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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시인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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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와 아내 저녁에는 젊은 시절부터 줄곧 함께 지내온 늙은 당나귀 한마리를 때려죽였다네 이유인즉슨, 그 망할 녀석이 사사건건 내게 시비를 걸어왔기 때문이지 내 몸은 아직 청년처럼 힘이 넘쳐 십리를 더 갈라치면, 녀석은 나를 노인네 취급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고 내가 새로운 돈벌이를 생각해내면,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취급하며 콧방귀를 뀌지 않았겠나 나는 말일세 죽은 녀석의 몸을 보기 좋게 토막을 내어 부대자루에 옮겨담았다네 미운 정이 깊어 가슴이 짠하기도 했지만 속은 더할 나위 없이 후련했다네 그날 밤 나는 술을 진탕 마신 뒤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고, 꿈에서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가서 먹고 마시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네 그리고 이튿날 잠에서 깨어 죽은 당나귀의 토막이 들어 ..
호수가 된 낙동강, 물은 흘러야 한다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살던 백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느티나무 그늘 수십평과 까치집 세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은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렀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방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꽃이 하얗게 덮은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흘..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은 친일파 사슴 일요일은 포스팅을 쉬고 이웃 블로거들 마실 다니는 것도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다. 인터넷 검색도 하고 즐겨찾기 돼 있는 인터넷 신문도 열독해 보고 요즘은 거의 없어졌지만 좋아하는 개그나 코미디 프로그램도 케이블로 시청하면서 일주일의 피로를 푼다. 사실 일요일 저녁에 출근해야되니 온전한 휴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일요일은 일요일이다. 그렇다고 일요일이 늘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시인 100인이 추천하는 시'라고 해서 들어가봤는데 확 짜증이 밀려온다. 일단 한 번 감상해 보시라. 해석에 따라서는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노천명의 이라는 시다. '시인 100인이 추천하는 시'.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이 애송하는 시'라는 타이틀로 교과서 뿐만 아니라..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과 진보정당의 도전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에 스티브 블래스(Steve Blass, 1942년~)란 선수가 있었단다. 블래스는 10년 동안 1,597이닝을 소화하고 평균 자책점 3.63의 뛰어난 투수였다. 1960년 피츠버그에 입단한 블래스는 1964년 첫 데뷔전을 치렀고 1968년 시즌에는 18승에 평균 자책점도 2.12의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다. 1969년 시즌에도 16승을 기록하는 등 블래스는 1969년부터 1972년 사이에 무려 60승을 거뒀다. 특히 1972년에는 생애 최고승인 19승을 기록하고 내셔널리그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다. 또 1971년에는 볼티모어를 상대로 한 월드 시리즈에서는 18이닝 동안 불과 7개의 안타만을 허용하고 2승을 거두는 맹활약을 하기도 했단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투수, 스티브 블래스를 소재로 ..
발치의 고통으로 탄생한 주옥같은 시 한 수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조류 중에 가장 활공을 잘한다고 새다. 오래 전부터 서양에서는 알바트로스에 관한 미신이 전해 내려온다. 선원들이 항해 중에 가장 두려워하는 새가 알바트로스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알바트로스를 죽이면 재수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알바트로스를 잡아 먹었다고 한다. "뱃사람들은 종종 장난 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동행자인 것처럼 뒤쫓는 이 바다 새를/ 갑판 위에 내려놓은 이 창공의 왕자는 서툴고 어색하다/ 가엾게도 긴 날개를 노처럼 질질 끈다/……/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던/ 구름의 왕자를 닮은 시인/ 땅 위의 소용돌이에 내몰리니/ 거창한 날개조차 걷는 ..
여장의사와 에로비디오 구기와 북악, 북악과 구기를 관통하면서 라이트를 켰다 켰다 켰다 껐다 긴 내장에 깃든 불안에 대해 말한다 밤과 냉기만이 흐르는 여장의사의 집 그녀의 집에는 관이 즐비하고 주검 앞, 비오는 밤 트럭 위에서는 에로틱한 장면이 흐른다 질흑 같은 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돼지의 죽음 앞에서 절을 하고 남녀는 옆방으로 들어가 더 큰 엑스터시의 상태 속에 접어들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사랑을 부르는 죽음, 드라큘라가 깨어나고 매일 죽는 드라큘라가 신선한 피로 깨어나고 미녀에게서 다시 태어나고 관의 냄새는 신선하다 죽은 지 얼마 안된 생나무 관의 냄새를 분별하지 못하고 우리는 그렇게 죽음과 대화를, 저기 저 육신을 피워올리며 꿈틀거리는 눈 감은 어둠, 마법 같은 연기 흰 뱀의 어지러운 비상 생나무 냄새와 니스 냄새가..
거기 가 있다가 천년 뒤에나 오고싶으오 소원 -고 은- 제주도 삼년동 똥도야지가 똥 먹고 나서 보는 멍한 하늘을 보고 싶으오. 두어달 난 앞집 얼룩강아지 새끼의 빠끔한 눈으로 어쩌다 날 저문 초생달을 보고 싶으로. 지지난 가슬 끝자락 추운 밤 하나 다 샌 먼동 때 뒤늦어 가는 기러기의 누구로 저기네 저기네 내려다보는 저 아래 희뿜한 잠 못 잔 강물을 보고 싶으오. 그도 저도 아니고 칠산 바다 융융한 물속의 길찬 가자미 암컷 한두분 그 평생 감지 않은 눈으로 조기떼 다음 먹갈치떼 지나가는 것 물끄럼 말끄럼 보고 싶으오. 폭포나 위경련으로 깨달은 바 너무나 멀리 와버린 내 폭압의 눈 그만두고 삼가 이 세상 한결의 짐승네 맨눈으로 예로 예로 새로 보고 싶으오. 거기 가 있다가 천년 뒤에나 오고 싶으오. **오늘은 포스팅을 쉽니다. 빈걸음 할까 보아..
에반젤린, 기억 속에 담아둘 걸 그랬다 아카디아의 처녀 에반젤린은 대장장이의 아들 가브리엘 라주네스와 결혼할 예정이었으나 인디언 전쟁 중에 영국군이 식민지 보호의 목적으로 프랑스 거주인들을 추방함으로써 이들 연인들은 헤어지게 되었다. 에반젤린은 가브리엘을 찾아 미시간의 숲 속을 방황하다가 늙어 필라델피아에서 수녀의 도움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 때 질병으로 신음하는 한 노인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그녀가 그토록 오랫동안 찾고 있었던 옛 연인 가브리엘이었다. 그러나 그가 죽자 그녀도 충격으로 사망하여 그들은 나란히 묘지에 묻히게 된다. 에반젤린의 가브리엘을 향한 가슴시리도록 슬픈 전설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10월의 거센 바람이 회오이바람처럼 휩쓸며 먼 바다로 흩날릴 때 그들은 먼지와 낙엽처럼 흩어졌다. 남은 것이라곤 아름다운 그랑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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