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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김성주 총재와 여우의 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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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를 보이콧 하고 도피성 중국 출장을 간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두고 말이 많은 모양이다. 김성주 총재는 지난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국보건산업진흥원·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인구보건복지협회 국정감사에 출석할 예정이었으나 중국 고위인사들과의 만남을 이유로 아무런 통보없이 오후에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표를 바꿔 오전에 중국으로 출국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은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외면했다며 발끈했다. 

 

새누리당 대변인은 김성주 총재의 출국이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며 국감 뺑소니 사건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피감기관의 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으려고 온갖 핑계를 대가며 해외출장을 가버린 사례는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본인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면 대한적십자사 총재직에서 물러날 것을 주장했다. 어쨌든 대한적십자사가 요즘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있었을까 싶다.

 

▲사진>구글 검색 


여우가 배우네 집에 들어가 세간살이를 온통 뒤졌습니다. 그 가운데서 그는 도깨비 모양의 탈을 보았지요. 그것은 재주 있는 예술가의 작품이었습니다. 여우는 그것을 자기 앞발에 씌우고는 말했습니다.

"머리통은 십상인데 골이 없단 말이야!" -민음사 <이솝 우화집> '여우와 탈' 중에서-

 

김성주 총재가 국정감사를 피해 007 작전을 하듯 도피성 출국을 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일개 사업가가 적십자사 총재로 임명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를 밥먹듯 하는 박근혜 정부라지만 기업인을 적십자사 총재에 임명한 것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인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김성주 총재는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선거대책위원장을 하면서도 적지 않은 구설수에 올랐던 인사가 아닌가.

 

김성주 회장의 대한적십자사 총재 임명은 박근혜 대통령이 즐겨 쓰는 가히 유체이탈화법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정작 본인은 온갖 적폐를 다 실행에 옮기고 있으면서 말로는 적폐를 없애자며 열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도통 헛갈리지 않을 수 없다. 여우가 앞발에 쓴 탈이 자격도 안되면서 적십자사 수장 자리를 덥석 받은 김성주 총재인지, 그런 자를 자기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자리에 앉혀준 임명권자인지, 이런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되는데도 열렬히 지지를 보내고 있는 국민들인지. 어쩌면 골 빈 탈은 이 정도밖에 분노할 줄 모르는 지금의 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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