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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핵가족 시대 가족과 부부의 의미를 되짚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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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의 <왜 옆집 부부는 늘 건강하고 행복할까요>/2011년

 

인터넷을 검색하다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전북 농업기술원이 1~3kg의 미니수박 출하를 앞두고 있다는 기사였다. 농산물 품종개량 소식이 그리 놀라울 것 없는 세상이지만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핵가족 시대에 안성맞춤이라는 기사제목이었다. 기술원측의 의도된 보도자료인지 아니면 담당 기자의 탁월한 센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세태를 잘 반영한 기사제목으로 보인다.

 

맞춤식 과일이 출시될 만큼(?) 핵가족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화요 더욱 더 분화될 수밖에 없는 미래의 가족 형태다. 미국의 인류학자 G.P 머독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핵가족(核家族, nuclear family)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소가족이 독자적인 가구를 구성하고 있는 집단적 구성단위로 산업화와 근대화의 과정에서 생긴 개인주의의 발달로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가족 형태라고 할 수 있다.

 

3~4대가 함께 집단을 이루며 살던 전통적 개념의 대가족이 분화된 형태로 나타난 핵가족이 최근에는 개인 취향과 경제적 이유로 분화를 거듭해 1인 가구와 자녀가 없는 부부 중심의 2인 가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향후 2035년에는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비중이 전체 가구의 50%를 넘어 인구감소추세와 별개로 가구수는 더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도연의 <왜 옆집 부부는 늘 건강하고 행복할까요>는 핵가족 시대 가족과 부부의 의미에 대해서 되짚어보는 소설이다. 유명스타들의 이혼 소식이 한낱 가십거리에 불과해질 정도로 가족의 구성과 해체가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그래도 부부와 가족의 문제는 한 사회의 건강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핵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분화인 동시에 느슨해지고 있는 사회적 결속력의 해체로 이어진다. 저자가 제목으로 대신한 옆집 부부에 대한 또는 가족에 대한 주인공 의 막연한 부러움을 통해 부부와 가족 더 나아가 현대사회의 고독한 자화상을 엿보게 된다.

 

주인공 부부의 일상은 아빠와 딸의 전화 통화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아빠, 엄마가 또 이상해! 무서워. 빨리 와.”

슈퍼 아줌마한테 전화해. 아빤 내일 아침 일찍 내려갈께.”

아빠, 엄마 남편 맞아?”

 

부부와 가족이라는 끈으로 연결된 이들이지만 각자의 삶에 충실할 뿐이다. 부부란 법적인 요식행위일 뿐 각자의 꿈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셈이다. 대관령에 사는 남편과 강릉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아내. 자동차로 불과 30분 거리에 있는 곳에 살고 있지만 부부의 별거 아닌 별거의 표면적인 이유는 생활고와 자녀의 교육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각자의 욕심 때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 이유에 방점을 찍을 수는 없는 게 최근 1인 및 2인 가구의 증가추세는 경제적인 이유와 개인주의의 심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춤추는 토끼 인형은 이 부부 아니 핵가족 시대 부부의 어두운 자화상처럼 보인다. 배를 누르면 춤을 추고 또 배를 누르면 춤을 멈추는 토끼 인형은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남편과 아내의 서로에 대한 바램이자 욕심이다. 누가 그랬던가! 부부는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나무 순례에 빠져있는 남편과 미용실 확장을 꿈꾸는 아내에게서 이런 부부의 정의가 무색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부부란 과연 어떤 존재여야 할까. 아쉽게도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자살한 아내의 빈자리를 허무하게 바라보며 주인공 그는 부부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모두 썩어 사라져 컴컴한 동굴이 되어버렸는데, 오래 전에 아니 더 오래 전에 불탄 나뭇가지들이 시커먼 옹이로 변한 채 이곳 저곳에 박혀 있었어. 나무는 이미 죽었는데.”

 

발이 없어서 나무를 찾는다는 남편은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서 있는 죽은 고목을 바라보며 죽은 아내의 안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한다. 그 동안 남편과 아내라는 말만 있었지 그 안은 오래 전에 텅 비어버렸던 부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채우려 하지 않았던…. 비로소 없는 아내를 향해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었다. 그리고 딸에게 처음으로 하는 말.

 

여보……미안해.”

……그래. 내일 갈께.”

 

주인공 에게 옆집 부부가 늘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가 아기공룡이라 부른 하루 종일 쿵쿵 거리며 뛰어다니는 옆집 아이. 아기공룡 때문에 알게 된 옆집 부부의 남편은 하우스(도박장)를 지키는 일을 하고 아내는 식당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었다. ‘가 가구를 옮겨가면서까지 엿들은 옆집 부부의 일상은 서로에게 욕을 하고 집안 가구들을 집어던지고 그리고는 사랑을 나눈다. 어쨌든 서로의 안을 채워가는 옆집 부부에 대한 부러움은 결코 커 보이는 남의 떡만은 아닌 것이다.

 

짧은 대화를 끝으로 강릉의 아내 집에서 대관령으로 넘어와 술 한잔 하고 깨어나보니 자동차가 오가는 교차로 한가운데 화단에서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토끼가 무사함을 안도한 그에게는 평범한 옆집 부부와 가족의 일상이 아주 특별해 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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