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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시대를 담아내지 못한 정치, 그래도 희망이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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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집 풍경/김영현/1988

 

1987년은 승리의 역사이자 패배의 역사였다. 부정한 권력과 맞선 민중의 승리였지만 민중의 염원인 민주정부 수립에는 실패한 정치의 패배였다. 정치의 패배란 무엇을 의미할까? 6월 민중항쟁으로 수십 년간 이어져온 군사독재정권은 민중의 힘으로 막을 내렸다. 그야말로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을 대변할 민주정부가 손에 잡히는 듯 했다. 아니 확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민주정부는 고사하고 군사독재정권의 2인자였던 정치군인이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양김(김대중, 김영삼)의 분열은 지나치게 고상한 표현이었다. 사실은 6월 민중항쟁의 의미를 정치적으로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던 양김의 탐욕이 원인이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은 어느덧 현실에 대한 무기력과 패배감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선거 이후 그는 극도의 무기력과 패배감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80년의 대전환 때처럼 모든 게 짜증스럽고 우울했다. 무슨 일이건 도무지 신명이 나질 않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비판받아야 마땅할 태도이겠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조금은 확대해보고 싶은 기분이 되어 있었다. -<포도나무집 풍경> 중에서-

 

 

▲사진>구글 검색

 

김영현의 소설 <포도나무집 풍경>의 주인공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 서있었던 투사였다. 하지만 민중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는 군사독재정권을 연장해 주는 합법적 명분만 제공해 주고 말았다. 그 한 가운데 양김의 분열이 있었지만 운동 진영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국민들도 저마다의 확신을 가지고 양김과 운동 진영의 분열에 맞춰 헤쳐 모이기 시작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뻔한 결과였지만 극도의 자만과 오만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죄인을 자처했다.

 

그는 투표와 개표에 관련된 부정의 사례를 대충 모아놓고 정리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지만 도무지 글이 쓰여지지를 않았다. 정확한 상황 인식보다는 오히려 자꾸만 허탈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는 걸 느꼈다. 그는 책상에 엎드려 온갖 잡념에 시달리다가 밖으로 나와 아무데다 쏘다녔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비판적 지지, 후보 단일화, 독자 후보론, 그 모든 단어들이 그대로 비웃음소리가 되어 가슴 속에 맴돌았다. -<포도나무집 풍경> 중에서-

 

는 부정선거 자료집을 만들기 위해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지만 사실상 도피나 다름 없었다. 6월 민중항쟁과 이어진 노동자 투쟁에서 용솟음치던 힘이 단 한 판의 목숨을 건 게임, 대통령 선거에서 는 자신의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권력의 힘 앞에 맥없이 허물어지고 만 것이었다. ‘일하고 생산하는 민중들은 금세 기력을 회복할 것이고 다시 전선이 형성될 것이고 인간의 삶을 옥죄는 무리들의 가면성을 벗겨 젖히고 다시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마저 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은 구체적인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가 극도의 무기력과 패배감 때문에 현실을 벗어나지만 앞서 언급한 민중의 생명력을 발견하고 나 자신을 극복하는 과정은 생략되고 말았다. 어쩌면 작가는 6월 민중항쟁 이후 한국 사회를 미리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민중항쟁의 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패배한 87년 대통령 선거는 야합의 정치를 가능케 했고 문민정부의 탈을 쓴 사실상의 군사정권 속편으로 이어졌다. 어렵사리 최초의 정권 교체가 실현됐지만 소위 진보 정권(필자는 인정하지 않지만)이었다는 10년은 국민들의 변화 열망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진보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심어주고 말았다. 결국 다시 과거 세력들의 파상적인 공세로 탄생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정권은 지능적인 문민독재로 우리 사회를 6월 민중항쟁 이전으로 회귀시키고 있다. 얼마나 지능적이고 전방위적이면 국민들은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마저 망각한 듯 보인다.

 

주인공 는 시대 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던 정치를 보면서 느꼈던 무기력과 패배감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좌절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저자는 박 목사의 말을 빌어 끊어진 희망의 끈을 잇고자 한다.

 

도시에서 온 놈들은 겨울 들판을 보면 모두 죽어 있다고 그럴 거야. 하긴 아무것도 눈에 뵈는 게 없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하지만 농사꾼들은 그걸 죽어 있다구 생각지 않아. 그저 쉬고 있을 뿐이라 여기는 거지. 적당한 햇빛과 온도만 주어지면 그 죽어 자빠져 있는 듯한 땅에서 온갖 식물들이 함성처럼 솟아 나온다 이 말이네.” -<포도나무집 풍경> 중에서-

 

의미심장한 말임에 틀림없다. 운동 진영과 운동 진영을 대변해야 할 정치의 분열이 국민을 간과한 데서 온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맺혀있는 민중들의 시대적 열망을 담아내는 대신 그들만의 진영 논리에 빠져 있었던 당시 운동권과 정치권을 향한 통렬한 자기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1980년대 말의 시대적 상황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2014년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해야 더 옳을 것이다. 시대를 담아내지 못한 운동과 정치가 계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는 이유는 일시적으로 죽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결코 죽는 법이 없는민중들의 끈질긴 생명력이 포도송이처럼 촘촘히 맺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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