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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재미있는 책읽기, 만화책과 깡통의 같고도 다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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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추억의 책장을 넘기다보면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만화다. 예나 지금이나 극성스런 교육열 탓에 부모들의 아이들에 대한 금지사항 중 하나가 만화였지만 어찌됐건 만화와 얽힌 어린 시절은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였을 것이다. '미래소년 코난', '마징가 Z',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로보트 태권V'…. 필자 또래의 세대들에겐 아직도 주제곡을 흥얼거릴만큼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켠을 채우고 있는 만화들이다.

 

애니메이션 만화 말고도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만화방은 킬링 타임으로 이만한 게 없었을 것이다. 불량 청소년들이나 출입한다던 어른들의 믿음과 달리 실제로 누구든 만화방에서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만화 삼매경에 빠져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아마도 없지싶다. 게다가 이발관이나 미용실 등에는 만화잡지가 꼭 한 두 권씩 있곤 했으니 만화와 어린 시절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화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듯 하다. 요즘이야 만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입시위주의 교육 제도 하에서 만화책이 부모들의 권장도서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아직도 20세기의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심지어 1960~70년대에는 만화책이 사회발전을 저해하고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불태우기도 했다니 '현대판 분서갱유'라 불러도 무방하지 싶다. 

 

 

만화책이 아이들에게 선사해주는 상상력 대신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을 더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교육의 획일화는 창의적이니, 창조적이니 하는 교육목표들이 말뿐인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일본 사람들도 그 기저에는 만화책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요즘에야 많이 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서실태조사를 할 때 만화책은 제외하곤 했던 게 우리의 현실이다. 양장본과 같은 두껍고 딱딱한 어려운 책만을 독서로 생각했던 유교적 현학주의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만화책이 사회발전을 저해한다고 분서갱유(?)까지 단행했던 그 시절에는 모두 만화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있었을까.

 

범우사의「책과 인생」9월호에는 만화책을 불온시했던 시절 만화책에 대한 가치를 주장한 글이 있어 흥미롭다. 1953년에 발표된 글이니 문화산업으로서의 만화를 보는 대단한 예지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1953년 「문화세계」8월호에 실린 짧은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당시 사람들의 만화책에 대한 인식을 깡통과 비교한 대목에서는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미국의 대량 생산 중에서도 초대량 생산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깡통(캔)과 만화책이다. 우리의 주위를 보고 어렵지 않게 아 수 있는 깡통의 변신 공예품들―석유등잔, 재떨이, 식기로부터 심지어는 하꼬방 지붕 위에까지 올라가 있는 이 깡통의 광범한 이용 가치와 선택을 생각하여 볼 때, 이에 비해 만화책은 기껏해야 도배지나 싸게지(포장)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 그의 전부다. 깡통은 그의 본질적 진가 이상으로 활용되며 그 시가에도 때에 따라 등귀와 하락을 하는데 만화책에 있어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확실히 부당한 천대를 받고 있다. -출처: 책과 인생」2012년 9월호, 원문은 문화세계」1953년 8월호-

 

한편 우리의 오랜 출판문화 역사를 감안할 때 <옥루몽>이나 <장화홍련전>, <심청전>, <춘향전>, <을지문덕전>, <토끼화상> 등이 미국에서 만화화 되었다면 수백만 부의 매상을 올려 그 이익금을 자동차 회사나 영화사 같은 곳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자본가가 나왔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피력하기도 한다. 저자는 만화산업의 가치가 이렇게 어마어마할진대 아직 만화 후진국인 우리 입장에서 미국의 만화들을 수입하는 데 인색하지 말기를 주장하기도 한다. 조금은 사대적 관점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방점은 만화산업의 발전에 있는 듯 하다.

 

미국의 만화는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성인들이 만화를 좋아하는 까닭에 그 취재 범위도 넓고 수준도 상당한 것이 있다. 싱거운 것도 있고 그럴 듯한 것도 있다. 싱거운 것이라도 잘 생각하고 보면 역시 그럴 듯한 것이 많다. 우리가 미국의 만화를 볼 때에는 우리의 구미와 습성에 대한 선입견이라든지 토착민적 완고성을 버려야 한다. 처음 식빵을 먹었을 때 우리가 느끼던 그 심심한 맛이 그들의 만화 속에도 있다. 그것은 미국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에도 공통된 것이다. -출처: 책과 인생」2012년 9월호, 원문은 문화세계」1953년 8월호- 

 

저자는 미국의 자본주의적 윤리관과는 달리 만화는 반드시 돈이 있다고 해서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만화산업에 대한 기반이 전무한 상황에서 만화산업을 급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쩌면 만화산업에 대한 작은 첫걸음을 강조한 것 같다. 당시 미국 만화를 번역한 우리 만화책에 대한 묘사에서는 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도 만화문화를 넓히자고 급하게 서두르기는 싫다. 그리고 미국 만화를 우리말로 토를 달아 놓은 책들이 있는데(가령, I love you 아이 러브 유=편집자주) 그러한 짓은 제발 그만두기 바란다. -출처: 책과 인생」2012년 9월호, 원문은 문화세계」1953년 8월호-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면 그 당시 즐겨보던 애니메이션들이 대부분 일본 만화라는 것을 거의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던 독자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로 만화는 공개적인 문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로보트 태권V' 정도가 우리 애니메이션의 전부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회나 체육대회 때마다 응원가로 불렀던 '마징가 Z'와 '미래소년 코난'의 주인공들이 모두 일본 사람들이었다니 문화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뼈 속 깊숙이 파고도는 마력이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봤다면 얼마나 신기했을까.

 

'로보트 태권 V'의 감독 김청기는 어린 시절 문화 대통령 그 자체였다. '로보트 태권 V'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으니 말이다. 특히 '로보트 태권 V'가 처음 개봉되던 1976년에 서울에서만 20만 관객이 관람했다고 하니 요즘으로 치면 거의 천만 관객 영화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특히 '세월이 가면'의 주인공 최호섭이 부른 '로보트 태권 V' 주제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이라고 한다.

 

'로보트 태권 V'가 1976년 개봉된 이후 지속적으로 재개봉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명맥을 유지해 왔다면 MBC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었던 작품을 1977년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는 최소한 필자에게는 낯설게 다가온다. 다만 '으뜸가는 소년'이라는 뜻의 '마루치'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란 의미를 가진 '아라치' 등 주인공에게 붙여진 순우리말 이름은 참 신선하게 느껴진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제작해 세계적으로 흥행한 애니메이션들을 보면서 새삼 부러움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더욱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문화적 파급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다행인 것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교육 목적으로 만화책을 이용하기도 한다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최근 만화책 발행 종수는 다른 도서에 비해 월등한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2012년 상반기 자료만 봐도 2011년 상반기 대비 27.2% 증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증가세는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다만 발행부수는 최근 독서인구의 감소 추세에 따라 답보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통계를 보더라도 이제 만화책이 정정당당하게 도서의 한 종류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필자도 책읽기가 두렵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만화책을 권장하기도 한다. 책과 친해지기에 만화책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만화의 교육적, 산업적 측면은 배제하고라도 말이다. 

 

참고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책은 <토끼와 원숭이>라고 한다. 근대 최초의 만화로 1909년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형의 삽화가 있긴 했지만 <토끼와 원숭이>처럼 단행본 만화책은 아니었다. <토끼와 원숭이>는 김용환 작가가 1946년 5월1일에 쓴 단행본 만화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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