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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히타이트

울리쿰미스, 신화속 부자간 권력투쟁이 상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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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신화>의 저자 사무엘 헨리 후크에 따르면 하나의 신화가 그 기원이 된 장소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례로 설형문자로 새겨진 바빌론의 아다파 신화를 담은 토판이 이집트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또 카드모스 전설이 페니키아 문자가 그리스로 전해져서 서양 알파벳의 원조가 되었다는 것도 신화 확산의 좋은 실례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특정지역의 신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전혀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전승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신화가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산이나 분산의 개념 이전에 신화의 내용이 비슷한 줄거리를 보이는 이유도 될 것이다.

 

 

 

어쨌든 신화의 확산을 보여주는 예로 위에서 언급한 아다파 신화와 카드모스 전설 외에도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주신(신 중의 신)의 탄생 배경이다. 그리스 신화의 주무대는 올림포스다. 이 올림포스에는 그리스 신들이 모여사는 곳인데 이 올림포스의 주인이 바로 제우스다.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주인이 된 배경에는 치열한 부자간 권력투쟁의 산물이다. 또 이 부자간 권력투쟁은 집안 내력이기도 하다.

 

 

 

막내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주인이 된 내력

 

 

 

제우스는 크로노스의 막내 아들이다. 잘 알다시피 제우스의 형제로는 맏형 하데스(지옥의 신)를 비롯해 둘째 형 포세이돈(바다의 신), 첫째 누이 헤스티아(가정의 신), 둘째 누이 데메테르(곡식의 신), 세째 누이 헤라(결혼의 신) 등 6남매 중 막내가 제우스다. 그럼 어떻게 막내인 제우스가 형과 누이들을 제치고 올림포스의 주인이 되었을까.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시간의 신이다. 시간의 의미를 잘 되새겨보면 시간은 세월을 잡아먹는 속성이 있다. 신화는 상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항상 큰 낫을 들고 다니며 시작이 있는 모든 것을 끝나게 만드는 신으로 묘사된 크로노스는 자식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즉 자식을 낳으면 곧바로 삼켜버렸던 것이다. 하데스도 그랬고, 포세이돈,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도 낳자마자 삼켜버렸던 것이다. 이에 불안을 느꼈던 크로노스의 아내 레아는 제우스를 임신하고 있을 때 묘안을 생각해내지 않으면 안됐다. 레아는 제우스를 낳자마자 바윗 덩어리와 바꿔치기를 해서 제우스를 살려냈다. 여기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 크로노스가 삼켜버렸던 다섯 명의 신들도 그리스 신화 속에서 여전히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지 않은가.

 

 

 

청년이 된 제우스는 늘 자신에게는 형제가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단다. 결국 자신이 혼자일 수밖에 없는 내력을 알게 된 제우스는 형제들을 살려내기 위한 묘책을 강구한다. 신들이 먹는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신들이 먹는 술인 넥타르에 구토제를 넣어 크로노스가 먹고 토해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여태 형제들이 살아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르지만 신화에서는 가능한 얘기다. 구토제를 넣은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먹은 크로노스는 기존에 삼켰던 형제들을 모두 토해내고 만다. 낳자마자 삼켜버렸으니 제우스의 형이요 누이들이지만 크로노스가 토해낸 남매들은 태어날 때 그대로 영아 상태였으니 호적이야 복잡해 졌지만 현실적으로 제우스가 신 중의 신이 될 수밖에. 결국 크로노스는 제우스에 의해 지옥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몰아낸 데는 아마도 집안 내력인 듯 싶다. 우리말에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듯이 크로노스도 제우스처럼 아버지를 몰아내고 신의 제왕 자리를 꿰찼으니 말이다. 크로노스의 아버지는 우라노스로 하늘의 신이다. 어머니는 가이아로 대지의 신. 그런데 우라노스는 아이를 어지간히도 싫어했나보다. 자식을 낳기만 하면 가이아의 몸 속에 숨겨버렸다고 한다. 제우스처럼 아버지의 만행에 도전장을 내민 장본인이 바로 크로노스다. 크로노스는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버렸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신화 속 한 장면이 등장한다. 우라노스의 성기가 잘린 핏방울에서 복수의 여신들이 태어난다. 한편 또 다른 피는 멀리 바다에까지 떨어져 흰 거품을 만들어냈고 이 거품에서 태어난 신이 바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라고 한다. 그 유명한 조가비 위의 '비너스의 탄생'이 바로 이것이다. 비너스는 아프로디테의 로마식 이름이다. 

