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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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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담아내지 못한 정치, 그래도 희망이 있는 이유 포도나무집 풍경/김영현/1988년 1987년은 승리의 역사이자 패배의 역사였다. 부정한 권력과 맞선 민중의 승리였지만 민중의 염원인 민주정부 수립에는 실패한 정치의 패배였다. 정치의 패배란 무엇을 의미할까? 6월 민중항쟁으로 수십 년간 이어져온 군사독재정권은 민중의 힘으로 막을 내렸다. 그야말로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을 대변할 민주정부가 손에 잡히는 듯 했다. 아니 확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민주정부는 고사하고 군사독재정권의 2인자였던 정치군인이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양김(김대중, 김영삼)의 분열은 지나치게 고상한 표현이었다. 사실은 6월 민중항쟁의 의미를 정치적으로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던 양김의 탐욕이 원인이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은 어느덧 현실에 대한 무기력과 패배감으로 바뀌었다. 대통령..
어린이날,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만년 샤쓰/방정환 지음/신형건 엮음/네버엔딩 펴냄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사랑으로 위장된 부모의 폭력에 아이들의 가슴은 멍이 들고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받는 세상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차가운 바닷물 속을 헤매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탱글탱글 몽울진 꽃봉오리가 채 피기도 전에 매섭게 휘몰아친 비바람에 슬픈 낙화를 거듭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도 없고 가책을 느끼지도 않는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지만 우리 아이들이 마주한 거울 속에는 의 마귀할멈이 독이 든 사과를 들고 있을 뿐이다. 왜 우리 아이들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대신 아슬아슬한 현실을 살아가야만 할까? 어른들의 아이들에 대한 인식 부족과 어른들 자신만의 지나친 욕심 때문일 것이다. 계모의 폭력..
못난 남자 손광목이 이해되는 이유 안개 너머 청진항 2/유시춘/1992년 지난 달 26일은 천안함이 침몰된 지 4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추모제가 열려 희생된 장병들의 넋을 기렸지만 추모하고 싶어도 추모식에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추모식 참석을 거부당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통합진보당이 그랬다. 통합진보당은 천안함 침몰 이후 처음으로 '천안함 용사 추모식'에 참석하려 했지만 유족들의 반발로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비단 통합진보당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추모식에 참석했던 다른 야당 의원들도 유족과 여당, 보수 언론의 곱지않은 시선을 견뎌야 했고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명확한(?)은 해명을 강요당했다. 왜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누구는 추모를 거부해야 하고 또 누구는 추모를 거부당..
어느 유명 민주인사의 이중생활 가면/이경자/1990년 1990년대 인기 드라마 중에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1991년 MBC에서 방영됐던 드라마였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이 드라마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드라마 속 ‘대발이 아버지’라는 캐릭터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지극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였다. 아무리 호랑이처럼 엄한 가부장적 아버지상이지만 결국에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이 집안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자유분방한 며느리를 들이고 나서 ‘대발이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권위는 조금씩 조금씩 도전을 받게 되는데……. 1987년 이후 달라진 우리 사회의 단면을 코믹하게 그린 이 드라마에서 ‘대발이 아버지’ 역을 맡았던 이순재는 이 인기에 힘입어 국회의원까지 당..
라면이 사라진 미래, 이런 일이 생길 수도 라면의 황제/김희선/창작과 비평 2013년 가을호 모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 ‘야간매점’이라는 코너가 있다. 냉장고 안에 남아있는 음식들을 이용해 저렴하면서도 몸에 부담스럽지 않은 야식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취지인 모양이다. 매주 서너 명의 연예인들이 직접 만들어온 요리를 소개할 때마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야식으로 먹기에는 다소 황당한 요리들도 등장하곤 한다. 한편 ‘야간매점’ 코너에 잊을 만 하면 등장하는 단골메뉴가 있다. 바로 라면이다. 라면을 맛있게 먹기 위한 번뜩이는 요리 방법들이 등장하는데 그야말로 ‘국민간식 라면’의 위용 그 자체다. 어떻게 하면 라면을 맛있게 끓일까 하는 것은 비단 연예인들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파 송송, 계란 탁’은 기본이고 누구나 자신만의 ..
목적이 상실된 현대인의 초상 이상한 정열/기준영/2013년 세족식(洗足式, 카톨릭 교회 의식의 하나)이 열리고 있는 성당, 남자의 시선이 한 여성의 다리를 향하고 있다. 이 남자의 이름은 프란시스코이고 그가 그렇게 집중하고 있던 다리의 주인은 글로리아다. 그 날 이후 프란시스코는 병적일 만큼 글로리아에게 집착한다. 글로리아는 프란시스코의 친구와 결혼할 사이다. 프란시스코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글로리아에게 끊임없는 구혼을 하고 끝내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못한다. 프란시스코의 의처증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짧은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프란시스코는 사제의 길을, 글로리아는 라울과 결혼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함께 프란시스코가 있는 성당을 방문한다. 헤어진 아내를 몰래 훔쳐본 프란시스코는..
야마시꾼은 절대 못당할 참꾼의 염력, 현실에서도 그럴까 고수/이외수/1979년 노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마 '참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속임수를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참꾼의 무기는 염력이다. 오직 마음의 힘만으로 승부를 가늠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속임수가 뛰어난 '야마시꾼'이라 해도 이 참꾼을 당할 재간은 없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외수의 중에서- 이외수의 소설 는 참꾼과 야마시꾼이라는 노름판 주역(?)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기와 협작만 존재할 것 같은 노름판에도 거스를 수 없는 일종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속임수가 뛰어난 야마시꾼이라 해도 절대 참꾼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참꾼'이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노름꾼이라면 '야마시꾼'은 사기꾼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문득 떠..
서른,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벚꽃 새해/김연수/2013년 처음 만난 사람끼리 서로의 나이 물어보기를 꺼리는 서양인들은 십 년마다 돌아오는 아홉 번 째 생일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한다. 지난 십 년의 끝이면서 새로운 십 년의 시작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라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열아홉 번 째 생일은 본격적인 성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시기로 그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문화의 국경이 사라진 요즘 우리라고 시간이나 세월이 주는 의미가 다를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서른이 가지는 의미는 서양에서의 열아홉 번 째 생일만큼이나 특별한 시간이나 세월이지 싶다. 김연수의 소설 에서 요즘말로 주인공 성진의 '구여친'인 정연이 '내가 먼저 서른살이 됐다면, 내 쪽에서 먼저 보기 좋게 오빠를 차버렸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