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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세계명작단편소설

응답하라! 큰 바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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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 얼굴/너새니얼 호손 (Nathanier Hawthorne, 1804~1854, 미국)/1850년

 

조그만 섬 뒷산에 고승이 사자를 키우며 살았다. 그런데 앞산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어 마을에 출몰하면서 가축들을 잡아먹고 심지어 사람까지 해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은 고승은 이 고약한 호랑이를 포획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키우던 사자를 앞세우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앞산으로 호랑이 사냥을 떠났다. 결국 고승과 사자, 마을 사람들의 일사분란한 협력으로 호랑이를 잡았지만 그 과정에서 고승과 사자는 상처를 입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호랑이를 잡긴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과 공포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을 도와주던 고승과 사자까지 죽었으니 사람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마을 사람들은 고승과 사자를 바위섬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는데 이 때 하늘에서 "언제가 세상을 평안케 할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바위섬을 옆에서 보면 사람의 얼굴과 꼭 닮아서 사람들은 '큰 바위 얼굴'이라 불렀다고 한다.

 

필자가 태어나고 살았던 고향 마을에 전해지는 '큰 바위 얼굴'의 전설이다. 갸름하고 주먹만한 얼굴이 선남선녀의 기준인지라 얼굴을 축소하기 위한 별의 별 방법들이 다 동원되고 있는 요즘 큰 얼굴이 뭐 그리 내세울 일인가 하겠지만, 전설 속에서 큰 (바위)얼굴은 그야말로 선각자, 구원자, 영웅의 다른 이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큰 바위 얼굴' 전설에서 '크다'라는 뜻은 단순히 물리적 면적이 아닐 것이다. 인간 됨됨이를 구성하는 각종 성정의 무한한 부피를 말함이리라.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 읽어봤을 소설 <큰 바위 얼굴>에 나오는 '큰 바위 얼굴'의 실체는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모양과 크기는 제각각일지언정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는 동서고금 사람들의 한결같은 염원이고 희망일 것이다.

 

큰 바위 얼굴의 생김새는 숭고하면서도 웅장하고 표정이 다정스러워 그것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행운이었다. 큰 바위 얼굴은 온 인류를 포용하고도 남을 것만 같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교육이 되었다. 사람들이 믿는 바에 의하면, 이 골짜기의 토지가 기름진 것은 자비로운 큰 바위 얼굴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큰 바위 얼굴> 중에서-

 

<주홍글씨>로도 유명한 너새니얼 호손(Nathanier Hawthorne, 1804~1854, 미국)의 소설 <큰 바위 얼굴>도 필자가 어릴 적 들었던 '큰 바위 얼굴' 전설과 유사한 인디언 전설을 모티브로 쓰여졌다고 한다.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시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의 얼굴이 새겨진 대형 인공 조형물이 있는 미국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러쉬모어에는 이 인공 '큰 바위 얼굴'이 새겨지기 오래 전부터 내려온 전설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은 사람 얼굴을 닮은 큰 바위를 보면서 미래를 내다보았는데 그들은 언젠가 '큰 바위 얼굴'과 닮은 사람이 반드시 현세에도 태어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수백 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1923년 도안 로빈슨이라는 사람이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이 곳에 미국 역대 가장 유명한 네 명의 대통령 얼굴이 새겨진 인공 조형물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사업은 미 의회의 도움을 받아 장장 6년 여에 걸쳐 1941년 완성되었다고 한다. 너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은 이 인공 조형물이 새겨지기 100년 전에 발표한 소설로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던 인디언 전설을 들려주는 식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어니스트는 어머니에게 들었던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언젠가 현실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마을 사람들이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어니스트는 이내 실망하고 만다. 어니스트가 보기에는 어느 누구도 전설 속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마을 출신 재력가였던 개더 골드(Gather Gold, 황금을 모으다라는 뜻)도, 자선사업가였던 스캐터 코퍼(Scatter Copper, 동전을 뿌리다라는 뜻)도, 전쟁 영웅 올드 블러드 앤드 썬더(Old Blood And Thunder, 피와 천둥의 노인이라는 뜻)도, 위대한 연설가 올드 스토니 피즈(Old Stony Phiz, 늙은 바위 얼굴이라는 뜻)도 마을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어니스트가 보기에는 '큰 바위 얼굴'의 장엄함이나 위엄, 자비로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어느 시인을 통해 진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은 다름아닌 어니스트(Honest,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뜻)였음이 밝혀진다.

 

어니스트는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바를 청중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자신의 사상과 일치되어 있었으므로 힘이 있었고, 그의 사상은 자신의 일상생활과 조화되어 있었으므로 현실성과 깊이가 있었다. 이 설교자의 하는 말은 단순한 음성이 아니요, 생명의 부르짖음이었다. 그 속에는 착한 행위와 신성한 사랑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이 융해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윤택하고 순결한 진주가 그의 귀중한 생명수 속에 녹아 들어간 것 같았다. -<큰 바위 얼굴> 중에서-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는 해이기도 하다. 저마다 '큰 바위 얼굴'을 자처하며 표를 호소할 것이다. 글쎄. 표를 호소할지, 구걸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큰 기대를 하지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서글픈 현실이다. 재작년 겨울에도 저마다 '큰 바위 얼굴'이 되겠다며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결국 우리가 선택한 '큰 바위 얼굴'은 개더 골드요, 스캐터 코퍼요, 올드 블러드 앤드 썬더요, 올드 스토니 피즈였으니 실망은 어느덧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도대체 '큰 바위 얼굴'은 어디에 숨어 있길래 나락으로 나락으로 추락만 거듭하는 고달픈 시민들을 모른 체하고 있을까. 그럼에도 확신한다. 우리와 너무 가까이 있어 보이지 않을 뿐 언젠가 그 형체를 드러낼 것으로. 응답하라! 큰 바위 얼굴.

 

바위 가까이 가면 거대한 얼굴의 윤곽은 사라지고 그저 거대한 바위에 불과하게 보이지만 차차 뒤로 물러서면 바위의 얼굴 형상은 너무도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희미해질 만큼 멀어지면, 큰 바위 얼굴은 구름과 안개에 싸여 정말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큰 바위 얼굴> 중에서-

 

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 주인공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이었던 것처럼 어쩌면 현실 속 '큰 바위 얼굴'은 힘겨운 현실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양심껏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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