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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책소개>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말도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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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독도문제란 일본의 논리와 일본 측 입장에 서 있는 제3자의 논리를 극복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경우 우리가 고쳐야 할 점은 상대방의 주장을 쉽게 무시하려는 사고방식이다. 일본이나 서양인들은 "말도 안 된다"는 말로 끝나는 한국식 화법에 대해, 비판 능력이 결여되었다고 볼 수도 있고 일본의 주장을 극복할 수 없어서 변명 내지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서 일본의 주장을 극복하려면,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꿔 좀 더 꼼꼼히 사태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논리와 자료로 일본의 주장을 충분히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다면, 독도가 우리 땅임을 세계에 알리는 일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독도의 영유권을 증명해서 일본의 주장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우리의 이해력과 사고능력은 몰라보게 향상될 것이다. 그만큼 일본의 주장은 복잡하긴 하지만 비판할 가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학교나 지역단위에서는 독도교육을 할 때 자기만족에 치우친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독도에 관한 일본의 주장을 정확히 비판하는 것에 교육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현장에서는 일본의 주장을 비판할 때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점만 언급해 왔는데, 이제는 좀 더 복잡한 문제도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면 "한국은 독도를 역사적으로 우산도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태종실록』에는 우산도에 85명 정도가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의 우산도를 독도로 보기는 어렵고 울릉도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우산도가 독도라는 한국의 주장은 일관성이 없고 성립되지 않는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지금까지는 충분한 비판이나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런 일본의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일축해 버리지 말고 논리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이처럼 학교, 지역 등 자국민을 상대로 한 독도교육 현장에서 우리나라의 주장만 가르치지 말고, 일본의 주장 가운데 비판하기 어려운 것도 가르쳐서 함께 해결해 나가는 '실천적 학습'으로 방향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일본의 주장을 극복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국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 -<우리 역사, 독도> 중에서-

 


 

 

▲우리 역사, 독도/호사카 유지/책문 출판사/2009년

 

일본이 『태종실록』에 나와있는 기록(우산도에 85명 정도가 살았다)을 근거로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한국인들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산도에 85명 정도가 살았다'는 『태종실록』의 기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산도'이 독도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독도에는 그 정도의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당시에는 울릉도를 '우산도'로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독도가 한국땅이 아니라는 일본을 향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라'는 말 빼고는 딱히 대응논리가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하지만 『태종실록』을 좀 더 꼼꼼히 읽고 분석해 보면 독도가 우리 역사, 한국 역사라는 확실한 논리적 근거를 갖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울릉도 주민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섬을 '우산도'로 불렀고, 육지에서는 '무릉도'나 '울릉도'로 불렀다. 무릉도에는 군역을 피해 본토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왜국의 표적이 되어 왜구는 무릉도를 거점으로 강원도에 침입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태종은 울릉도를 비우는 정책 즉 '공도 정책'을 추진했다. 태종이 공도 정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보낸 관리는 김인우였다. 이 때 김인우의 직책은 '무릉 등처 안무사'였다. 이 직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릉 등처'는 지금 말로 '울릉도 등'이다. 그렇다면 이 때 이미 울릉도와 그밖의 부속 섬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2차 파견 때는 김인우의 직책이 '무릉 등처 안무사'에서 '우산무릉 등처 안무사'로 바뀌었다. 즉 독도(우산)를 울릉도(무릉)의 부속 섬으로 인식한 것이다. 3차 파견 때도 김인우의 직책은 '우산무릉 등처 안무사'였다. 독도가 '우리 역사'라는 이보다 더 확실한 논리적 근거가 있을까?

 

이처럼 일본의 터무니없지만 무장된 논리로 접근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사람은 부끄럽지만 일본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 출신 귀화 한국인이다. <우리 역사, 독도>의 저자 호사카 유지 교수는 우연한 기회에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고 1988년에 한일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에 유학했고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주로 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를 연구하면서 일본이 왜 침략국가가 되었는지에 대해 탐구해 왔다. 그리고 1990년대 말부터 독도영유권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한일관계사를 분석해 객관적이고 치밀한 대응논리를 개발함으로써 독도 전문가라는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 드디어 2003년에 한국인으로 귀화해 독도문제, 역사교과서왜곡문제 등 한일 양국의 총성 없는 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호사카 유지 교수의 연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철저한 고증과 분석이다. 한일 양국의 역사를 철저하게 분석해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논리적으로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독도문제는 우리의 염원과 달리 국제사회에서는 온전히 한국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독도는 분쟁지역에 더 가깝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만큼 우리의 대응이 안이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학교 교육을 십 년 넘게 받았지만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 탓에 제대로 된 독도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 일본인이 나서 '독도는 왜 우리땅인가'를 논리적으로 밝힌 책장을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말도 안되는' 독도영유권 주장, 그저 감정적으로만 대처할 게 아니라 이제 왜 '말도 안되는'지까지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역사, 독도>로 그 첫걸음을 뗐다면 '우리땅 독도'가 비로소 더 확실하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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