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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시인의 마을

금택씨와 재분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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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저는 금택씨가

축구공을 산 건 2주전이란다

근린공원 안에 새로 생긴 미니 축구장 인조잔디를 보고

벌초 끝난 묏등 보듯 곱다 곱다 하며

고개를 외로 꼬기 석달 만이란다

평생 다리를 절고 늙마에 홀로된 금택씨가

문구점에 들어설 때 하늘도 놀랐단다

보는 이 없어 사람만 빼고 동네 만물은 모두

그가 의정부 사는 조카 생일선물 사는 줄 알았단다

삭망 지나 구름도 집으로 간 여느 가을밤

금택씨는 새벽 세시 넘어 축구공을 끼고 공원으로 가더란다

열시면 눈 감는 가등 대신 하현달에 불을 키더란다

금택씨 빈 공원 빈 운동장을 몇번 살피다가

골대를 향해 냅다 발길질을 하더란다

골이 들어가면 주워다 차고 또 차고 또 차더란다

그렇게 남들 사십년 차는 공을 삼십분 만에 다 차넣더란다

하현달이 벼린 칼처럼 맑은 스무하루

숨이 턱턱 걸려 잠시 쉴 때 공원 옆 5단지 아파트의

앉은뱅이 재분씨가 난간을 잡고 내려보더란다

어둠 속의 노처녀 재분씨를 하현달이 내려다보더란다

하현달을 금택씨 아버지가 내려다보며

보다 보다 보름보다 훤한 하현은 처음이라고

달처럼 중얼거리더란다

 

-박 철 시인의 '달'-

 

박철: 1960년 서울 출생, 1987년 『창비 1987』에 '김포'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험준한 사랑>, <불을 지펴야겠다> 등이 있음. 출처> 『창작과 비평』2012년 가을호

 

박노해 시인은 말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은 고요의 빛나는 바다'라고. 시인은 또 말했다. '햇살 쏟아지는 파아란 하늘'이라고. 시인은 사랑이란 '생명있는 모든 것들 하나이 되어 춤추며 노래하는 눈부신 새날의 위대한 잉태'라고 했다.

 

추석은 만남의 날이기도 하지만 추석은 그리움에 가슴시린 날이기도 하다. 추석은 가장 풍요로운 날이기도 하면서 추석은 가슴 한 구석이 휑해지는 날이기도 하다. 빛이 찬란할수록 빛이 그려낸 그림자는 더욱 또렷해진다. 추석달이 크고 휘영청 할수록 추석밤은 더 차갑고 냉랭한 법이다.

 

추석 낮밤이 왁자지껄할수록 침묵과 간절함으로 축제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리 저는 금택씨와 앉은뱅이 재분씨에게도 추석은 있다. 비록 마음 속에 담아서 펼치는 향연이지만 그들에게도 추석은 추석이다. 그래서 금택씨와 재분씨의 사랑은 보름달이 이지러져 가는 하현달 아래서 더 애절한지도 모른다. 추석은 나눔이고 일념(一念)의 관심이다. 더불어 따뜻한 추석 보내길....

 

*일념(一念)이란 불교에서의 시간 단위로 찰나의 1/75에 해당하는 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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