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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저팔계보다 못한 현대의 가축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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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농장/류짜이푸 지음/송중서 옮김/글항아리 펴냄

 

작가라면 제 심리를 글로 토로하지 않고는 평형감각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특히 정신적 중압감에서 벗어나려면 인간성의 약점을 유머러스하게 비꼬는 산문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 루쉰은 바로 이러한 글을 일컬어 ‘잡문’이라 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잡문’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가볍고 짓궂은 류짜이푸의 산문들은 낡은 틀 속에 갇힌 문명과 국민성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 글쓰기의 천만 가지 가능성 속에서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려 한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유형이다. 맹자가 말했듯이, 사람과 짐승은 ‘아주 조금幾稀’만 차이날 뿐이다.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은 제 목숨이 곤경에 처했다고 느끼면 곧바로 길짐승이 되거나 날짐승으로 탈바꿈한다. 오늘날에 그런 양상의 대표적인 유형은 ‘금전적 인간’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들 인간이 지닌 위험의 잠재력은 수소폭탄이나 원자폭탄보다 더 심할지 모르는데도 우리 인간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죽고 사는 문제에 직면해서는 “나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나는 벌레!”라고 하며 아Q처럼 자신을 밑바닥까지 부정해버리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이 책은 인간과 짐승의 모습을 논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상 모두 ‘인간’의 속성으로 귀결되며 우리 시대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찾아야 할 것은 절망이 아닌, 저자가 숨겨둔 익살과 풍자 속에서의 ‘유머’다.

1부는 정신, 기질 등 에토스 적인 면에서 짐승이나 가축과 유사한, 즉 정신적으로 가축의 성정을 지닌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먼저 ‘육체적 인간’(육인)은 육체적 거래를 주된 생존 방식으로 삼는 자들이다. 인간을 25종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면, 최하위 5종에 속하는 유형이 바로 육인이며, 범속한 몸뚱이만 지닌 채 영혼·사상·학식이 결여된 자를 일컫는다. 가령 『홍루몽』의 설반을 본보기로 들 수 있는데, 그가 제멋대로 지어내는 타유시打油詩는 구절마다 조잡하고 저속하며 육체적 의미를 띤다. 또한 타이완의 작가 리앙의 소설 『남편 죽이기』에 나오는 천장수이라는 백정은 돼지고기건 사람고기건 가리지 않고 고기 속에서 자신의 본질적 힘인 폭력을 마음껏 누리는 존재로, 이런 유형의 대표 격이다. 역사적 시기에서 이런 인간을 고찰해본다면,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에 ‘육인’들이 태어날 조건이 갖춰졌었는데, 이는 ‘독립적 사고’를 비판한 정치운동들이 모두 육체적 인간을 제조하는 메커니즘이었기 때문이다. 류짜이푸는 만약 문화대혁명이 끝나지 않았다면 중국 사회 전체가 육화肉化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가축인간을 논한다. ‘가축인간’ 하면 가장 쉽게 『서유기』의 저팔계를 떠올릴 수 있다. 즉 저팔계처럼 식욕과 색욕을 밝히는 것이 이들의 특성인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색이 과도하면 돼지의 성정에 견줘지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의 가축인간들은 저팔계처럼 솔직하지도 못하고, 이해타산만 가득하며 성실하지도 않고 스스로 가축인간이 아닌 듯 행동해 예전의 가축인간들보다 못하며, 부자연스러움이 극에 달해 ‘별종 인간’이라는 데 있다.


「틀에 박힌 인간을 논함」은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틀에 박힌 인간」의 주인공을 내세워 글을 시작한다. 그는 말 그대로 ‘틀에 박힌’ 삶을 산다. 언제나 장화를 신고, 솜외투를 입는다. 우산, 회중시계, 작은 칼까지도 빈틈없는 규칙 속에 있어야 하는 고지식한 인간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틀에 박힌 인간을 논하자면, 바로 ‘혁명적인’ 틀에 박힌 자를 일컫는다. 오늘날의 ‘틀’은 권력이나 지위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으며, 일단 그 틀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곧 관리가 되거나 고위 관료도 될 수 있다. 적어도 19세기의 틀에 박힌 인간은 성실하지만 영리함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면, 오늘날 틀에 박힌 인간은 대부분 성실함이 부족하고 영리함은 넘치는, 그런 인간이다.


「산성 인간을 논함」에서 산성의 ‘산’은 눈꼴신, 메스꺼운, 역겨운 등의 뜻을 지닌다. 다 큰 어른이 아이 흉내를 내거나, 남자가 여자 흉내를 내는 것처럼 무언가를 고의로 꾸며내 진저리나게 하는 인간이 산성 인간이다. 요즘 말로 소위 ‘오글거리는’ 행동을 일삼는 인간이다. 저자는 특히 문인들 중 산성 인간이 나오기 쉽다며 각별한 주의를 요하고 있다.


