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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시인의 마을

자연이기를 거부한 인간의 마지막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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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협약/백무산(1955~)

 

지구는 우주라는 물위에 떠 있는 배

인간과 자연은 하나이면서 둘이다

 

인간은 그 배를 만드는 데 못 하나 박지 않았다

인간은 그 집을 짓는 데 돌 하나 나르지 않았다

지구 위의 모든 것은 인간의 역사보다 길다

인간은 어떠한 창조 행위도 하지 않았다

인간은 금이 간 사과 하나 붙이지 못한다

 

인간이 창조한 것은 탐욕

착취의 먹이사슬뿐

 

배의 밑창에서 지붕까지 먹어치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더이상 자연이 아니며

자연은 더이상 인간적 자연이 아니며

오늘 자연은 자본가적 자연이기 때문이다

 

지금 밑창이 뚫리고 지붕이 새고 있다

다시 인간은 자연과 공존을 꿈꾼다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공존의 전제는

대화와 공정한 나눔의 약속이다

자연과 단체협약이라도 맺으려는가

 

어떻게 그들의 생각을 알 것인가

몸을 풀어 나누듯이

숨을 마시고 토하듯이

그리고 침묵하듯이

 

그러나 착취의 구조는 모든 노력을

언제나 물거품으로 만든다

여전히 밑창이 뚫리고 지붕이 새고 있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했던가! 태초에 자연과 인간은 하나였다. 아니 인간은 지구라는 거대한 자연을 구성하는 작은 자연 중 하나였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선물하면서 인간은 자연이기를 거부했다. 한 번 자연이기를 거부한 인간에게 탐욕은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었고 인간 스스로를 더욱 다양한 종(種)으로 분화시켰다. 스스로를 지배와 피지배로 나누는 것도 모자라 자연마저도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다.

 

 

 

▲ 어디가 강이고 어디가 숲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녹조. 사진>한겨레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도대체 인간이 했던 역할이 무엇이었냐는 시인의 자책에서 무위도식하려는 인간의 탐욕을 본다. 번개와 천둥을 내리고, 거대한 물결을 만들고, 살인적 진동과 뜨거운 열을 내뿜는 것도 자연이고 싶지 않은,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에 신이 노여워하는 것은 아닐까. 

 

살인적 폭염을 기록했던 올 여름, 전 국토는 온통 자연색(?) 일색이었다. 강과 숲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은 진한 녹색을 자랑했다. 그러나 생명이기 위한 물의 최소한은 무색무취(無色無臭)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탐욕으로 점철된 인간의 시간은 물빛 정도만큼의 재앙에 직면해 있다. '밑창이 뚫리고 지붕이 새고' 있는 것이다.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뒤늦게 자연이기를 거부했던 인간이 그나마 자연과의 공존을 꿈꾸고 있다니 말이다. 시인의 말처럼 공존의 전제는 '대화와 공정한 나눔의 약속'이다. 자연과 단체협약이라도 맺으려면 공존의 전제가 해결되어야 하나 인간이 수천 년 동안 경멸했던 아니 철저하게 파괴하고 도살했던 자연의 생각을 알기나 할까. 재앙 앞에서 내민 인간의 자연과의 공존의 꿈은 한 여름밤의 꿈처럼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질렀던 버릇이자 범죄였던 착취의 구조를 자연에서 걷어내지 않으면 말이다. 이제 인간이 '밑창이 뚫리고 지붕이 새는' 재앙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참회의 시간뿐이다. 마치 거미줄처럼 인간과 자연에게 촘촘하게 내걸렸던 착취의 구조를 걷어내고도 최소 수천 년은 더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만 비로소 인간과 자연은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게 될 것이고 그 때 비로소 자연과 인간은 협상 테이블에서 '대화와 나눔의 약속'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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