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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음식에 곁들인 고명이 딸이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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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완장>으로 배우는 우리말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자기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꼴 봤어? 완장 차고 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 없이 넘들이 흘린 뿌시레기나 줏어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 게여! 진수성찬은 말짱 다 뒷전에 숨어서 눈에 뵈지도 않는 완장들 차지란 말여!" -윤흥길의 <완장> 중에서-

 

'행랑이 몸채 노릇한다'는 속담이 있다. 신분이 낮은 아랫사람이 일에 간섭하고 주인 노릇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국민을 섬겨야 할 위정자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요즘 세태와 딱 맞는 속담이다. 행랑은 대문의 양쪽이나 문간에 붙어 있어야 하거늘 마치 안방인양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은 아마도 완장이 주는 위력이고 허세일 것이다. 그 완장은 다름아닌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등 권력을 구성하는 각종 회전의자들이다. 박지성은 완장 하나로 축구 국가대표팀을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일사분란한 완전체로 만들었는데 완장도 누가 차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지나보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이 풍자하고 있는 것도 바로 정치 권력의 폭력성과 보통 사람들의 암울한 삶이다. 무지렁이 시골 처년이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센 권력을 얻으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권력과 폭력의 본질을 추적해 가는 소설이다. 동네 건달 임종술은 졸부 최 사장의 저수지 관리를 맡게 된다. 임종술의 왼쪽 팔뚝에는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가 새겨진 감시원 완장이 채여져 있다. 도대체 완장이 무엇이길래 그날 이후 임종술은 안하무인이 된다. 심지어 면 소재지가 있는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를 지경이었으니 완장이 주는 권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완장을 두른 임종술의 허황함은 급기에 저수지로 나들이 나온 최 사장 일행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으로 극에 달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해고되지만 임종술은 완장의 달콤함을 잊지 못하고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저수지 감독하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중 가뭄 해속책으로 저수지의 물을 빼 전답에 부어야 한다는 수리조합 직원, 경찰과 대립하면서 행패까지 부려보지만 결국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마을을떠난다. 임종술이 떠나고 물이 빠지는 저수지에는 그가 두르고 다니던 완장이 떠다니고 임종술의 어머니인 운암댁은 그 완장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소설 <완장>의 재미와 풍자는 해학과 맛깔스런 전라도 사투리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비속어를 비롯한 일상어의 가감없는 선택은 마치 판소리 한 대목을 들을 때처럼 진지하지만 웃음이 절로 나온다. 소설 <완장>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이나 잘못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을 찾아보는 것이다. 때로는 주석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입가에 잡힐 듯 잡힐 듯 맴도는 우리말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소설 <완장> 속에 나오는 우리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 각종 고명을 곁들인 비빔밥은 눈마저 배부르게 한다. 사진>미디어원 

 

싫다고 앙탈하는 철부지 손녀를 윽박질러 보라색 새 옷을 벗기고 멀쩡한 머리도 싹둑싹둑 가위질을 해서 더펄머리로 깡똥하게 잘라버렸다. -<완장> 중에서- 

'더벅머리 댕기 치레하듯'이라는 속담이 있다. 바탕이 좋지 않은 것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친 겉치레를 하여 오히려 더 흉하게 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소설 속 더펄머리가 바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더벅머리를 말한다. 이와 반대로 사용하는 우리말에는 '깨끔하다'가 있는데 깨끗하고 아담하다는 뜻이다.

 

그렇게만 되는 날이면 시방 받는 월급은 그 유가 아니야! -<완장> 중에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책을 읽었던 독자들도 행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면 전혀 생소했던 말일 것이다. 이 말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거나 심하다는 뜻이다. 즉 지금 받는 월급은 비교가 되지않을만큼 많이 받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젊은 일소이 씨가 마르다시피 된 농촌에서 그만한 일꾼을 구하기도 여간 힘든 노릇이 아니므로 -<완장> 중에서-

 

'씨가 마르다'라는 말은 일상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지만 비속어인마냥 이 말을 하는 상대를 천박스럽게 바라볼지도 모른다. 외래어와 외국어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우리말이 처한 현실이 이렇다. 어쨌든 알다시피 '씨가 마르다'는 특정 종류의 것이 모조리 없어짐을 의미한다.

 

한편 잘못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도 있다.

 

종술이가 칼을 갈면서 해코지를 별러 대는 중이라는 귀띔을 받고 익삼 씨는 초저녁 무렵에 벌써 마을을 빠져나가 어디론지 피신해 -<완장> 중에서-


한자와 결합된 우리말 해코지는 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으로 일상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해꼬지로 많이 쓰고 있는데 바른 표현은 해코지라는 것.

 

마지막으로 소개할 문장은 아래와 같다.

 

설령 품삯 대신 금지옥엽 고명딸 주어 사위를 삼는다 해도 막무가내로 도리질만 하는 것이었다. -<완장> 중에서-

 

이 단어를 모르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아들 많은 집의 외딸을 이르는 말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예쁘고 귀한 캐릭터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하기야 아들만 많은 집에 유일한 딸이니 어디 하나 예쁘지 않는 구석이 있을까. 한편 이 단어를 읽거나 들으면서 음식을 떠올린 독자가 있다면 우리말에 상당한(?) 조예가 있다고 판단해도 되지 싶다. 맞다. 고명은 음식의 모양과 맛을 더하기 위해 음식 위에 뿌리거나 얹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즉 고명딸이란 아들만 있는 집에 고명처럼 예쁘게 얹힌 딸이라고 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이 밖에도 소설 <완장>에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말들이 많다. 또 <관촌수필>의 저자 이문구가 충청도 방언을 맛깔스럽게 사용했다면 소설 <완장>에서는 전라도 방언의 투박한 맛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말들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아닐까 싶다.

 

소설 속 재미있는 단어들만 소개하다보니 정작 소설 <완장>의 메세지를 잠시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 읽어보시라. 요즘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는 소설인지도 모른다.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머리를 숙였던 위정자들이여, 제발 완장값 좀 하시라!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이며,
                그것을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존 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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