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여우야! 시간만 축낼거야?

반응형

슬퍼도 괴롭다 하지 말고 서러워도 울지 말란다. 그깟 사랑의 슬픔도 세월이 지나면 다 잊혀진다고 말이다. 세월이 약이라고 노래하는 가수도 있지만 그저 시간이 흘러 사랑의 아품이 아물었을까? 상처가 아무는 동안 얼마나 많은 방황을 했겠으며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약도 오남용을 반복하면 중독되기 십상이다. 세월은 시간과 처절하게 싸운 이들에게 온전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숙명론적 사고를 가진 이들에게 세월은 영원히 아물지 않은 상처일지도 모른다. 이솝우화에는 나무 구멍 속에 갇힌 여우 이야기가 있다. 이 여우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 여우 한 마리가 참나무에 난 구멍 속에 목동들이 먹고 남겨놓은 밥과 고기가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가서는 다 먹어치웠단다. 그런데 이 여우 식탐이 여간했었나보다. 다시 구멍에서 나올려고 보니 빵빵하게 부른 배 때문에 나올 수가 없었다. 지나가던 다른 여우 한 마리가 이 광경을 보고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무 구멍 속에 갇힌 여우의 사연을 들은 지나가던 여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들어갈 때처럼 배가 홀쭉해질 때까지 거기 그냥 있어. 그러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으니까."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고 지구는 그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놀랐고 그를 우주의 질서를 거역한 위험천만한 인물로 보았을 것이다. 당연히 우주의 중심은 인간이 사는 지구이고 태양은 그 지구 주위를 돌아야 했으니까. 16세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한참 전인 기원전 3세기 그리스에서도 아리스타르코스라는 사람이 '지구가 돈다'는 주장을 했지만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어디 '불변의 진리'를 제자리로 되돌려놓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어디 이 두 사람 뿐이었겠는가. 불변의 진리마저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수천 년의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피가 뿌려졌다. 하물며 선과 악이 혼재된 역사 속에서 선만 추려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밤하늘의 별을 따는 일과 무엇이 다르랴! 강자에 의해 철저하게 숨겨지고 왜곡되어 왔으니 말이다.  

 

현재는 시간과 싸웠던 선배들의 피와 땀이 자양분이 되어 피어난 꽃이다. 또 미래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투쟁하지 않는 현재의 시간들은 미래가 아닌 '연장된 현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멍에 갇힌 여우가 꼭 밖으로 나와야 할 당위가 있다면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 사이 호랑이나 사자라도 나타난다면……. 그저 기다리는 것은 숲 속의 지배자인 사자나 호랑이의 바램일 뿐이다. 

 

이솝이 '시간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준다'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교훈을 주려 했다면 그의 의도를 의심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이 포스팅과 관련된 책 구매하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