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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2.18 박항서 베트남과 창조 이야기 (11)

1226년 트란 왕조에 의해 멸망 당한 안남국(安南國)의 왕자 리 롱 떵이 망명길에 올라 당시 고려의 화산 땅에 도착했다. 이용상(李龍祥)이라는 고려 이름을 갖게 된 리 롱 떵은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워 화산군으로 책봉되었고 화산(花山)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1127년에는 안남국 리 왕조의 셋째 아들 리 즈엉 꼰이 고려 경주에 도착해 정선이라는 지역에 정착한 후 이양혼(李陽焜)이라는 고려 이름을 갖고 정선(旌善)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여기서 안남국이란 베트남의 고대 왕국을 말한다. 정리하자면 우리나라 성씨 중 화산 이씨와 정선 이씨의 시조가 베트남의 고대 왕국 안남국의 왕자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려 중기의 무신 이의민이 정선 이씨의 6대손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관계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최근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뜨거운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 때문이다.

 

락 롱 꿘(가운데)과 어우 꺼(왼쪽). 출처>구글 검색


작년부터 베트남 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맡고 있는 박항서호가 연일 승승장구하더니 급기야 동아시안컵을 10년만에 거머쥐었다. 박항서 신드롬은 베트남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지난 주말 정점을 찍었다. 말레이시아와의 스즈키컵 결승전이 케이블에서도 대박을 치더니 공중파까지 점령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박항서 신드롬으로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들의 매출은 물론 양국간 관광객의 수도 크게 늘었다고 하니 이런 게 바로 민간외교의 힘이 아닐까 싶다.

 

사실 베트남은 비행기로도 5시간이나 걸리는 먼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간의 관계가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지금은 스포츠로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한 관계가 되고 있으니 거리상의 문제는 한낱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베트남과는 요즘처럼 좋은 관계가 있었던 게 아니다. 가깝게는 베트남 전쟁 참전이라는 아픈 기억도 있다. 최근에는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우리 정부가 유감을 표시하고 우리 기업의 진출이 활발해 지는 등 관계개선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베트남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아니다. 타인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베트남의 창조신화 즉 건국신화를 안다는 것은 그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단군신화가 있다면 베트남에는 락 롱 꿘(Lc Long Quân, 龍君)과 어우 꺼(Âu Cơ, 嫗姬) 신화가 있다. 베트남도 우리나라처럼 한자 문화권에 속하고 오랫동안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또 바다를 끼고 있다는 것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베트남의 이런 역사적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그들의 건국신화 속에도 중국의 흔적들이 보이고 산악세력과 해양세력의 대결이 창조신화의 주된 줄거리가 되고 있다. 즉 락 롱 꿘과 어우 꺼는 해양세력과 산악세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 창조신화를 시작하기 전에 신들의 계보를 알아보는 것이 이해를 돕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해양세력을 대표하는 락 롱 꿘은 록 뚝(Lc Tc, 祿續)이라고도 부르는 낀 즈엉 브엉(Kinh Dương Vương, 逕陽王)과 용왕 턴 롱(Thn Long, 神龍)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반면 락 롱 꿘의 아내 어우 꺼는 데 라이(Đế Lai, 帝來)가 사랑하는 여인이었는데 데 라이는 신농씨의 3대손인 데 민 데 민(Đế Minh, 帝明)의 손자로 아버지는 데 응이(Đế Nghi, 帝宜)이다. 한편 데 민은 락 롱 꿘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중국 남방을 다스리던 신농씨의 3대손 데 민이 아들 데 응이를 낳은 뒤 남쪽을 순방하던 중 신선의 딸인 부 띠엔(V Tiên, )을 만나 아들 록 뚝을 낳았다. 이 록 뚝이 바로 락 롱 꿘의 아버지였다. 락 롱 꿘은 아버지 록 뚝(낀 즈엉 브엉)이 세운 씩 꾸이라는 나라를 물려받아 락 비엣(Lc Vit)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 중국 신화에서 락 롱 꿘의 할아버지 신농씨가 바로 농업의 신이었다. 록 뚝은 배다른 형 데 응이에게 북쪽 땅을 양보했다.


한편 아버지 데 응이에 이어 북쪽 땅을 다스리던 데 라이는 할아버지 데 민이 남쪽을 순방하다 신선의 딸을 만났던 일을 떠올리고 남방의 씩 꾸이를 순방하기 위해 떠났다. 이 때 데 라이가 데려간 여인이 바로 어우 꺼였다. 어느 날 락 롱 꿘은 어우 꺼를 보고는 그녀의 미모에 반해 다가갔는데 어우 꺼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뒤늦게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이 사라진 것을 안 데 라이는 남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우 꺼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데 라이는 포기하고 북쪽으로 돌아갔다. 따지고 보면 락 롱 꿘과 데 라이는 사촌지간이다.


어쨌든 락 롱 꿘과 어우 꺼는 결혼해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낳고 보니 아이가 아닌 태반이 떨어지지 않은 채 붉은 막에 쌓인 덩어리인 삼이었다. 어우 꺼가 실망해 들판에 버렸는데 일주일이 지나자 붉은 덩어리에서 백 개의 알이 나왔고 각각의 알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졸지에 100명의 아들이 생긴 것이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100명의 자식을 키우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당시 락 롱 꿘은 물 속에 있었는데 너무 힘들었던 어우 꺼는 바닷가에 가서 남편을 불렀다. 어우 꺼는 자신과 자식들을 데리고 물 속에서 살자고 제안했으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애초에 락 롱 꿘과 어우 꺼가 사는 곳은 물과 땅으로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오십 명의 아들은 어우 꺼가 데리고 북쪽 산으로 갔고 나머지 오십 명은 락 롱 꿘이 데리고 남쪽 해변으로 갔다. 어우 꺼는 오십 명의 아들 중 장남을 왕인 훙 브엉(Hùng Vương, 雄王)에 봉하고 나라 이름을 반 랑 국(Văn Lang, 文郞國)이라 지었다. 이후 반 랑 국의 왕들을 훙 브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락 롱 꿘과 어우 꺼 사이에서 태어난 100명의 아들들은 오늘날 베트남의 시조가 된 바익 비엣(Bách Vit, 百越) 씨족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산의 정령 어우 꺼는 요즘도 베트남 민족의 어머니로 숭배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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