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유민 아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

반응형

인간에 대한 예의/공지영(1963~)/1993년

 

지난 8월 16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시 미사가 열렸던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더부룩한 수염 때문에 더 핼쑥해 보이는 한 중년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 남자는 교황에게 편지 한 장을 건넸고 이 장면은 TV 화면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중년 남자가 바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까? 그는 먼 이국 땅에서 온 교황에게 세월호 관련 편지를 건넸고 교황은 방한 내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그들이 보이는 곳이면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였고 위로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황이 떠난 후 대한민국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은 무능한 야당 뒤에 숨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에 나몰라라 하고 있다. 게다가 40일 넘게 단식 중인 유민 아빠는 결국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렇다고 유민 아빠의 단신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병원에서도 식사를 거부하며 단신을 이어가고 있다. 차가운 물 속에서 억울하게 죽은 딸을 위해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에게 요즘 차마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고 김유민양의 외삼촌이라고 주장한 한 누리꾼의 글이 올라오면서부터다. 김영오씨는 두 딸이 어릴 때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적 없는 아빠였고 이혼한 뒤에도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유민 엄마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느라 고통을 겪었다는 내용이었다. 또 김영오씨가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이고 보상금 때문에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영오씨는 물론 김영오씨의 둘째 딸인 유나양까지 나서 인터넷 상의 글이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지만 보수언론까지 나서 확인되지도 않은 인터넷상의 글을 논란거리로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영오씨를 향한 막말 논란이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김영오씨의 주장은 제쳐 두고라도 자식을 잃은 한 아버지의 아픔을 두고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매몰차고 비정하게 되었는지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유민 아빠의 눈물겨운 투쟁에 동참하지는 못할지언정 묵묵히 바라만 주는 것도 자식을 잃은 아버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텐데 말이다. 소설가 공지영이 말한 '시대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그저 아파하고 슬퍼하는 한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도 논란이 되는 현실이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씨를 위로하고 있다

 

공지영의 소설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주인공 '나'는 잡지사 기자다. '나'는 그 달에 화제가 되는 책을 선정해서 그 작가를 인터뷰하고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6페이지짜리 기사를 맡고 있다. 어느 날 데스크의 변덕으로 인도의 여러 지역을 맨발로 돌면서 명상에 정진하다 귀국한 이민자를 인터뷰하게 되면서 '나'의 갈등도 시작된다. '나'는 이미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책의 저자 권오규 선생을 취재해 놓았기 때문이다. 80년대 운동권에 몸담고 있었던 '나'가 갈등하는 것은 단순히 데스크의 변덕 때문만은 아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90년대 사람들이 떠올린 80년대는 뜨겁고 치열했던 어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미 박물관 저 깊숙한 곳에 처박아 둔 유물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스물여덟 나이로 무기수가 되어 20년만에 출옥한 권오규 선생의 책이 대중의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해 줄리 없었다. 데스크의 변덕도 이런 세태를 반영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민자의 통나무집을 나서면서 '열무 싹'같은 슬픔을 느끼게 된다.

 

며칠 동안 나는 뒤뜰에 가서 혹시라도 이제나저제나 싹이 나오려나 기다렸지만 퇴비를 머금어서 약간 거무스레해진 흙만 보일 뿐 싹이 돋을 기미는 그야말로 싹도 보이지 않았다. 섭섭한 마음은 있었지만 너무 이른 봄날에 씨앗을 뿌린 내 탓이겠지 생각하고 지내던 차였는데, 바로 며칠 전 그저 죽어버린 줄만 알았던 씨앗들이, 아직도 돌과 비닐이 남아있는 그 잡동사니 땅을 뚫고 녹두알만 한 새싹을 내밀었던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 중에서-

 

그렇다. 이민자의 통나무집을 보면서 권오규 선생의 허름한 한옥을 떠올린 것이다. 권오규 선생은 출소 후 동생 내외와 살고 있었는데 동생 내외가 외출했을 때 한나절을 방안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2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어서 방문을 스스로 열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권오규 선생은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들을 돌보고 같이 재판을 받고 사형당한 동료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열무 싹'같은 슬픔은 취재원이었던 권오규 선생에서 80년대 '나'와 함께 운동을 했던 동료들에게로 확대된다. 졸업 후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임투 중에 죽은 후배 윤석을 떠올렸다. 어쨌든 '나'는 오늘까지 기사 원고를 데스크에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하필 오늘 한 때 노동운동 동지였던 강 선배를 만났다. 강 선배는 노동자였던 아내와 헤어지고 지금은 아버지가 경영하는 버스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 청첩장을 건네러 온 것이다.

 

 

오늘은 바람이 분다.

 

잊혀졌던 아픈 기억들이 문득 떠올랐던 '열무 싹'같은 슬픔의 진실은 따로 있었다. 아침에 마시고 버린 차 찌꺼기들은 열무 싹이 뿌리내린 흙에 뿌리고 다른 흙으로 덮었다. 하지만 이 차 찌꺼기들이 썩지 않으면 그들은 열무 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파릇파릇한 어떤 싹도 틔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열무 싹을 틔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민자의 통나무집을 나서면서 내가 느꼈다는 열무 싹 같은 슬픔이라는 것은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슬픈 거면 슬픈 거고 열무 싹이면 열무 싹이지 열무 싹같은 슬픔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민자를 결코 권오규만큼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가 사실은 더 매력 있고 더 재미있는 시간을 내게 내주었지만, 권오규의 동생은 지루했고, 권오규는 내가 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나는, 미안하다, 나는 그들의 지나온 삶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 중에서-

 

'나'는 데스크의 변덕을 거부하고 이번 달 기사로 권오규 선생을 선택했다. 그리고 제목을 이렇게 달 예정이었다.  

 

여기, 시대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켰던 한 사람이 있다. 

 

요즘 일각에서는 세월호 피로감을 얘기한다. 유민 아빠 단식을 두고 이런저런 논란이 생기는 것도 여기서 비롯되었으리라. 하지만 세월호 피로감의 진원지는 정부·여당과 언론이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의 '세월호 특별법' 요구와 유민 아빠의 단식을 정치적이라고 폄하하지만 정작 정치적인 것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그들의 언론 플레이다. 세월호 피로감은 '또 다른 세월호 비극'를 예고하는 무책임의 극치일 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좀 지키며 삽시다.

 

공지영이 말한 것처럼 거창하게 '시대와 역사에 인간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그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절규에,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놓으며 싸우고 있는 아버지의 아픔에 동참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돌은 던지지 말자는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