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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야마시꾼은 절대 못당할 참꾼의 염력, 현실에서도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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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이외수/1979년

 

노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마 '참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속임수를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참꾼의 무기는 염력이다. 오직 마음의 힘만으로 승부를 가늠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속임수가 뛰어난 '야마시꾼'이라 해도 이 참꾼을 당할 재간은 없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외수의 <고수> 중에서-

 

이외수의 소설 <고수>는 참꾼과 야마시꾼이라는 노름판 주역(?)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기와 협작만 존재할 것 같은 노름판에도 거스를 수 없는 일종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속임수가 뛰어난 야마시꾼이라 해도 절대 참꾼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참꾼'이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노름꾼이라면 '야마시꾼'은 사기꾼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노름판도 이럴진대 현실이 이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또 현실이 이런 노름판보다 못하다면 무슨 이유에서일까. 생각컨대 소설 속 노름판은 우리네 현실, 사회의 축소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아이의 눈으로 보는 어른들의 세상

 

소설 <고수>는 깜짝 반전의 연속이다. 노름판에 어린 아이가 등장하는 설정도 그렇지만 이 아이가 참꾼의 염력을 지닌 '고수'였다니 부조리한 사회를 꼬집기 위한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조용필은 항상 맨 나중에 등장한다고 했던가! 당구장에 미리 모인 노름꾼들 앞에 오징어를 씹으며 뒤늦게 나타난 이 어린 아이의 외모를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금세 웃음이 터지고만다. 

 

청년 곁에는 꼬마가 하나 딸려 있었다. 국민학교 4학년쯤 되어 보이는 계집애였다. 한마디로 지독하게 못생긴 용모를 가진 계집애였다. 그 애의 머리카락은 성질 나쁜 식모애가 함부로 냄비 바닥을 문질러대다가 아무렇게나 팽개쳐버린 수세미처럼 너저분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땟국물이 졸아붙은 얼굴, 들창코에다 주근깨에다 너부죽한 입에다―못난이 삼형제라는 인형들 중에서 가운데 인형과 흡사해 보였다. -<고수> 중에서-

 

 

화투. 사진>뉴시스

 

고수를 자처하는 주인공 '나'의 속임수와 나를 제외한 나머지 노름꾼들의 비열하고 야비한 협작은 참꾼의 염력을 지닌 이 꼬마 계집애의 염력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꼬마 계집애와 동행한 청년의 말을 빌리자면 이 아이는 돈에 욕심이 나서 노름판에 돌아다니는 게 아니란다. 어른들이 돈을 잃고 비굴해지는 꼴을 보고 싶어서 노름판에 돌아다닌단다. 여느 소설에서처럼 어린 아이의 등장은 어른들의 야비하고 비열한 세상을 더욱 더 극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한편 어린 아이의 등장은 마음의 힘만으로 승부를 가늠하는 염력을 지닌 참꾼이 도박이나 노름판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존재하리라는 저자의 믿음과 희망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겠다.

 

흔히들 인생은 도박이라고 말한다. 이 말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는 모 아니면 도의 요행의 단면쯤으로 해석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멋있는 말이 변질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생은 도박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건 멋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진리는 아니다. 도박을 할 때만큼 뼛속까지 녹아들 정도로 진지하게 인생을 살아본 사람은 이 세상에 그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패가 돌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눈동자가 음흉하고 교활한 빛을 띠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수> 중에서-

 

우리는 왜 안녕하지 못한가

 

저자가 보여주려고 하는 비열하고 야비한 어른들의 세상은 개인과 개인의 일상을 벗어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 것이다. 염력을 지니고 정정당당하게 살아가려는 개인들이 참꾼이라면 속임수와 야비하고 비열한 협작을 일삼는 사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권력과 자본은 다름아닌 야마시꾼일 것이다. 참꾼의 염력으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유지시켜 왔지만 물막이를 치려는 야마시꾼의 시도 또한 역사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야마시꾼의 속임수와 협작은 언제고 들불처럼 일어날 참꾼의 염력을 당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역사의 진리다. 참꾼의 염력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요즘 우리가 안녕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야마시꾼, 권력과 자본의 속임수와 협작이 극에 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임시직이나 일용직이 상용직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요즘 우리 사회의 안녕하지 못한 이유가 이 보고서에 단적으로 담겨있다고 하겠다. 서민 살림은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정부는 복지는 내팽개친 채 기업 봐주기에만 여념이 없다. 참꾼은 야마시꾼이 지난 겨울 한 말을 다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참꾼의 염력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고도 무시하는지 야마시꾼의 속임수와 협작은 너무도 떳떳하고 당당하다. 그 요란하고 현란한 사탕발림에 속아준 참꾼들을 향해 '야! 이 바보들아, 내가 이럴 줄 몰랐냐?' 하는 식이다. 권력과 자본의 속임수와 협작에 안녕하지 못한 요즘 우리 사회가 소설 속 도박판과 뭐가 다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야마시꾼들의 비열하고 야비한 칼날만이 어두운 밤길에 빛날 뿐이다.

 

이제부터 완전히 다른 세상이 전개되는 것이다. 나이도 무시되고 신분도 무시되고 근엄한 표정도 무시되고 긴 턱도 무시되고 무시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무시되고 다만 무시되지 않는 것은 끗발과 돈뿐이다. 지하실 밖에 있는 도덕과 법률은 이제 개떡도 못 되는 것이다. -<고수> 중에서-

 

현실에서 야마시꾼은 식은 죽 먹듯 참꾼을 속이고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참꾼의 염력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 제 아무리 속임수가 뛰어난 야마시꾼이라 해도 참꾼만이 가진 마음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다. 지금껏 인류의 역사가 그래 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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