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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정치 블로거가 말하는 좋은 대통령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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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임병도/책으로여는세상/2012년

 

바람이 불었다. 울분의 눈물이 섞인 뜨거운 바람이었다. 그러나 눈물만 흘린 채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저 억울한 눈물만 쏟아내기에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교과서 속 세계와는 너무도 다르다는 게 훤히 보였다. 사람들은 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그 바람에 노란 희망을 담았다. 그렇게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탄생했고 나도 오백 몇 번째의 회원이 되었다.

 

또 바람이 불었다. 광풍이었다. 그야말로 난도질이었다. 제 잘난 멋에 사는 진보는 진보대로, 제 뒤 구린줄 모르는 보수는 보수대로 주먹을 날리고 그 주먹에 쓰러지면 일어설 마지막 힘이 다 소진될 때까지 밟고 또 밟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네 뇌 속에 즐겨찾기된 빽도 줄도 그 흔한 학벌도 변변찮은 촌놈이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게 싫어서였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못한 채 그 바람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정치에 남다른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저 바람이 부는대로 그 바람이 어떤 바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벼운 내 몸을 맡기고 있었다. 며칠 전 나는 들키고 말았다. 내가 노란 바람에 실려갔다가 뒤에 불어오는 광풍을 말없이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던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문재인과 노무현을 연호하고 있지만, 과연 그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가진 정치 철학과 비전 그리고 실제적인 정책을 알고 있을까? 단언하건대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들의 허상적인 이미지를 보고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놈놈놈> '에필로그' 중에서-

 

임병도. 낯설다. 아니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이다. 괄호 안에 '아이엠피터'라고 넣어줘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니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하루에 한 번쯤은 그의 블로그를 방문하니 내가 그의 이웃이라기보다는 그의 팬이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블로거 '아이엠피터'를 굳이 소개하는 일은 뱀꼬리 그리는 것과 매한가지일 게다.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누리꾼이라면 한번쯤은 방문해 봤을 파워블로거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는 정치 시사 전문 블로그'라는 설명이 붙은 그의 블로그를 '대안언론으로써의 1인 미디어의 미래'라고 소개한다면 지나친 덕덤일까? 분명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달필은 아니지만 하나의 포스팅이 완설될 때마다 상상하기 어려운 분량의 자료를 모으고 분석한 고민의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블로그 글을 모아 <놈놈놈>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내놓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굳이 그가 내키지 않은 책을 내면서까지 독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이야기는 무엇일까.

 

저자의 블로그를 방문할 때마다 눈에 띄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바로 현재 민주통합당 대선주자 중 한 명인 문재인이다. 그는 당당하게 말한다. 오래 전부터 문재인을 대통령 감으로 생각했다고. 2012년 12월을 바라보며 내린 결론은 문재인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한다. 저자가 문재인을 현실 정치인 중 유일한 대통령 감으로 생각하는 데는 멀리 참여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정치권과 언론에게는 버림받았지만 국민들에게는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노무현 전대통령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는 올바른 정치를 보았다고 한다. 그는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정책들에 대해서도 좋은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실패했을 뿐 결코 나쁜 정책들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노무현은 부와 권력을 독점한 노련한 정치인만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을 바꾸어 놓은 인물로 평가한다. 저자가 문재인을 대통령 감으로 점찍은 것은 바로 이런 노무현의 '원칙과 상식의 정치'를 추진할 유일한 사람으로 봤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가케무사가 아니다. 문재인은 노무현이 보여주었던 원칙과 상식의 정치를 똑같이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하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 곳에서, 너무나 많은 상황에서 상식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을 무조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 보여주었던 '원칙과 상식의 정치 철학'을 끌고 갈 다음 주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자는 다르지만, 그 주자들이 가야 하는 목표는 같은 결승점이다. -<놈놈놈> 중에서-

 

그렇다. 저자가 꿈꾸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는 비단 저자만이 꿈꾸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땀 흘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보다는 온갖 편법과 아부와 비리와 부정으로 점철된 사람들이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자리를 꽉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꿈과 희망을 얘기하지만 그들만의 리그일 뿐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저 머릿 속에만 존재할 뿐 가슴으로 느끼지 못할 꿈과 희망인 것이다. 어느 여론조사를 보니 우리나라 국민 중 90% 이상이 현재의 위치에서 '신분 상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단다. 이유는 한가지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원칙과 상식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너진 원칙과 상식을 다시 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으로 문재인을 선택한 것이다.

 

아이엠피터의 <놈놈놈>은 이런 '원칙과 상식'을 기준으로 최근 몇 년간 화제가 됐던 정치인들에 대한 냉정하고 냉철한 평가를 내리는 책이다. 문재인을 비롯해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결정된 박근혜와 멀리는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현직 대통령인 이명박까지. 여기에 정치를 희화화시킨 강용석과 전여옥과 김문수, 서울시장 재선거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박원순과 오세훈, 나경원까지. 어느 분야보다 '원칙과 상식'이 기준이 되어야 할 법조계의 주요 인물들도 빼놓지 않았다.

 

저자가 스스로 문재인 지지자라고 밝혔다고 해서 다른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가 왜곡되고 편향되었다고 평가한다면 오산이다. 저자의 글쓰기는 '~카더라'식의 제도권 언론의 보도와는 분명 차별화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해 철저하게 팩트(사실)를 근거로 했기 때문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대한 평가는 저자의 개인적인 평가와는 다르게 읽는 독자의 몫이기도 한 이유다. 필자가 책에 소개된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를 일일이 소개하지 않는 것도 팩트를 근거로 진실을 찾아가는 저자의 글쓰기를 전적으로 신뢰해서다. 직접 읽어보고 나름의 평가를 내려보기 바란다.  

 

한편 저자가 제시한 '원칙과 상식'은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선택의 조건이기도 하고 관전법이기도 하다. 저자는 말한다. 선거는 '최상의 후보가 아닌 최선의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이 지구상 어디에도 최상의 후보는 없다. 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선거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말은 정치에 무관심한 자기변명일 뿐이다. 우리 일상 중에 정치와 무관한 일상이 얼마나 되겠는가. 누가 돼도 똑같다고? 천만의 말씀. 투표하면 바뀐다. 이것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의 상식이다. 

 

반값 등록금을 시행 중인 서울 시립대 복학생들이 등록금 '0원'이 찍힌 '꿈의 고지서'를 받게 된다. 서울시립대는 지난 1학기에 복한한 학생 328명에게 2학기 등록금 '0원 고지서'를 발급했다고 19일 밝혔다. …중략… 군 입대로 2010년 1학기에 휴학을 했다가 올해 1학기에 복학한 이수연씨(23·조경학과)는 "제대 후 취업 걱정도 크지만 대학생이니만큼 유학이나 여행 등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며 "등록금 부담이 사라져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것저것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2년 8월20일 기사 중에서-

 

저자는 책을 내지 않으려고 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은 계기는 아이들 때문이었단다. 지금 대한민국은 불행하지만 먼 훗날 아이들은 좋은 놈과 나쁜 놈, 이상한 놈을 구별할 줄 아는 엄마와 아빠들 덕분에 행복한 세상에서 살 것이라는 꿈을 꾸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행복한 미래는 서울 시립대 복학생들이 받게 되는 '꿈의 고지서'와도 같은 것일게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행복한 미래는 12월에 있을 부모들의 몫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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