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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허벌나게'와 '허천나게', 어느 쪽이 맞는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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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1941~2003)의 소설 <암소> 1970년 『월간중앙』제31호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이문구의 소설이 그렇듯 <암소>도 맛깔스런 충청도 방언이 읽는 재미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방언이 점점 사라져가는 요즘 독자들이 읽으면 문맥을 파악하는데 다소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 소설이다. <암소>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초 충청도의 어느 농촌이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소외되어가는 농민들이 겪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황구만과 박선출은 주인과 머슴 사이지만 박선출이 입대하면서 둘 사이는 채무자와 채권자 관계가 된다. 그러나 박선출이 군에 있는 동안 황구만은 다른 사업에 투자해 실패하면서 박선출은 이자는커녕 원금도 못 받게 된다. 이즈음 5.16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농어촌 부채탕감정책 일환으로 고리채 정리를 시행하는데 주인 황구만은 혜택을 받지만 채권자였던 머슴 박선출은 원리금을 몽땅 날리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박선출이 작성한 계약서를 근거로 황씨가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키운 후 그것을 다시 팔아 선출의 원금을 갚기로 합의하는데…….하필 암소였다니.

 

두어 함박이나 데운 여물을 퍼다 주자 소는 제법 몸이 무거운 듯 굼벵이처럼 일어나며 허발해서 구유통을 걸터듬어 먹어간다. 고구마 넌출과 콩깍지가 반반이라 구유에선 구수한 냄새와 김을 피워 올렸고, 황씨는 시린 볼에 김이 서린다 싶어 외양간으로 들어서며 소잔등을 쓰다듬어 내리기 시작했다. 선출이 출현된 눈으로 비슥비슥 들어선 것도 그와 함께였다. -<암소> 중에서

 

생각지도 않게 소가 임신하자 박선출은 당장 소를 팔 생각을 하지만 황구만은 이 암소의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면서 갈등은 더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게 된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한참 고조되어 가는 과정을 표현한 문장이다. 요즘 독자들에게는 이 짧은 문단에서도 낯선 단어들을 꽤 발견할 것이다. ‘허발해서’, ‘걸터듬어’, ‘넌출’, ‘버슥버슥’. 이 단어들의 뜻을 알아보자.

 

허발은 명사로 몹시 주리거나 궁하여 체면도 가리지 않고 함부로 먹거나 덤빔의 뜻이다. 걸터듬다‘(사람이 사물을) 찾느라고 이것저것 마구 더듬다라는 뜻이다. 위 문장에서 소가 허발해서 구유통을 걸터듬어 먹어간다는 얼마나 오래 굶었던지 소가 게걸스럽게 여물을 먹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허발과 비슷한 말로 허천이 있다. 오히려 허천나게 먹다 하면 허발나게 먹다보다 친숙한 말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허천나게를 전라도 방언으로 알고 있지만 허천허발도 모두 표준어다.

 

전라도 방언 중에 허천나게와 비슷한 뜻으로 허벌나게가 있다. 원래 굉장히라는 뜻으로 허벌나게와 함께 허버지게도 같은 의미로 쓰이는데 송기숙의 소설 <당제>에 나온 표현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하여간 그 녀석들을 잡아다가 귀싸대기부터 허벌나게 올려 붙여놓고, 닦달을 해도 할랑게 염려 말소. -<당제> 중에서-

 

한편 허벌나게도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을 때 자주 쓰이는 것으로 보아 표준어 허발에서 파생된 방언으로 추측된다.

 

한편 위에 소개된 소설 <암소> 인용문에서 넌출뻗어나가 길게 늘어진 식물의 줄기를 말한다. ‘덩굴과 혼동할 수도 있는데 전혀 다른 말이다. 덩굴또는 넝쿨길게 뻗어서 다른 것을 감아 오르는 식물의 줄기를 의미한다. 또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비슥비슥어떠한 일에 대하여 탐탐히 여기지 아니하고 잇따라 따로 떨어져 행동하는 모양을 나타낸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허발나게는 표준어이고 비슷한 뜻으로 허천나게가 있다. 그러나 허벌나게허발에서 파생된 전라도 방언이다. 상황에 따라 굉장히’, ‘게걸스럽게의 뜻으로 사용된다. 또 방언이라고 해서 틀린 표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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