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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안토니오 무치 전화기에서 스티브잡스 아이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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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는 누가 발명했을까? 학교에서 배운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천만의 말씀. 사실 그보다  먼저 발명한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의 '안토니오 무치'라는 사람이다. 안토니오 무치는 전화를 발명한 뒤 '영구 특허'를 낼 250달러가 없어서 1년짜리 특허를 냈다. 이후 돈이 부족해 갱신하지 못한 사이에 벨이 영구 특허를 내 버렸다. 2002년 미국 의회에서 안토니오 무치가 최초의 전화 발명가라고  인정을 받게 됐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최초의 전화기 발명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안토니오 무치'라고 해야 한다.

 

동전을 넣고 사용하는 공중전화가 한국에 처음 등장한 게 1962년, 카드와 동전을 겸용하는 전화기가 나온 것이 1995년이다. '삐삐'가 보편화됐던 1990년대 말은 호출받고 달려온 이들 덕분에 '공중전화 절정기'가 형성됐다. 전국에 설치된 공중전화는 1999년 56만 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08년 말 16만 1천 대까지 떨어졌다.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안토니오 무치. 사진>구글 검색 

 

스마트폰의 진정한 선조인 휴대전화는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했을까. 그렇게 오래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 군대 작전용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휴대전화의 시초였다. 1942년 모토롤라에서 만든 SCR-536이 휴대전화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다른 모델이 있었지만 무게가 11킬로그램 이상이 되고 수신 범위도 8킬로미터 안에서만 가능해서 스마트폰의 선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반면에 핸디토키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SCR-536은 2.27킬로 정도의 무게에 불과했다. 진정한 스마트폰의 선조이다.

 

1973년에 모토롤라는 다이나택이라는 베타 제품을 만들었는데 실제 경쟁회사였던 벨사의 임원과 통화를 시도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다이나택이 실제 상용화된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1983년이었다. 지금의 화폐 가치로 따지면 1천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싼 가격에 팔렸는데 무게가 1킬로그램도 되지 않은 가벼운 무게가 화제가 되었다. 1989년에 나온 마이크로택은 세계 최초의 플립형 단말기였다. 기존의 불필요한 기능을 제거하여 포켓폰의 효시가 되었다. 이후에 1996년에 스타텍이라는 명품을 만들게 되었다. 한국에도 들어왔던 모델이었는데 지금의 아이폰 이상으로 매니아층을 만들었던 제품이다. 이듬해 노키아에서는 '노키아 9000커뮤니케이터'로 스마트폰의 효시가 되어 엘시디 화면과 쿼티 자판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휴대폰은 단순하게 통화를 위한 수단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능들이 장착되었는데 1999년 핀란드의 베네폰은 GPS기능과 맵을 휴대폰에 적용했다.

 

▲아이폰을 개발한 스티브잡스. 사진>구글 검색 

 

일본의 교세라는 세계 최초로 카메라 기능을 휴대폰에 접목시켰다. 지금은 아주 당연한 기능이지만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개발이었다. 캐나다의 림에서 개발한 블랙베리 5810은 2002년에 등장했다. 음성 통신 위주였던 휴대폰의 역할을 이메일과 스케쥴러 등 데이타망으로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2007년 스티브잡스의 애플에서 '스마트폰의 혁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후 2010년 HTC의 EVO를 통해서 4G와 와이맥스를 적용한 안드로이드폰을 출시했는데 800만 화소 카메라, HDMI 단자, 모바일 핫스팟 기능 및 HTC의 센스 인터페이스로 호평을 받았던 제품이다. 역사는 새로운 경쟁자를 끊임없이 배출하면서 기존의 강자였던 모토롤라, 노키아, 에릭슨 등은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1위를 쫓아가야 하는 현실로 바뀌었다. -출처>작은책 6월호 '기획특집·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들|스마트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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