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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책 소개>늘 푸른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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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푸른 소나무/정동주 지음/한길사 펴냄

 

얼마 전 한 사진작가가 촬영에 방해가 된다며 산림보호구역 내 금강송을 마구 베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무단벌목 후 찍은 사진은 한 장에 400~500만 원에 팔렸다. 이 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다. 정작 사진작가는 고작 벌금 500만 원을 내는 데 그쳤다. 이러한 처벌을 두고 사람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렇듯 한국 사람들은 사계절 푸름을 뽐내며 꼿꼿하게 서 있는 소나무를 유난히도 아낀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언제부터 나타난 정서일까?

< 늘 푸른 소나무>의 저자 정동주는 <백정>(1989), <단야>(1992), <콰이강의 다리>(1999), <논개>(1985) 등 주로 하층민과 민족 정서를 소재로 시와 소설을 써왔다. 1990년대 중반부터 그는 글쓰기의 방향을 전환, 민족 정체성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다관에 담긴 한중일 차 문화사>(2008), <조선의 막사발과 이도다완>(2012), <차와 차살림>(2013) 등 차와 도자기 문화를 주제로 한 책을 꾸준히 출간했다. 또한 그의 관심사는 ‘소나무’로 이어져 그 연구 성과를 <소나무>(2000, 거름), <한국의 소나무>(2004, 명상)로 담아냈다. 지난 시간 소나무에 대한 그의 성찰은 더욱 깊어졌으며, 소나무를 품은 우리 강산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그 변화의 내용을 더욱 보완하고 새로운 사진으로 편집하여 <늘 푸른 소나무>(한길사)로 출간하게 되었다.

 

 

그는 한국인의 심성과 소나무와의 특별한 관계에 주목한다. 소나무의 생태학적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소나무가 서 있는 마을마다 삶의 나이테로 스며 있는 애환, 소나무 한 그루에 깃들어 있는 세상 이야기, 식물학으로서의 소나무 이론, 한국인의 기상을 이루어온 솔그늘과 솔바람의 멋과 풍류! 이것이 정동주의 소나무학(學)이다.

“집 없이 사는 인간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싶었던 성주신은 하느님께 소원을 빌 었다. 크게 감동한 하느님이 응답하시기를, 제비원에서 솔씨를 전해 받으라고 했 다. 성주신은 솔씨를 받아 산천에 골고루 뿌렸다.” (16쪽)

이 책은 집 없이 사는 인간들이 안타까워 솔씨를 뿌려 재목을 키운 성주신 설화로 시작한다. 소나무는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함께하며 우리를 지키는 나무였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 자라난 한국의 소나무는 외국 소나무에 비해 단단하고 강하다. 따라서 일반 가옥에서 사찰, 궁궐 건축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건축 자재로 여겨왔다. 소나무 집에서, 푸른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치고 아이가 태어나, 다시 소나무 집에서 산다. 시원한 솔숲은 놀이터가 되고, 쉼터가 된다. 소나무 껍질로 양식을 삼아 배고픔을 달래던 시절 역시 서글픈 우리네 인생이었다. 소나무를 먹고 솔연기를 맡으며 살다, 죽으면 소나무관에 육신이 담기고 솔숲에 묻힌다. 무덤가에는 둘래솔을 심어 망자를 지켰다. 신성하다고 여겨진 소나무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소나무에 대한 믿음은 마을 앞 성황당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어머니들은 성황당 소나무 앞에서 매일같이 치성을 드렸다. 어머니가 쏟는 정성만큼 소나무는 또 많은 것을 내주었다. 생활용 그릇과 도구, 농기구의 재료가 되기도 하며 송이버섯ㆍ솔순ㆍ솔방울ㆍ솔씨 또한 쓰임새가 아주 많았다. 일상생활 곳곳에서 버릴 것 하나 없이 활용되어온 소나무의 모습이 이 책에는 빼곡하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소나무의 참모습이다.

“눈서리 이겨내고 비 오고 이슬 내린다 해도 웃음을 숨긴다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변함이 없구나
겨울 여름 항상 푸르구나
소나무에 달이 오르면 잎 사이로 금모래를 체질하고
바람 불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사명당, ?청송사?(189쪽)

어느 시대고 침략과 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는 유난히 혹독한 눈서리가 내리던 시기였다. 이 시기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아픔을 공유하고 그 대가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되었다. 1943년 가을부터 1945년 여름까지, 조선총독부는 한국의 모든 초ㆍ중등학교에 관솔 수집 총동원령을 내렸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수세에 몰린 일본군이 소나무 관솔의 송진을 증류시켜 휘발유를 추출해내기 위해서였다. 할당된 양을 채우기 위해 소나무 밑둥치에 상처를 내고 송진을 뽑아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 솔숲 울창한 곳이면 어김없이 흔적이 남아있다.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들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는 목적으로, 일본 소나무는 곧은데 한국의 솔은 굽었다는 ‘소나무 망국론’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주장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퍼뜨릴 만큼 소나무는 민족을 대표하는 나무였다. 정동주는 한국에 굽은 솔이 많은 이유는 왕과 양반 사대부, 세도가들이 앞다퉈 좋은 솔을 베어 썼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소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좋은 것을 보존하기보다는 모조리 탕진해버리는 한국인의 뒤틀린 문화 척도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자 하는 것이다. 아픈 소나무들이 독자에게 주는 교훈이다.

지난 반세기에 걸쳐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온 산업화는 도시의 모습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경제적ㆍ기술적 효율성을 앞세우다보니 지역마다 지니는 고유한 특성은 사라지고 문화유산은 파괴되었다. 잿빛 도시 안에서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삭막하고 예민하다. 우리는 더 이상 뾰족해지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짐한다. 욕심을 내려놓고 느리게 걷는 일이 쉽지 않다.

 

정동주는 한국 조형의 아름다움인 ‘선의 예술성’에서 말하는 ‘곡선’을 가장 절묘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소나무라고 말한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고 정신으로 자연과 하나가 되며, 포용과 겸손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곡선은 어떠한 고난과 시련에도 부러지지 않는다. 부드러운 곡선과 고요함을 간직한 소나무는 지금도 우리 옆에 쉼터를 마련하고 서 있다. 그 소나무 아래로 가보자. 시원한 바람과 솔향기가 우리를 반길 것이다. -출판사 제공 서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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