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그래도 순진한 염소에게 박수를 보낸다

반응형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의 진보 따라하기는 그야말로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진보가 내놓은 진보 공약은 진영 논리로 폄하되지만 보수가 내놓은 진보 공약은 외연 확대로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권력 바라기 언론들이 창궐한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실현 가능성이나 의지는 뉴스거리가 못된다. 심층 취재할 의지도 없거니와 해서도 안된다. 권력과 언론은 이미 샴쌍둥이처럼 한 몸이 되어 움직이기 때문이다. 순진한 유권자들은 보수를 가장한 수구와 기득권의 민낯을 좀처럼 구분하지 못한다. 어쩌면 순진함은 순수함이 지나쳐 생긴 부작용인지도 모른다. 특히 진보의 전유물로만 생각했던 박근혜 캠프의 복지 공약이 그랬다. 언론이 띄워주고 유권자는 흥분했다. 게다가 세금을 올리지 않고도 가능하다니 여기에 혹하지 않을 국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언론의 호들갑은 유권자들이 차분히 생각할 단 한 치의 여우도 주지 않았다. 결국 영혼없는 '서민' 호소는 성공을 거두었고 박근혜 후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 어느 광고 카피대로 이제 걱정은 대통령이 할테니 국민은 행복하기만 하면 되게 되었을까?  

 

▲사진>구글 검색

 

여우가 큰 물탱크에 풍덩 빠져서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목이 마른 염소가 다가와서 여우를 보고는 물이 먹을만하냐고 물었지요. 여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있는 말재주를 다 부려 물을 칭송하고 염소더러 내려오라 하였지요. 염소는 너무나 목이 말라 생각도 않고 내려가서 마음껏 마셨습니다. 이어 둘이서는 어떻게 다시 나갈까 궁리를 시작했습니다.

여우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생각이 났어. 우리 둘에게 도움이 될 일을 네가 기꺼이 한다면 말이야. 앞발을 벽에다 대고 두 뿔을 똑바로 치켜세우고 있어봐. 그러면 내가 대뜸 올라가서 너를 끌어올릴 테야."

염소는 기꺼이 그리 하였지요. 여우는 날렵하게 염소의 엉덩이, 어깨, 뿔을 타고 물탱크 변죽에 당도하고 나서 도망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염소는 여우가 약속을 어겼다고 투덜댔지요. 그러나 여우는 뒤돌아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염소 친구야, 자네는 턱수염은 많지만 머릿속의 골은 비어 있네. 그렇지 않고서야 올라올 생각도 않고 무턱대고 내려가지는 않았을 걸세." -민음사 <이솝 우화집> 중에서-

 

국민 건강을 위해서 담배값을 인상한단다. 2,000원 인상하면 흡연율이 29%대로 떨어진단다. 불철주야 국민 건강 걱정에 잠 못이룰 대통령님과 새누리당 의원님들의 노고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그들의 꼼수가 들통 나기 전까지는. 들통 나고 말 것도 없다. 부자 감세로 텅텅 비어가는 곳간을 메우기 위한 꼼수라는 것은 이제 지나가는 개도 다 아는 사실이다. 만만한 게 홍어X이라고 했던가! 서민을 외쳐대며 흘리던 거짓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서민 뒤통수 치는 게 이들 특기인 모양이다. 연기력으로 치면 남우든 여우든 주연상, 조연상은 죄다 휩쓸 판이다. 하기야 노무현 전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퍼부어 대던 연극으로 다져진 연기력이니 오죽 하겠는가. 위기 때마다 흘린 가짜 눈물에 국민은 속았고 속고 또 속을 것이다. 태생이 그렇게 순진한 것을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나는 여우의 사탕발림에 덥석 물탱크에 뛰어들어 마른 목을 축이고 두 뿔로 여우를 탈출시킨 순진한 염소에게 박수를 보낼련다. 사슴뿔처럼 대단한 각광을 받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염소의 두 뿔이 영악한 여우를 혼내줄 비장의 무기가 될 날이 오지 않겠는가. 턱 밑의 수염만큼도 생각이 없다고 염소를 너무 비난하지 말 지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