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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교학사 사태, 이렇게 해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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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

 

요즘 새록새록 재생되는 학창 시절 기억 중 나이가 들어도 잊혀지지 않는 글 중 하나다. 모든 교과서의 표지를 넘기면 유독 빳빳하고 맨질맨질한 종이 흰색 바탕에 이렇게 시작하는 한 페이지 분량의 글이 있었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국민교육헌장'이었다. 단순히 교과서 첫 페이지에 존재만 한 게 아니었다. 전체 문장을 다 외워야 했고, 외우지 못하면 선생님의 가차없는 체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등교할 때는 교문 입구에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마음 속으로는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로 시작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했다. 이 때 짝다리를 짚거나 제대로 된 위치에 손이 올라가 있지 않거나 지나치게 빨리 끝내고 교문을 들어설라치면 학생 주임 선생님과 선도부 형들이 시키는대로 원산폭격이라는 무시무시한 얼차려를 받기 일쑤였다.

  

▲ 1968년 12월5일에 선포된 '국민교육헌장'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가 급기야 국정 교과서 부활이라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시대착오적 발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교과서 검정 제도의 취지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여당의 '교학사 구하기'가 도를 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 교학사 교과서를 통해 국가가 또는 현정부가 요구하는 인간형의 학생들을 양성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음을 민낯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 학생들이 과거 필자가 암송해야만 했던 '국민교육헌장'의 내용대로 국가주의와 반공 정신에 투철한 인간형으로 교육되어질지도 모르겠다. 물론 정부·여당의 비상식적인 음모를 막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학사를 제외한 나머지 한국사 교과서의 오류를 꼬투리 잡으며 정부가 편수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교육부의 발표는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가 단순한 말뿐인 잔치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우익 교과서의 확산을 저지하고 있는 일본 교과서 운동 단체들에게 '양심 세력의 승리'라던 보수언론과 정부·여당은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 0%를 이뤄낸 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들에게 종북 딱지 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과거 회귀를 꿈꾸는 세력들의 가히 전방위적인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우익들이 만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펴낸 교과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수많은 문제점들은 굳이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미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검증이 끝났기 때문이다. 교학사 주장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또 좌파 교과서가 있다면(실제로는 없지만) 우파 교과서도 있어야 한다. 다만 각자의 정치 이념을 주장하더라도 역사적 사실 관계나 보통의 상식, 다수의 정의가 정치 논리에 따라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인물이 박정희라고 해서 그의 독재와 친일 행위마저 미화해서야 되겠는가. 정치적인 문제는 그렇다 치고 교학사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역사적 사실에 관한 오류, 베끼기, 출전 오류, 잘못된 맞춤법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교육부가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수정 기회를 줬지만 여전히 수백건의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니 어떻게 이런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 말이다. 

 

 

▲ 잘못 표기된 교학사 교과서의 서간도 위치.

왼쪽은 교학사 교과서의 서간도 위치, 오른쪽은 실제 서간도 위치.    사진>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교육부가 751건을 자체 수정했다며 지난 13일 최종 승인한 교학사 교과서에 여전히 수백건의 오류가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교학사 교과서 최종본을 자체 조사한 결과 357건의 오류가 추가로 발견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논란이 되었던 친일과 독재 미화, 표절, 출전 오류 등은 여전히 제대로 수정이 안된 상태라고 지적하면서 대표적으로 2건의 틀린 부분을 공개했다. 하나는 교학사 교과서 238쪽의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자원이 풍부한 인도차이나를 공격했다. 이 지역에서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이 반발했다."에서 미국은 인도차이나에 식민지를 두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는 226쪽의 지도로 서간도 위치도 엉뚱한 곳으로 표시됐다는 것이다(위 그림 참조).

 

▲ 교학사 교과서 대표 집필자인 이명희 교수를 비난하는 1인 시위.  사진>민족문제연구소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교학사 교과서 논란은 하루빨리 마침표를 찍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요즘 유행하는 말이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언급했던 이 말은 요즘 새누리당과 정부 관계자들의 유행어로 번지고 있다. 어떤 기자회견이나 인터뷰에서고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말이다. 그러나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에 혈안이 된 정부·여당을 볼 때 '비정상'과 '정상'이 전도되지는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최근 정부·여당의 행태를 보면 친일과 독재 미화, 역사적 사실의 왜곡, 베끼기 등이 '정상'이고 이를 비판하는 많은 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는 '비정상'의 길을 걷고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지극히 옳은 말이지만 그 실천에 있어서는 스스로의 말을 뒤집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학사 사태의 해법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유행어에 있다고 할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오류 투성이인(비정상)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을 취소(정상)하면 되는 것이다. 정답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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