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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스승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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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있다/우치다 타츠루/2012년

 

만약 선생이라는 존재를 어떤 지식과 기술을 구체적인 형태로 소유하고 그것을 고객에게 전수한 대가로 보상받는 직업인으로 정의한다면 그와의 관계를 사제 관계라고 부를 수 없을뿐더러 진정한 의미의 배움 또한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관계에서는 배우는 자가 자신에게 어떤 지식과 기술이 결여되어 있는지 사전에 알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민 돼지고기 2백그램 주세요."

"네, 5천원입니다."

 

이것은 건전한 거래이긴 합니다만 배움은 아닙니다. 왜냐면 이러한 관계에서 스승이 갖고 있는 지식과 기술은 제자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단지 양적으로 많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정액의 대가를 지불하면 그에 상응하는 상품이 나오는 자동판매기를 이용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진정한 사제 관계를 통해 배우는 것은 자신이 그 선생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는가를 사사받기 전에는 미처 말할 수 없는 무엇입니다. -<스승은 있다> 중에서-

 


 

교사와 스승의 차이는 무엇일까. 얼핏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교사라고 해서 다 스승으로 부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생각컨대 지식 전달자가 교사라면 스승은 지혜의 전달자가 아닐까 싶다. 직업인으로서의 교사와 삶의 멘토로서의 스승이 동등한 위치에 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같은 교육 환경에서는 교사만 강요할 뿐 스승으로서의 교사는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영어, 수학 점수 1점이라도 높이고 대학 진학률, 더 나아가 명문대 한 명이라도 더 보내면 최고의 교사로 인정받는다. 불완전한 인격체인 어린 학생을 건전한 생각을 가진 성인으로 키우는 스승의 역할은 오히려 잘 나가는 학교의 흠(?)이 될 뿐이다. 

 

네이버 지식검색에 따르면 스승에는 두 가지 어원이 있다고 한다. 무당을 나타내는 말로 '무격(巫覡)'이 있는데 여기서 '무'는 여자무당을, '격'은 남자무당을 말한다. 그런데 옛 사람들은 '무(巫)'를 '스승 무'로 읽었다고 한다. 여자 무당과 오늘날의 스승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고대 모계사회에서의 여자 무당을 감안한다면 '스승'은 절대자에 가까운 존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는 불가에서 중을 높여 부르는 말이 스승이었다고 한다. 중을 존경해서 부를 때 '사승(師僧)'이라고 했는데 '사(師)'의 중국 발음이 '스'란 점으로 미루어 '사승'이 변해서 '스승'이 되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스승의 날'은 1958년 충남 강경여자중학교 청소년 적십자사에서 시작되었는데 단원들이 병환 중인 선생님 위문과 퇴직한 선생님 위로 활동을 펼친 것이 계기가 되어 1963년 청소년적십자사 중앙학생협의화가 5월26일을 '은사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은사의 날은 1965년부터 매년 5월15일을 '스승의 날'로 다시 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5월15일은 세종대왕 탄신일이기도 하다.

 

직업으로서의 교사 또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신성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스승을 갈구하는 현실은 황폐해진 교육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지식을 매개로 거래하는 사제지간이 아닌 '삶의 지혜'를 매개로 한 배움을 사이에 둔 사제 관계는 요원한 꿈으로 끝날 것인가. 스승은 있다.


 

허접한 글이지만 참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강여호를 만나는 방법은 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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