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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분단이 잉태한 또 하나의 수난 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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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의 <포구의 황혼>/1987년

이원규의 소설 <포구의 황혼>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하근찬의 소설 <수난 이대>(1957년)를 떠올리게 된다. 일제 강점기 말기 징용에 나가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 만도, 만도의 아들 진수는 한국전쟁에서 한 쪽 다리를 잃게 된다. 외나무 다리에서 만도가 아들 진수를 업고 건너는 마지막 대목에서는 서로의 팔과 다리가 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부자의 현실에 가슴 찡한 감동이 몰려온다. <수난 이대>가 수난의 원인이 전쟁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로 다른 시대에 의한 피해자들인데 반해 <포구의 황혼>은 고착화된 분단이 만들어낸 비극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 비극이 대물림된다는 점에서 <수난 이대>와는 또 다른 형태의 비극을 보게 된다.

2011년 12월25일 광주고법에서는 의미있는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납북 어부 간첩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재판에서 재판부는 당시의 간첩사건이 불법구금과 고문, 가혹행위를 통한 허위자백의 결과로 무죄선고와 함께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사법주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억울한 피해자를 낳은 것에 대해 사법부의 일원으로 깊이 사과한다'는 재판장의 판결문 낭독이 있었다. 권위주의 시대 국가와 사법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 참회의 순간이었다.

이원규의 <포구의 황혼>은 분단과 전쟁으로 실향민이 된 아버지가 어업 중 납북되어 귀환하지만 요주의 인물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만 하는 아들인 내가 아버지와 사이에서 겪는 갈등과 화해를 다루고 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인 나와 아버지가 화해하는 장면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분단의 비극을 가장 처절하게 보여주고 만다. 

그저 힘겨운 삶을 꾸려가기 위해 고단한 나날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러나 어느 체제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바로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시대 납북 어부들이었다. 체제 수호라는 명목 하에 수십년간 간첩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연좌제의 굴레 속에서 비극은 대물림되었다. 특히 소설 속 아버지는 실향민으로 납북됐다 귀환한 후 남쪽 체제에서는 그를 '용공 요시찰 인물'로 지정하기에 충분한 명분(?)이 있었을 것이다. 간경병증과 실어증에 걸려있어 자신마저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용공 요시찰 인물'이라니 이보다 더 가혹한 국가폭력이 있을까.

19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동안 횡횡했던 간첩조작 사건에서 그 대상이 가난한 어부들이었다는 점은 정통성없는 권위주의 정권의 비열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부 차원의 반성은커녕 그 후손과 추종자들이 정권을 유지하고 있으니 역사의 반복치고는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다. 어쨌든 소설 속 나는 북쪽에 두고온 가족을 잊지 못하고 이런 이유로 납북되어 돌아온 후 '용공 요시찰 인물'이 되어버린 그래서 산산히 파괴돼 버린 가정의 가장 역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버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북쪽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찢어버린 나의 행동은 대물림되는 비극적 현실에 대한 강한 저항이다.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나와 아버지의 대립은 한사코 동행하고자 하는 아버지를 말릴 수 없어 나간 조업에서 극적인 화해를 하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개인적인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승화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북한 땅이 보이는 서해 최북단 바다에서 아버지는 북쪽으로 편지를 띄워보내고 싶다며(수첩에 적어 보여준다) 사이다병이며 콜라병에 편지를 한장씩 넣어 준비해온 것이다. 우리쪽 군인에게 발각되는 날에 그나마 생계수단인 조업 허가권마저 취소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나는 결코 허락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실어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의 고통스럽게 토해내는 말에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진다.

"그…때…그그…애들을…마마…만…났다. 거…거기서…배배…를…타고…살구…있었…다. 용…용규…야, …마…마마…마지막…소…소소소…원이다."

이 말에 나는 왜 무모한 짓을 감행하고 말았을까. 수십년 세월을 흘러 고착화 되어버린 분단 현실 속에 아버지의 허황된 꿈이 가족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고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아버지의 꿈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닌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임을 인식되는 순간이다. 한편 독자에게는 분단 현실이 가져온 중첩된 비극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아버지와 나의 화해의 순간을 역사의 비극으로 전환시키는 대목은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다.

분단이 남북의 체제 대립뿐만 아니라 남쪽 체제 내에서도 또 다른 갈등과 반목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결코 영속되어서는 안될 분단의 아픔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내가 또 다른 시련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엄청난 일을 감행하고 돌아온 포구에는 황혼이 잦아내리고 있다. 황혼은 분단이 빚어낸 모든 모순들을 어둠 속으로 담아 쓸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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