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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안철수의 생각>을 보는 옹호와 반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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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읽기를 주저한다. 거품같은 시류에 편승하기 싫어서기도 하지만 출판사와 서점업계의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편견이 짙게 배어있는 탓이기도 하다. 스테디셀러가 된 뒤에야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니 필자의 독서 생활은 늘 시대의 흐름에 한발짝 뒤처져 있는 늦게 일어나는 새 꼴이다. 이런 필자의 못된 독서 편식 때문에 놓친 책이 있다. 바로 <안철수의 생각>이다. 열풍을 넘어 광풍이 불었던 베스트셀러인데도 자칭 '책 블로거'라는 필자의 의연함도 때론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이 책에 전혀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다. 출판업계의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웠다는 보도에서 보듯 <안철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은 차고도 넘쳤다. 각종 방송과 신문은 물론이고 블로그와 카페에서도 <안철수의 생각>은 그야말로 광풍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저자인 안철수 교수가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다보니 책에 대한 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렸다. 필자의 엿보기도 예외는 아니다. 거의 대부분 <안철수의 생각>을 옹호하는 서평들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래도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에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톰소여와 허클베리핀의 작가 마크 트웨인(Samuel Langhorne Clemens, 필명 Mark Twain, 1835~1910, 미국)이 고전의 정의를 내렸던 것처럼 관련 글들을 하도 많이 읽어서인지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여태 읽어보지 못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언제나처럼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새벽에 퇴근해서 조간신문을 훑어보고 블로그를 한답시고 컴퓨터를 켜던 중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었다. 경향신문 특별 심포지엄 기사였다. 지난 4일 경향신문 대회의실에서 열린 심포지엄 내용을 장장 4면에 걸쳐 '한국정치와 안철수'라는 특집기사로 싣고 있었다. 필자 나름대로 관심있게 읽은 기사이기도 하고 한 면을 할애해 안철수 교수의 책 <안철수의 생각>을 주제로 토론한 내용을 싣고 있어 예정된 포스팅을 중단하고 소개해 보고자 한다. 특히 책 <안철수의 생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들이 소개돼 있어 <안철수의 생각> 뿐만 아니라 잠재적 대권주자인 '안철수의 생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않을까 싶어서다.

 

 

우선 경향신문의 정치적 성향을 대변하듯 이 특집면의 기사제목은 "여야 후보 중 이처럼 한국경제의 미래를 정리한 사람은 없다"였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한 말을 옮긴 것이다. 이병천 교수는 <안철수의 생각>에 담긴 안철수 교수의 경제 인식을 두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공멸의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과 양극화가 심화된 이유로 경제기득권의 과보호 구조 즉 '삼성동물원'으로 표현되는 재벌 독식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안철수 교수는 '경제정의론'으로 한국경제 새판짜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본다.

 

또 하나 이병천 교수가 주목한 것은 안철수 교수가 추격자 전략에서 선도자 전략의 전환도 제시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즉 지난 50년간 썼던 추격자 전략이 수명을 다했고 이제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선도자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병천 교수는 경제의 구체제도 극복하면서 경제민주화도 이루고 선도자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민주화 이후의 '물탄 민주주의'에서 서민 대중이 패배자의 처지로 떨어진 기막한 '민주화의 역설' 상황을 돌아볼 때 매우 소중하다는 말로 <안철수의 생각>이 가지는 의미를 평가한다.

 

이상이 제주대 교수의 생각도 이병천 교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안철수 교수가 한국형 복지국가의 담론과 주요 정책을 충분히 그리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감탄이었다'는 말로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다. 한편 이상이 교수는 '안철수 현상'의 원인을 제시하고 '안철수 현상'은 대선 이후 민주당의 혁신과 새로운 복지국가 정당정치 질서를 창출하는데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민들은 안철수를 새누리당의 대안이 아닌 민주당의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안철수 교수가 말한 구체제의 혁파는 민주당의 혁신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찮다. 개혁성향 경제학자 출신인 민주통합당 홍종학 의원은 '안철수 원장은 메시아가 아니다'란 말로 일갈한다. 안철수 원장이 지지도가 가장 높아서 대통령이 된다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단언한다. 고려 무신 경대승을 예로 들면서 인기가 높아지면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무신 30명으로 나라를 경영하겠다는 무모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한편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안철수의 생각>에 담긴 보편적 증세론에 문제를 제기한다. 증세 담론은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조세 정의 차원에서 증세가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잘못 이해하면 불필요한 반발만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문진영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안철수의 생각>을 정제된 언어로 상식적 내용을 담은 교과서라고 폄하(?) 하면서도 이 상식적인 이야기가 지형을 바꿀 만한 힘을 가진 것은 결국 '힐링'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자리가 없어 고민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안철수라는 상징을 통해 기댈 언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안철수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이병천 교수도 책 내용 중 안철수 교수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모델은 10개 중 1개만 성공한 모델인데 한국경제의 미래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 상태에서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나오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공황상태가 된다는 말로 '안철수 현상'의 파괴력을 강조한다. 

 

필자가 이런 기사에 빠져 있으니 '읽지도 않고 다 읽어버린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흔히 쓰는 말 중에 '출판정치'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정치인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가장 쉽게 또 가장 흔하게 쓰는 선거전략이 출판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생각>은 이런 기존의 관념을 하루 아침에 바꿔버렸다. 앞서 언급했듯이 책 <안철수의 생각>이 잠재적 대권주자 '안철수의 생각'으로 등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철수 현상'을 무서워하는 정치인들은 안철수 교수가 정치 경험이 없음을 두고 갖가지 단어를 동원해 폄하하기에 바쁘다. 속된 말로 '개판이 된 한국정치'의 주범인 그들이 말이다. '안철수 현상'은 어찌보면 비정상적인 것 같지만 한국정치의 현실과 하루에 하나씩 희망을 잃어가는 서민들을 볼 때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안철수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서민경제의 회복과 정치개혁이 절실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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