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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시인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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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로 가득 찬 반도, 제발 가주렴 껍데기는 가라/신동엽/1967년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지난 3일 개성공단에 체류중이던 7명의 남측 관계자들이 전원 귀환하면서 2003년 착공한 지 10년만에 가동이 완전히 중단됐다. 남쪽 입주 기업들의 경제적 손실과 개성 공단에 근무했던 북쪽 5만 여 노동자들의 생활고는 물론이거니와 남북 대결의 완충지대 역할을 했던 개성 공단의 폐쇄는 한반도가 언제든 화약고가 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상..
노동절에 다시 읽는 시 '노동의 새벽' 노동의 새벽/박노해/1984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암울한 생활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며 활동하는 노동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상으로 바칩니다.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첫 시집 은 '1984년 타오르는 5월에' 이 땅의 노동형제들을 향한 저자의 애틋한 사랑과 연대의 말로 시작된다. 어쩌면 저자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쓰러져간 수많은 노동자들에 대한 애도를 '조촐한 술 한상'을 바치는 심정으로 시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횟수로 삽십 년이다. 이 노동자의 삶을 그린 어떤 소설이나 시보다도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저자가 이 땅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온몸으로 부대낀 노동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피끓는 대학 시절 읽었던 을 다시 꺼내 든 노동절 아침, 세 번씩이나 변신을 거듭했던 강..
무서운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그 남자의 정체는 강성은 시인의 '겨울방학' 목포에서 뱃길로 2시간. 어릴 적 기억으로는 2시간이 훨씬 넘었던 것 같다. 육지로 나오는 일이 연중행사보다 더 더물었을만큼 낙도 중의 낙도가 내 고향이다. 중국 쪽에서 들리는 닭우는 소리에 잠을 깨고, 중국 쪽 하늘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저녁 때가 되었음을 안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있을 정도로 오지 중의 오지였다. 하기야 바닷가에 산 친구들에 따르면 태풍이 불 때면 중국 어선들이 정박했다고 하니 실제로 중국이 그리 멀지 않은 섬임에 틀림없었다. 육지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었는데도 대부분이 농사를 생업으로 삼고 살았기 때문에 태풍 때문에 중국 사람들을 봤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호기심으로 귀를 쫑긋하기에 충분했다. 변변한 장난감 하나 구하기 힘들었던 터라..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냐 묻는다면 김경후 시인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피아(彼我)의 관계를 규정짓는 속담만은 아닌 것 같다. 나와 나의 관계 즉 요즘 육체적 나와 정신적 나의 관계도 이 속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데 퇴화된 흔적처럼 남아있던 생채기가 자꾸 덧나기만 하니 요즘 나는 그야말로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다. 속수무책 인도철학에 아트만(Atman)이란 용어가 있다. 를 읽다 이 말에 필이 꽂혀 '여강여호'와 함께 온라인 상에서 자주 쓰는 닉네임이기도 하다. 비록 철학 문외한인 나에게는 '자아' 수준으로밖에 해석하지 못하고 있지만 어쨌든 아트만은 신체 기관과 기능의 핵심적인 동력이다.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요가라는 것도 이 아트만을 표현하기 위한 수..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시혜가 아닌 소통의 계절을 꿈꾸며 송경동 시인의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1】,【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2】 말 많은 시대의 미덕은 귀를 막아버리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말[言]의 계절이다. 때로 이 계절이 주는 달콤함은 찰나의 시간일지언정 희망을 본다는 것이다. 머슴(?)의 애달픈 구애작전에 주인(?)의 마음은 구름 위를 걷는 듯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그러나 조금만 귀를 기울여보면 어디에도 노동자와 서민의 얘기는 없고 머슴이라며 한껏 머리를 조아리는 왕의 시혜만 있을 뿐이다. 계절이 바뀌는 날 결국 일장춘몽의 허망함에 가슴을 쳐보지만 어느덧 머슴과 주인은 신분이 뒤바뀐 채 지나간 계절을 비웃을 것이다. 너무 어렵게 살지 말라며 말[言]에 담았던 장미빛은 너무 쉽게 살지 말라는 타박이 될 것이다. 담배 연..
집의 의미를 생각하다 이성미의 시 '집의 형식' 코끼리의 발이 간다. 예보를 넘어가는 폭설처럼, 전쟁의 여신처럼, 코끼리의 발은 언제나 가고 있다. 코끼리의 발이 집을 지나가며 불평한다. 더 무자비해지고 싶어. 비켜줄래? 거미의 입이 주술을 왼다. 거미는 먼저 꿈을 꾸고 입을 움직인다. 너의 집에서 살고 싶어. 너의 왕처럼, 너의 벽지처럼. 푹퐁이 모래언덕을 따끈따끈하게 옮겨놓을 때, 나의 집이 나를 두고 무화과 낯선 동산으로 날아가려 할 때. 나는 모래의 집을 지킨다. 매일 거미줄을 걷어내고 코끼리가 부서뜨린 계단을 고친다. 가끔 차표를 사고 아침에 버리지만. 상냥한 노래는 부르지 않을래. 폭풍에게 정면을 내주지 않을래. 코끼리를 막을 힘이 나에겐 없지. 코끼리의 발이 코끼리의 것이 아닌 것처럼. 거미는 나를 쫓아낼 수 없..
금택씨와 재분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리 저는 금택씨가 축구공을 산 건 2주전이란다 근린공원 안에 새로 생긴 미니 축구장 인조잔디를 보고 벌초 끝난 묏등 보듯 곱다 곱다 하며 고개를 외로 꼬기 석달 만이란다 평생 다리를 절고 늙마에 홀로된 금택씨가 문구점에 들어설 때 하늘도 놀랐단다 보는 이 없어 사람만 빼고 동네 만물은 모두 그가 의정부 사는 조카 생일선물 사는 줄 알았단다 삭망 지나 구름도 집으로 간 여느 가을밤 금택씨는 새벽 세시 넘어 축구공을 끼고 공원으로 가더란다 열시면 눈 감는 가등 대신 하현달에 불을 키더란다 금택씨 빈 공원 빈 운동장을 몇번 살피다가 골대를 향해 냅다 발길질을 하더란다 골이 들어가면 주워다 차고 또 차고 또 차더란다 그렇게 남들 사십년 차는 공을 삼십분 만에 다 차넣더란다 하현달이 벼린 칼처럼 맑은 스무하루 ..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치킨 조립공의 비애 나는야 평생 조립공, 통닭을 시켜먹을 때마다 치킨퍼즐을 맞춰본다네 이 부품들은 정품인지 아닌지, 날개를 세고 다리를 세고 조각조각 몸통을 세어본다네 누구보다 완벽하게 조립할 수 있어 나는 평생 조립공 볼트와 너트만 있다면 조각조각 튀긴 저 통닭도 조립할 수 있고 대가리도 없고 발목도 없는 저 닭도 구구구구 깃털도 없고 내장도 없는 저 닭도 퍼덕퍼덕 거대한 전광판 위로 날아오르게 할 수 있어 나는야 평생 조립공. 저 자동차도 내가 조립했고 저 스마트폰도 내가 조립했고 저 에어컨도 내가 조립했다네 심지어는 저 아이들까지도 내가 통닭보다 못한 내가, 닭다리보다 못한 내가, 치킨 조립공이 -유홍준 시인의 '치킨 조립공'- 어제 안철수 원장의 대선 출마선언으로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올해 대통령 선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