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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교황과 추기경, 이래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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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 돌아가는 전세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

 

이 대답에 앞서 교황은 이런 말도 했다.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방한 기간 중 국민들이 교황에 열광한 이유는 바로 정치를 초월한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었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내민 투박한 손을 기꺼이 잡아 주었다. '종교란 원래 이런 것이었구나!'하고 무신론자들까지도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걱정했다. 교황이 떠나면 단 며칠이었지만 교황이 채워주었던 빈자리를 어떻게 다시 채워야 할지를.

 

 

아니나 다를까 교황이 떠난 후 한국 사회는 다시 교황 방문 이전으로 급격하게 회귀하고 말았다. 사람들 저마다의 가슴에는 다시 커다랗게 허전함만 떠도는 빈 공간이 생기고 말았다. 어느 누구도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그들이 내민 손은 이제는 피로하다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교황을 대신할 추기경이 있지 않느냐며 스스로를 위로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 기대는 허망하게도 무너지고 말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생각하는 대로 이뤄지면 좋겠지만 어느 선에서는 양보해야 서로 뜻이 합쳐진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 앞에 차마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는 교황의 말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세월호 아픔을 해결한다면서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행동을 겨냥한 말인 듯 하다. 타인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서는 안된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약자의 편에 서지 않는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최소한 종교에는 문외한인 나같은 무신론자가 볼 때는 말이다. 그런 종교는 그저 자신의 정신적 위로만을 추구하는 가장 이기적인 이익집단일 뿐이다. 교황은 종교도, 정치도 초월했지만 추기경은 종교와 정치의 벽에 갇혀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종교의 역할 중 하나가 사회통합이 아니냐고. 하지만 틀렸다. 종교의 아니 인간과 집단이 말하는 중립, 더 정확히 말해서 사회통합을 명분으로 내건 기계적 중립은 강자의 편에 서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권력이 권력을 지탱하고 영속시키기 위해 쓰는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가 사회적 약자에게 강요하는 생활양식이 바로 기계적 중립이다. 교황은 이런 기계적 중립의 허점을 알고 있었지만 추기경은 알지만 모르는 척 하는 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무사안일의 늪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자본과 권력 등 강자를 대변해 줄 사람과 집단은 수도 없이 많다. 종교마저 강자의 편에 서서, 강자의 편이 아니라도 강자의 지배논리를 비판없이 설파한다면 사회적 약자가 설 자리는 급격하게 협소해질 것이며 종교의 역할이나 존재의 의미도 딱 해당 종교 안에 갇히고 말 것이다. 교황의 인자한 미소가 사무치게 그리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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