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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왜 탈남자에는 무관심한가,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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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박노자/2009년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우리의 자손들이 장차 유치원 시기부터 서로를 경쟁자로만 인식해 ‘무한 경쟁’에 몰입할 것인지 아니면 서로를 배려해주고 도와주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 것인지는 지금 우리들의 행동에 달려 있다. 오른쪽으로 치우쳐도 너무 치우친 우리 상황에서는, 비시장적 사회와 같은 궁극적 이상은 고사하고 일반 대중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만한 복지 자본주의만이라도 성취하려면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배계층에게는 왼쪽으로부터의,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계속 넣어야 한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과 ‘왼쪽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크게 봐서 동의어이다. ‘무한 경쟁주의’의 지옥에서 ‘왼쪽’으로의 행진만이 우리의 미래다. 현 위치에서 정지해버리는 것은 과거로의 퇴보와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이미 경험하고 있듯이, 한국적 상황에서 재벌 대표자들의 시장주의적 통치는 ‘경찰주의’, ‘공안 정국 조성’, ‘남북 긴장 조장’, 그리고 끝없는 ‘밑’에 대한 폭력을 의미할 것이고, 결국 과거의 폭력적 통치로의 역행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가 이를 저항없이 받아들인다면 나중에 탓할 데라고는 우리 자신밖에는 없다. 한 국민은 그 국민의 자질에 맞는 사회 체제와 정부를 갖게 돼 있다는 격언이 아무리 진부하다 해도, 근대 정치학은 이 말 이상의 진리를 아직도 산출하지 못했다.

 

그런데 세상은 탈북자는 잘 알아도 탈남자들은 거의 모른다. 내가 이야기하는 탈남자란, 단순한 ‘공식적’ 이민 이외에 사회·문화 등 복잡한 이유로 비합법적 통로를 포함한 각종 통로를 통해서 남한을 떠난, 그리고 남한에 다시 오려고 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물론 중국에서의 탈북자와 법적으로 같은 위치에 있는 한국계 불법 체류자들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우리가 통상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북한의 종주국인 중국에 가 있는 탈북자의 수(약 20만 명)만큼이나 불법적 탈남자들(약 19만 명)이 남한의 종주국인 미국에 살고 있다. 탈북자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해외 언론들이 왜 그 탈남자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는 걸까? 거기다가 일본(약 5만 명) 등 세계 각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계 불법 체류자들을 다 합하면 30만 명에 육박할 것이다.

 

그러니 보수주의자들이여, 탈북자들의 행렬을 들어 "북괴가 곧 망한다"는 헛소리를 하기 전에 탈남자들의 숫자라든가 그 질적 다양성 등에 주목해보기 바란다. 그걸 보면서 개성이나 독립심이 강한 이들, 집단의 룰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을 아직도 포용하지 못하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제도들의 한계를 느끼지 못하는가? 그러나 그러한 한계가 인정돼도 남한이 곧 망할 일이 있을까? 북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김씨 '왕조' 정권의 피해자인 탈북자들을 친근하게 생각한다면, 강부자 정권의 피해자인 탈남자에게도 근본적으로는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지금 세계 공황이 한국을 분명히 몇 년간 강타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도산 기업인, 실업자, 교육 분야에서의 과열 경쟁 피해자 등이 또 외국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복지국가이 기틀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탈남 행렬'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중에서-

 


'미수다(미녀들의 수다)'란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국내에 거주하는 세계 각국의 미녀들이 출연해 한국생활 적응기를 재미있는 수다로 엮어가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종영되었지만 그 때 세계 각국 미녀들이 했던 발언 중에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발언이 있다. 아마 핀란드에서 온 따루라는 미녀였을 것이다. 한국과 세계 각국의 문화 차이를 놓고 한바탕 수다가 벌어졌는데 그녀가 말한 한국과 핀란드의 문화 차이 중에 한국에서 소위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핀란드에서는 보수적인 사람들의 주장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우리사회가 지나치게 오른쪽에 치우쳐 있구나. 문화 차이라기 보다는 정치˙사회적 인식의 차이였던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들여다봐도 우리사회의 평균적인 정치·사회적 좌표가 우편향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작년 대선 당시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실이 만천하에 폭로되었는데도 이를 비난하는 촛불집회 건너편에는 국정원을 지키자는 보수단체의 맞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겠지 싶지만 사실 국정원을 지키자는 보수단체는 현정권을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뚜렷한 선악의 틀 안에서 이들처럼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시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전부 진보적 사고로 무장된 '꾼들'이냐 하면 또 그렇지 않다. 평범한 시민들이 대부분이다. 이념을 떠나 그저 국가의 잘못에 대해 국가 스스로가 반성하고 개혁하기를 바라고 열대야 한복판에 촛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과거 10년의 민주정부를 진보정권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외국의 잣대를 들이대면 기껏해야 중도우파에 불과할 것이다. 중도좌파라 부르기에도 과거 10년의 각종 정책들은 보수 색채가 강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너무 오른쪽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정작 가운데 있는 사람이 왼쪽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왜 이렇게 지나치게 오른쪽에 치우쳐 있을까. 보혁이나 좌우 논쟁보다 분단과 북한이라는 존재가 우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우리사회에서 제대로 된 이데올로기 논쟁이 벌어진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모든 가치는 북한이라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아주 특이하고 특별한 존재 앞에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이념이 아닌 북한을 중심으로 좌와 우가 갈리고 진보와 보수가 구분된다. 그러니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정도로 한국사회를 꿰뚫고 있는 어느 이방인의 눈에 비친 우리사회의 자화상은 이해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의 저자이자 러시아 출신 귀화 한국인인 박노자 교수가 탈북자 수만큼이나 한국이 싫어 떠난 탈남자가 많다는 사실을 언급한 이유도 북한이라는 존재 때문에 제대로 된 진보와 보수의 경쟁은 커녕 지나치게 오른쪽에 치우쳐서 결국은 가운데로 가기에도 벅찬 우리사회의 단면을 꼬집기 위함일 것이다.

 

최소한 리영희 선생의 말처럼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는 평범한 진리만이라도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줄다리기를 하더라도 밧줄을 정가운데에 두고 호각을 불어야 정정당당한 경쟁이 될 게 아니냐 말이다.


 

허접한 글이지만 참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강여호를 만나는 방법은 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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