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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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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길이 만나는 곳/샐리 비커스 지음/강선재 옮김/문학동네 펴냄

 

요카테스 왕비는 괴로운 듯 두 손을 머리카락 속에 찔러넣고 내전으로 들어가면서 선왕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 이름을 번갈아 불렀다. 요카테스 왕비는 운명을 저주했고, 침대를 저주했다. 가혹한 운명과 슬픔을 한탄하며 요카스테 왕비는 들보에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요카테스 왕비의 숨이 끊어진 후에야 급하게 내전에 들어온 오이디푸스 왕은 절규하듯 외쳤다.

 

"내 어머니이자 내 아내인 요카테스는 어디 있소?"

들보에 매달린 요카테스 왕비를 발견한 오이디푸스 왕은 왕비의 시신을 내전 바닥에 눕히더니 왕비의 가슴에 꽂혀있던 청동 브로치를 떼더니 갑자기 자기의 두 눈에 박아 버렸다. 오이디푸스 왕은 요카테스 왕비의 청동 브로치로 연거푸 자기 눈을 찌르면서 절규했다.

 

"멀어라, 멀어라, 내 눈아 멀어라. 보고 싶어하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내 눈,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오래 못 본 내 눈아 멀어라."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는 그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에서 아버지 라이오스 왕을 죽이고 어머니인 요카테스 왕비와 부부가 된 오이디푸스가 이 모든 비극적 운명의 진실을 알고는 자신의 눈을 찌르며 절규하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 장면은 소포클레스뿐만 아니라 먼 훗날 프로이트라는 정신분석학자에 의해 '거세'를 의미한다는 해석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정신분석학 용어를 만들었다. 즉 오이디푸스 신화가 근친상간, 친부 살인 모티브의 대명사가 된 것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해석 이후다. 이런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신화 해석에 반기를 든 책이 나왔다. 정신분석가이자 작가인 샐리 비커스의 <세 길이 만나는 곳>은 그리스 신화 속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를 작가의 분신으로 등장시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해석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오이디푸스콤플렉스에 가려져 있던 오이디푸스 신화를 다시 들추어보다

‘빛나는 존재감을 가진 영국 작가’로 평가받는 샐리 비커스는 52세라는 늦은 나이에 첫 소설 『미스 가닛의 천사』를 출간했다. 그전에는 청소부, 댄서, 모델, 대학의 문학 강사로 일했고, 정신분석가로도 활동했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은 호기심이 많고 소위 상식이라 불리는 것들에 의문을 갖는 성격 때문이었는데 이 성격은 그녀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바가 크다. 샐리 비커스의 부모는 모두 영국의 공산당 당원으로 아버지는 노조의 지도부에서, 어머니는 사회운동가로 활동했다. 샐리 비커스는 학창 시절 내내 부조리한 공교육에 반대하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학교를 다녔다고 회고한다.
권위와 상식에 도전하는 아버지의 성격을 고스란히 닮은 그녀는 정신분석학의 권위자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신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의식을 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해 알리고 ‘오이디푸스콤플렉스’라는 개념을 창안한 프로이트가 실은 오이디푸스 신화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정확하게 읽지 못했습니다. 오이디푸스가 왕비 요카스테와 사랑에 빠진 시기는 그가 ‘아이’가 아닌 ‘성인’이었을 때였습니다. 또한 프로이트는 라이오스 왕과 요카스테의 입장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지 않았죠.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잠을 자게 되는 것도 특이한 소재이긴 하지만 부모가 자신들의 아이를 직접 죽인다는 설정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프로이트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인디펜던트> 인터뷰

이렇게 샐리 비커스는 프로이트가 ‘친부 살인’과 ‘근친상간’이라는 소재에만 주목한 까닭에 오이디푸스 신화가 담고 있는 다층적인 의미들을 놓쳤다고 보았다. 그래서 오이디푸스 신화에 등장하는 장님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를 불러내 말년의 병든 프로이트를 찾아가도록 만들었다. 두 사람은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게 된다. 샐리 비커스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문학 강사로 활동했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소포클레스의 희곡『오이디푸스 왕』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셰익스피어의 희곡들, 소설가 키플링의 작품에 등장했던 소재를 끌어와 프로이트와 테이레시아스의 대화를 보다 풍부하고 깊이 있게 직조한다.

끊임없이 변주되고 각색되는 비극의 고전, 오이디푸스 신화

고대 그리스의 테베.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거라는 신탁을 받지만, 왕비 요카스테가 자식을 간절히 바란 탓에 결국 아들이 태어나고, 이 아이는 버려진다. 그러나 아이는 운좋게 목숨을 구해 이웃나라 코린토스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왕자로 자라난다. 이후 청년이 된 오이디푸스는 어느 술주정꾼의 말실수로 자신의 출생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고 결국 신탁을 구하러 간다. 하지만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 운명이라는 불길한 대답만 듣는다. 이 운명을 피하기 위해 부모가 있는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려다, 세 길이 만나는 곳에서 어떤 늙은 남자를 만나고 자신의 길을 막는 그 남자와 일행을 죽이게 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죽인 이 늙은 남자가 바로 라이오스 왕이었다. 부지불식간에 친아버지를 죽이고 만 것이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오이디푸스는 계속해서 길을 가다가 테베의 길목에서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를 만난다. 이즈음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젊은이들을 죽이는 바람에 테베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오이디푸스는 단번에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의 영웅이 되고 왕비 요카스테와 결혼까지 한다. 왕이 된 오이디푸스가 테베를 평화로이 통치하며, 요카스테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갑자기 테베에 역병이 닥치고,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왕 라이오스의 살해범을 찾아야 한다는 신탁이 내려진다. 그러나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결국 오이디푸스의 출생과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왕비 요카스테는 목을 매어 자살한다. 오이디푸스는 요카스테의 브로치로 제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테베에서 추방되어 딸 안티고네와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가 된다. -출판사 제공 서평 중에서-

 

<세 길이 만나는 곳>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몇 가지만 언급한다면 우선 왜 하필 그리스 신화 속 테이시아레스가 작가의 분신으로 등장해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한 프로이트의 해석을 반박하는 것일까 궁금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이후 벌어진 재앙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부터 시작하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테이레시아스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 왕의 면전에서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비극적 운명을 직접 말해준 인물이다. 즉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운명을 모두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작가의 분신이 되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헛점을 파고든 것이다.

 

또 하나 제목이기도 한 '세 길이 만나는 곳'에 대한 궁금증도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세 길이 만나는 곳은 오이디푸스가 아버지인 라이오스 왕을 죽인 살인 현장이다. 참고로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해결한 결과로 테바이의 왕이 되는데 스핑크스의 문제는 '아침에는 네 발로, 점심에는 두 발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어시냐'였다. 오이디푸스는 쉽게 '사람'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아내지만 여기에 숨은 메타포는 몰랐던 것이다. 어쩌면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비극적 운명이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스핑크스가 낸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신화 읽기를 즐기는 독자들에게는 신화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 길이 만나는 곳>은 필독서로서의 가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오이디푸스는 '발이 퉁퉁 부은 자'라는 뜻이다. 오이디푸스가 어떤 연유로 이런 뜻이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또 <세 길이 만나는 곳>을 꼭 한 번 읽고 싶다면 '오이디푸스 신화'를 먼저 읽어보는 것이 순서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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