽 갈비뼈를 뽑아 여자를 창조했다. 이처럼 성경과 비슷한 창조 신화는 아마도 초기 구전 전통에 대한 기독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보인다. 기독교와 고대 신앙의 융합은 라파누이의 여러 측면에서 종교적 혼합주의를 탄생시켰다.
이스터 섬(라파누이)에서 모아이 동상으로 대표되는 신격화된 조상 숭배는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옛 정치 및 종교 질서의 권위 상실로 사라지게 되었다. 조상 숭배는 점차 다산과 관련된 새로운 의식으로 대체되었고 창조신 마케마케와 연결되었다. 마케마케크를 기리는 가장 중요한 의식은 매년 오롱고에서 열린 탕가타 마누(새인간) 축제였다. 탕가타 마누의 선출은 오롱고와 모투누이 간의 극심한 경쟁을 통해 신성한 마누타라의 첫 번째 알을 얻기 위해 이루어졌다. 승자는 1년 동안 새인간 또는 탕가타 마누로 봉헌되어 마케마케의 상징이 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 특별한 권한을 부여 받았다.
새인간 축제는 원래 마케마케를 기리는 종교적 행사였다. 전통에 따르면 창조신은 바다새들을 모투 모티로 히바(현 살라 이 고메즈 섬)에서 이스터 섬으로 데려와 봄과 여름에 둥지를 틀게 했다. 엥글레르트 신부가 편찬한 전설에 따르면 최초의 정착민들이 라파누이에 도착했을 때 섬에는 새가 없었다. 당시 통가리키 근처의 항가누이 만에 히투라는 마녀 또는 신령이 살고 있었다. 히투는 바위 틈새에 보물처럼 두개골을 보관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바다가 확대되면서 큰 파도가 두개골을 해안으로 옮겨 놓았다. 히투는 두개골을 회수하기 위해 물속으로 몸을 던졌지만 실패했다. 히투는 두개골을 찾기 위해 밤낮으로 수영을 했다. 지쳐서 포기하려던 히투는 지평선에서 모투 모티로 히바의 바위를 살짝 훑어보았다. 두개골이 섬 가장자리에 도달하자 창조신 마케마케가 되었다. 히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섬에 도착했고 작은 섬에 서식하는 수많은 바다새를 돌봐야 할 운명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살았던 신 하우아의 환영을 받았다.
며칠 휴식을 취한 후 마케마케는 하우아에게 테 피토 오 테 헤누아(‘세상의 배꼽’이라는 뜻)에 가져갈 새 몇 쌍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마케마케는 섬에 도착하자마자 항가누이로 가서 포이케 언덕에 올라 새들을 자유롭게 번식시킨 후 나중에 자신의 섬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마케마케는 새가 번식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테 피토 오 테 헤누아로 돌아왔지만 주민들이 알을 모두 먹어 치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분노한 마케마케는 새들을 집어 바이후로 데려가 그곳에 둥지를 틀도록 다시 풀어주었다. 하지만 바이후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했다. 또 이듬해 마케마케는 필사적으로 새들을 라노 카우 화산 분화구 가장자리에 위치한 바이 아타레로 데려갔다. 마침내 그곳에서 최초의 마누타라 새가 탄생했다.
하지만 마케마케는 새들의 번식을 보장하기 위해 다음 해에 다시 돌아와 라노 카우 화산 앞에 있는 모투누이 섬에 새들을 맡겼다. 나중에 마케마케는 섬 주민들이 일 년 중 특정 기간에 새의 알을 모을 수 있도록 허용했고 그 외 시기에 알을 모으면 처벌했다. 신의 분노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아리키 왕과 사제들은 폐쇄된 기간 동안 알을 타푸(금기 또는 금지)로 선언하기로 결정했다. 이 금기는 라파누이에서 바닷새를 보호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은 미지의 것을 찾기 위해 우주를 면밀히 조사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잘 알려진 작은 태양계조차도 여전히 새로운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2005년 스피처 우주 망원경이 해왕성 궤도 너머에 위치한 새로운 왜소 행성을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이 새로운 우주 물체는 부활절 주간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발견자들은 이스터바니(‘부활절 토끼’라는 뜻)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중에 라파누이 신화의 창조신을 기리기 위해 마케마케로 부르기 시작했고 마케마케 신화를 간직한 이스터 섬과 영어로 이스터가 ‘부활절 달걀’이라는 뜻에서 부활절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마케마케가 이스터 섬 문화에 미친 영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라파누이를 방문하는 여행객은 통가리키의 오롱고와 파파 타타쿠 포키 암각화에서 마케마케를 발견할 수 있다. 라파누이의 많은 동굴도 위대한 창조신 마케마케를 간직하고 있다. 매년 2월 첫째 주에 열리는 타파티 라파누이 축제에서는 하카 페이(성인식의 일환으로 열리는 바나나 줄기 썰매 경기)의 극한 경쟁이 벌어지는 동안 참가자들은 원을 그리며 마케마케에게 이 위험한 테스트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마력이나 영적 힘을 줄 것을 간청한다. 마케마케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이스터 섬에서 구매할 수 있는 많은 기념품에도 등장한다. 마케마케의 기억을 지울 수 없게 전달하는 또 다른 방법은 라파누이 문신이다. 현지 타투이스트들은 신화 속 존재의 이미지를 구성에 포함시켜 아름다운 디자인을 연출하고 있다. 콜차과에 위치한 칠레 와이너리 비냐 산타 크루즈는 고대 라파누이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마케마케라는 특별판을 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