 

 

 

또 하나의 부자간 권력투쟁, 울리쿰미스 신화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 딱 들어맞는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의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에 이르는 삼대의 집안 얘기를 먼저 꺼낸 데는  힛타이트의 울리쿰미스 신화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신화의 확산을 설명해주는 또 하나의 예가 아닌가싶다.

 

 

 

먼저 힛타이트에 대해 설명하자면 세계사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지금의 흑해와 에게해, 지중해로 둘러싸인 아나톨리아 지방과 시리아 북부 지역, 레바논에 걸쳐 존재했던 고대제국으로 기원전 18세기에서 기원전 8세기까지 존재했던 왕국이다. 서쪽으로는 그리스 문명에 접해있고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맞닿아 있다. 힛타이트 제국하면 가장 유명한 것으로 전쟁시 전차를 잘 이용했다고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헷족속'이 바로 힛타이트 제국이라고 한다.

 

 

 

제국이 존재했던 시기로 볼때 힛타이트 신화가 그리스 신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스 신화는 힛타이트 신화를 비롯한 중동, 메소포타미아 신화 뿐만 아니라 이집트 신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 신화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울리쿰미스 신화의 주된 내용은 부자간 왕위쟁탈전의 연속이다. 힛타이트 신의 계보를 보면 알라루스, 하늘의 신 아누스에서 쿠마르비스, 폭풍신으로 이어지는데 이들은 모두 부자지간으로 각각 왕위쟁탈전을 통해 최고의 신에 오르게 된다. 먼저 아누스는 그의 아버지 알라루스를 왕좌에서 밀어내고 최고의 신이 되는데 아누스는 또 아들인 쿠마르비스에 의해 왕좌를 빼앗기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를 물리치고 최고의 신에 등극한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쿠마르비스는 아버지 아누스와 격렬하게 싸우다가 아누스의 생식기를 물어 정자를 몇 개 삼키고 만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신이 폭풍신이다. 족보가 애매하다. 폭풍신이 아누스의 손자인지, 아니면 쿠마르비스의 아들인지......어쨌든 쿠마르비스의 몸 속에서 났으니 쿠마르비스의 아들이라고 치자. 어쨌든 또 등장하는 부전자전의 진리. 쿠마르비스는 폭풍신에 의해 왕좌에서 물러나게 되는데 쿠마르비스가 폭풍신을 없애기 위해 탄생시킨 신이 바로 울리쿰미스다.

 

 

 

쿠마르비스는 바다의 여신에게 부탁해 자신의 씨를 대지의 여신에게 뿌려 울리쿰미스라는 아들을 얻게 된다. 신화의 세계는 늘 상상 그 이상이다. 울리쿰미스가 자란 곳은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처럼 세상을 어깨로 떠받치고 있는 우벨루리스라는 신의 어깨다. 이곳에서 울리쿰미스는 거대한 바위 인간으로 자라게 된다. 울리쿰미스는 날이 갈수록 거대하게 자라고 있지만 정작 우벨루리스는 이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하늘의 신들이 이를 지켜보며 위협을 느끼게 된다. 특히 폭풍신의 아내 헤바트는 그녀의 신전이 흔들리자 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울리쿰미스를 제거하기 위한 전쟁에 돌입한다. 결국 모든 신들이 동원된 전쟁에서 폭풍신은 울리쿰미스를 물리치고 다시 지상의 최고의 신으로 등극한다. 

 

 

 

결코 주인공이 아닐 것같은 이 이야기를 울리쿰미스 신화로 명명하는 데는 인류의 파멸을 막으려는 신들의 전쟁에서 울리쿰미스가 인류를 위협하는 상징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지 싶다. 그렇다면 신화에서는 왜 이렇게 부자간 권력투쟁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일까.

 

 

 

우선은 고대로부터 이어온 권력세습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상징으로 보인다. 신화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은유적 서술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또 하나는 비인륜적 인간에 대한 희화는 아닐지 싶다. 어느 시대에도 있었던 권력투쟁의 생생한 현장이 신화를 통해 재연된 것은 아닐지....그러나 신화에는 정답이 없다. 신화에 대한 해석은 오로지 신화를 읽는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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