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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5.08 다나에, '매트릭스'의 오라클과 델포이의 무녀 (7)

 

바람둥이 제우스의 여신들16 다나에

 

영화 매트릭스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 분)는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가 노예로 전락한 인류를 구할 구원자라고 믿는다. 모피어스의 믿음과 달리 네오는 자신의 이런 능력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모피어스는 네오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오라클(글로리아 포스터 분)을 만나게 한다. 오라클을 통해 네오에게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라클은 네오의 눈을 쳐다보며 당신은 구원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라클은 실망해서 자리를 뜨는 네오에게 쿠키를 건네며 이제는 믿음을 가지라는 묘한 말을 남긴다. 이 때 네오는 부엌 출입구 위에 걸린 명판을 보게 된다. 그 명판에는 라틴어로 테메트 노스케(Temet Nosce)’라고 쓰여 있다.

 

신탁;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

 

테메트 노스케는 우리말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뜻이다. 흔히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 있는 말이라고 한다. 또 영화 매트릭스에서 글로리아 포스터가 연기한 오라클은 신탁이라는 뜻으로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다. 신탁이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신의 응답을 말한다. 많은 종교의 원시적 단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전세계 대부분의 지역에 그 흔적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 파르나소스 산 중턱에 있는 델포이 신전은 아폴론의 신탁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동굴 틈 사이에서 이상한 증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이 증기를 마신 사람은 황홀경에 빠져 춤을 추기도 하고 무의식 중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곤 했다.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신을 대신해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300’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 걸로 기억된다.

 

▲영화 '매트릭스'의 오라클, 오라클은 신탁 신전의 무녀에 해당한다. 사진>구글 검색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은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 운명이 때로는 비극이 되기도 했고 희극이 되기도 했다. 크로노스와 제우스 부자는 신탁 때문에 각각 아버지를 죽이고 신들의 왕이 되었다.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을 것이라는 신탁 때문이었다. 문제는 신탁이 반드시 명료한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녀가 신의 뜻을 전달하거나 무녀의 전달 내용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해석되기 때문에 때로는 궤변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델포이 신탁의 경우 지하에서 솟아나는 가스 때문에 일시적인 정신착란 현상이 신들린 모습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델포이 신전에 있는 테메트 노스케’, 너 자신을 알라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신탁의 애매모호성을 대변하는 말이라 하겠다. 여기 신탁 때문에 비극적 삶을 살았던 또 한 명의 여인이 있다. 바로 다나에(Danae).

 

바람둥이의 끝판왕, 제우스

 

다나에는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우스의 딸이었다. 아크리시우스 왕은 딸이 낳은 아들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들었다. 신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루어지는 법. 손자에 의해 살해당할 운명이 두려웠던 아크리시우스 왕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딸 다나에를 청동으로 만든 탑에 감금했다. 미래의 막연한 불행 때문에 어떻게 딸을 감금할 수 있을까 싶지만 신화 속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매정하지만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나에도 외모만큼은 인간 세상에서 누구 못지 않았던 모양이다. 난봉꾼 제우스의 눈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나에와 황금비로 변신한 제우스. 사진>구글 검색

 

다나에를 마음에 두었던 제우스는 다나에와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이번에는 황금비로 변신해서 청동탑 지붕의 틈새로 스며들어 다나에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바람둥이의 끝판왕이 아닐 수 없다. 다나에가 황금비로 변신해 들어온 제우스와 관계에서 태어난 이가 바로 페르세우스였다. 문제는 신탁에 따르면 다나에의 아들, 즉 아크리시우스 왕의 손자 페르세우스가 아크리시우스 왕을 살해할 것이라는 운명이었다. 아크리시우스 왕은 차마 제우스의 아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아무리 불륜이라지만 신과 인간 세계의 제왕이었던 제우스에게 도전할 신과 인간은 없었다.

 

신탁은 끝내 이루어진다

 

아크리시우스 왕은 다나에와 손자 페르세우스를 커다란 상자에 넣어 바다에 던져 버렸다. 제우스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제우스는 자신의 형제이자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에게 부탁해 다나에와 페르세우스 모자가 들어있는 상자를 안전하게 세리포스 섬에 도달하게 했다. 세리포스 섬의 왕 폴리덱테스의 동생인 딕티스가 이 상자를 발견하고는 두 모자를 돌보게 되었다. 하지만 폴리덱테스 왕이 다나에에게 연정을 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성인이 된 페르세우스는 폴리덱테스 왕으로부터 어머니 다나에를 보호해 주었는데 폴리덱테스 왕도 집요했다. 페르세우스가 없는 사이에 다나에를 겁탈하기 위해 페르세우스에게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페르세우스에게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는 것은 큰 일이 아니었다. 아테나와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메두사를 죽이고 머리를 가지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중에 페르세우스는 자신과 관련된 신탁을 듣게 되었다. 즉 페르세우스 자신이 외할아버지인 아크리시우스 왕을 살해할 것이라는. 이 신탁 때문에 페르세우스는 아르고스로 돌아가지 않고 라리사라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다고 신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페르세우스는 라리사의 왕이 개최한 창던지기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그 자리에 아크리시우스 왕이 있었다. 페르세우스가 던진 운명의 창은 외할아버지인 아크리시우스 왕의 심장에 꽂히고 말았다. 참고로 페르세우스의 아내가 바로 어머니 카시오페이아의 버림을 받은 안드로메다였다.

Posted by 사용자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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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2017.05.08 15:41 신고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처음 한 말이 아니었군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2017.05.08 16:39 신고

    아...그렇군요.
    ㅎㅎ노을이도 많이 배웁니다.

  3.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7.05.09 08:12 신고

    누구도 거스를수 없는 운명 신탁,,이란 말
    알고 갑니다^^

  4.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bonlivre.tistory.com BlogIcon 봉리브르 2017.05.10 08:12 신고

    신탁이라는 것이
    그처럼 거스를 수 없는 것이로군요.
    제우스는 역시 대단합니다..^^

  5.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toyvillage.net BlogIcon 라이너스™ 2017.05.12 07:51 신고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6.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windyhill73.tistory.com BlogIcon 바람 언덕 2017.05.13 01:30 신고

    재미있군요. ㅎㅎ
    등장하는 수많은 신들의 일화도 흥미롭지만, 그 속에 얽히고 섥혀있는 은유를 해석하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ㅎㅎ

  7.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soulco.tistory.com BlogIcon 지성의 전당 2019.01.22 22:16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트릭스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