2부는 동물들의 온갖 흥미로운 양상을 펼쳐내고 있다. 「자식을 먹은 어미 돼지」는 제목에서 알려주듯, 기아에 허덕인 암퇘지가 갓 낳은 자신의 새끼 다섯 마리를 먹어치운 사건을 다룬다. 새끼를 잘 낳을 뿐만 아니라 벌써 백 번도 넘게 출산해서 마을에서 유명해진 암퇘지 한 마리가 있었다. 녀석은 대륙을 휩쓴 기근으로 피골이 상접했는데도 이상하게 생의 욕망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리하여 전과 다름없이 발정이 나 성교를 했고 임신에까지 이르렀다. 암퇘지가 새끼를 낳던 날 하늘은 잿빛으로 어슴푸레했고, 사람들은 최악의 기근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을 통해 자신들에게 희망이 가져다줄 것을 기원했다. 그런데 이때 다섯 마리의 새끼를 모두 낳은 암퇘지는 무서운 불꽃을 내뿜었고, 마구 요동치더니 먹을 것이 없자 자신이 낳은 새끼 한 마리에게 달려들어 덥석 베어 물었다. 이어서 두 번째 새끼에게, 다시 세 번째 새끼에게 달려들어 꿀떡 삼켰고, 다섯 번째 새끼까지 씹어먹기 시작했다. 이 글은 짧지만 큰 충격을 남긴다. 1960년대 초 중국을 휩쓴 기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돼지, 개, 소 양 등 모든 동물들을 굶주림 속에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식을 먹는 등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저자는 돼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인간 역시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꼬집는다. 생과 멸이 섬광처럼 지나가는 한순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 ‘웨이웨이’라는 이름의 개, 늑대인간, 인간으로 변신하는 호랑이(추인) 등 다양한 동물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어지는 3부와 4부에서는 각각 ‘아Q의 모습’ ‘마음의 모습’을 다룬다. 3부는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주인공 아Q의 이모저모를 파헤친다. 정확한 이름도 없는 최하층 날품팔이, 모욕을 당해도 저항할 줄 모르고 오히려 이를 정신적 승리로 탈바꿈해버리는 아Q의 정신 구조를 통해 ‘얼렁뚱땅 속이며 고비를 넘기는’ 아Q의 예술 정신을 배울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Q는 남에게 머리채를 잡히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철저히 부정하고, 심지어는 자신을 ‘벌레’라고까지 말했다. 말하자면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는 자신을 제로로 만드는 데서 더 나아가 마이너스(벌레)로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얼렁뚱땅 속이며 고비를 넘기는 아Q의 예술」) 아Q의 무릎 연골 병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나온다. 아Q는 약탈에 참여한 주범으로 판정되어 사형 판결을 받고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이것은 억울하고 허무한 죽음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어느 정도는 아Q의 잘못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무릎 연골 병과 관련되어 있다. 아Q는 무고한 사람이었지만 법정에 서서 긴장하자 자연스레 무릎 힘이 풀리면서 마치 스스로를 죄인인 양 보이게 했다. 결국 주인이 되느냐 노예가 되느냐는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아Q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아Q의 무릎 연골 병에 대한 고찰」)


4부 ‘마음의 모습’에는 젊은 츠바이크가 로댕을 만난 이야기가 나온다.(「로댕이 준 세 가지 계시」) 당시 로댕을 우러러보았던 츠바이크는 로댕과의 만남을 통해 세 가지 배움을 얻는다. 먼저 위대한 인물은 마음씨가 훌륭하다는 것, 위대한 인물의 생활은 거의 모든 면에서 소박하고 꾸밈이 없다는 것, 마지막으로 위대한 인물은 창작할 때 온 정신을 창작에만 쏟아붓는다는 것이다. 로댕은 자신의 예술에 도취된 가운데 심지어 자신이 초대한 손님들까지도 잊어버리고 만다. 그 정도로 창작에 대한 로댕의 열정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 자신의 솔직한 심회가 드러난 「내 생각을 반성하다」에서는 “지난 몇 년간 나는 일부 사회 현상과 문하가 현상에 대해 ‘반성’을 했고, 지금은 또 이 ‘반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중이다. 이것이 바로 내 생각을 반성하는 것이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고 있다. 

5부 ‘중생의 모습’에는 꽤나 끔찍하고 잔인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세기적인 물어뜯기」는 복싱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이 경기 도중 주먹이 아닌 이빨로 상대방의 귀를 물어뜯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행위는 단순한 물어뜯기가 아니라 요즘 시대는 ‘챔피언’이라는 옥좌, 즉 권력과 금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반영한다. 또한 저자는 타이슨을 제1장에서 제시했던 인간상 가운데 하나인 ‘육체적 인간’과 연관시키고 있다. 「사람을 잡아먹은 천 년의 모습」은 과거 중국의 식인食人 현상을 다룬다. 저자는 중국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분명한 사실들을 제시하는데, 한 고조와 그의 제후들이 반역한 장수의 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 소금에 절여 젓갈로 만들어 제후들에게도 이를 먹게 했다는 이야기 등 상상도 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는 제1장에서 제시하는 인간상 가운데 ‘잔인한 인간’과도 일맥상통한다. 잔인한 인간은 인간으로의 진화가 완성되긴 했지만 짐승 부류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그 유명한 여태후를 예로 드는데 그녀는 한 유방의 황후로, 유방이 죽고 난 뒤 척부인과 그 아들 여의를 죽이는 수법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여태후는 척부인을 사람돼지로 만들고, 이를 자신의 아들은 혜제에게 보여주는데 심지어는 혜제마저도 자신의 어미 여태후의 잔인성에 충격을 받아 더 이상 국정을 살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토록 잔인한 인간의 모습이 다시는 인간 세상에 나타나지 않도록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드러난다. 마지막 6부는 네 가지의 이야기를 끝으로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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