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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11 무지(無知) 논쟁과 운명의 여신 마나트 (4)

 

아랍어에 자힐리야(Jahiliya)란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무지(無知)’에 불과하지만 아라비아 또는 이슬람 역사에서 자힐리야는 단순한 무지를 넘어선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AD 610년 이전을 자힐리야 시대라고 한다. 즉 무함마드(Muhammad, 570~632)가 알라(Allah) 신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창시한 610년 이전을 무지의 시대로 규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힐리야는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나오게 되었을까?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창시하기 전 아라비아 반도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부족들은 저마다의 신을 섬기고 있었다. 다신교 사회였던 아라비아에도 신 중의 신은 있었다. 바로 알라(Allah)였다. 최고신으로써 알라에게는 세 딸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웃자(Uzza), 라트(Lat), 마나트(Manat)였다. 이들의 이름 앞에는 알라의 딸이라는 의미로 ‘Al’을 붙여 알 웃자’, ‘알 라트’, ‘알 마나트라고 불렀다. 당시 아라비아 사회는 다양한 신들을 중심으로 우상 숭배가 만연했고 동굴이나 나무, , 돌 등에도 제물을 바치는 애니미즘적 숭배 현상도 적잖게 횡횡하고 있었다.

 

사실 자힐리야는 이슬람 학자들이 무함마드의 이슬람교 창시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론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슬람 이전의 다신교로써의 아랍 사회를 타락하고 미신과 우상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사회로 정의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무지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 무지의 시대를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받은 무함마드가 새로운 종교 이슬람을 창시하면서 청산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힐리야 시대가 꼭 청산의 대상만은 아니었다. 자힐리야 시대도 <천일야화> 등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는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슬람 학자들이 말한 자힐리야 시대(무지의 시대) 최고신 알라의 딸 중 한 명이었던 마나트는 어떤 신이었을까?


 최고신 알라의 세 딸 웃자, 라트, 마나트 여신. 출처.구글 검색


마나트(Manat)는 운명을 의인화한 신이다. 이렇게 개념을 의인화한 신을 추상신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의 아난케(숙명), 로마 신화의 빅토리아(승리), 이집트 신화의 마트(진리) 등이 추상신에 해당한다. 이슬람 이전을 자힐리야라는 무지의 사회로 표현하고 있지만 추상신은 고도로 발달된 고대 사회에서 유행한 것으로 신화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마나트(Manat)는 이슬람교 이전 아라비아 메카의 으뜸 여신 세 명 중 한 명이었다. 이슬람교가 아라비아 전역에 전파되기 전 아라비아인들은 마나트를 운명의 여신으로 숭배했다. 마나트 신도들은 비와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마나트 신전에 제물을 바쳤다. 마나트는 메카의 수호신 후발(Hubal, 달의 신)의 아내로 알려졌다. 한편 마나트는 미트라교의 크로노스와 주르반 신화와도 관련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서부에 위치한 메디나 및 다른 아라비아 통치 부족들은 무하마드 시대(아랍의 이슬람화) 이전까지 마나트를 숭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나트 신전은 AD 630 1(이슬람력으로는 8 9, 이슬람력은 마호메트가 메카를 떠난 서기 622년을 원년으로 함)에 무하마드의 명령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가즈나조(Ghaznavid, 975~1187) 왕조의 술탄이었던 마무드(Mahmud, 997~1030) 1024년 인도의 솜나트 신전을 공격한 것도 아라비아의 마나트 우상이 이 신전에 비밀리에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마무드의 인도 침략 당시 동행했던 가즈니 왕조의 궁정시인 파루키 시스타니(Farrukhi Sistani, 980~1037)에 따르면 솜나트는 마나트 여신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가 믿음으로 변한 신전이었다고 한다.

 

가즈나조 왕조의 역사가들에 따르면 아라비아의 모든 여신상이 파괴되었지만 마나트 여신상만은 비밀리에 카티아와르(현재의 인도 구자라트 지역)로 옮겨져 안전하게 보호되었다고 한다. 마나트상은 우상을 반대하는 의미의 검은색 석상이었기 때문에 인도 솜나트에서는 파괴의 신 시바(Shiva. 창조신 브라흐마Brahma와 유지의 신 비슈누Vishnu와 함께 힌두 신화의 삼주신으로 불림)와 종종 혼동을 불러일으켰다. 마무드에 따르면 우상은 약탈되고 파괴되어 길거리에 뿌려졌고 사람들은 그 위를 걸어다녔다고 한다. 사실 마무드는 칼리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솜나트 신전의 규모와 의미, 재정 상태 등을 과장해서 보고했고 그 대가로 칼리프로부터 거창한 칭호를 받기도 했다.

 

앞서 살펴봤듯이 마나트와 같이 개념을 의인화한 신이 많았던 다신교 사회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반도는 결코 무지의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당초 이슬람 시대와 그 이전의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자할리야였다면 최근에는 이슬람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자힐리야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즉 이슬람 밖의 사회가 자힐리야인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비판도 상당 부분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이슬람 학자들은 이슬람 본래의 정신을 망각하고 종교가 지나치게 세속화되어 있는 상태를 자힐리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자힐리야논쟁은 비단 이슬람교 내부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타락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만큼 세속화되어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문제는 아닐까? 다만 용어만 다를 뿐이다.

Posted by 사용자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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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8.05.11 07:19 신고

    마나트가 알라의 딸중 한명이라는거 기억합니다 ㅎ

  2.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newday21.tistory.com BlogIcon 새 날 2018.05.11 20:55 신고

    말씀처럼 갈수록 종교 본연의 모습을 잃은 채 세속화되어가고 타락해가는 현상에 대한 일침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군요.

  3.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dldduxhrl.tistory.com BlogIcon 잉여토기 2018.05.12 00:09 신고

    종교나 단체들이 점점 안 좋은 쪽으로 물들어가는 부분이 있는 것이 세계적인 공통점일 수 있겠네요.

  4.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soulco.tistory.com BlogIcon 지성의 전당 2019.03.31 23:52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망각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겼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책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