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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그들은 왜 평화극장을 무너뜨려야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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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순의 <무너진 극장>/1968년

1960년 4월 26일 오전 11시. 라디오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돌아와서 우리 여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로 시작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은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월 혁명의 승리를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는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고, 3.15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고, 만일 국민들이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이 있기 하루 전인 4월 25일에는 전국대학교수단이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평화 시위를 벌였다. 사태가 이렇게 확대되자 정부는 경비계엄령을 26일 오전 5시를 기해 비상계엄령으로 바꾸고 경비를 강화했으나 들불처럼 번져가는 시민 혁명에 끝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박태순의 소설 <무너진 극장>은 이승만 정권의 붕괴 직전인 1960년 4월 25일의 기록이다. 1968년 쓰여진 소설이니 그날의 환희에 대한 회상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4.19 혁명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군사 쿠데타를 경험한 저자는 단순히 시민혁명의 승리라는 환희의 기억뿐만 아니라 좌절의 경험을 통해 '혁명은 의연히 진행중'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그날 밤에 우리가 이룩하였던 그 놀라운 긴장감의 파괴를 부정하고 모든 변혁과 가치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물론 우리는 결코 속아 넘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혁명은 의연히 진행중임을 도리어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우리의 시련이 도리어 그때로부터 출발되고 있었던 듯한 느낌으로… -<무너진 극장> 중에서-

소설은 주인공 '나'가 직접 시위대에 참여하면서 보았던 당시의 상황들을 관조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시선은 1960년 4월 25일이 아닌 1968년에 바라본 역사 흐름의 연장선인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그날의 기억을 무너진 극자에 비유했을까? 또 시위대는 왜 하필 종로의 평화극장을 철저히 파괴함으로써 승리의 순간을 만끽하려 했던 것일까?

소설에서 평화극장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상징적 존재다. 소설에서 평화극장은 정치깡패 임화수 소유의 극장이다. '왕초'나 '야인시대' 등의 드라마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임화수는 극장 주변을 맴돌며 활약하던 깡패로 서울의 미나도 극장(평화극장)을 인수한 뒤 훗날 영화계의 대부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의 성장에는 정권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했다. 특히 그는 '반공예술단'이라는 반공예술단체를 조직해 자유당 정권과의 밀월을 더욱 강화하고 독재정권이 자행한 정치테러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4월 시위대에게 평화극장은 독재정권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시위대는 평화극장을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무질서에로의 해방 상태'를 느끼는 것이다. 그들은 오류에 빠진 질서를 파괴하여 인간을 속박시키던 것들을 풀어버리고 구차한 사회생활의 규범과 말 못할 슬픔과 부정부패에 대한 울분을 당돌한 무질서 상태로 만끽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무질서로 표현되는 해방 상태는 거의 광적인 수준으로까지 확대됨을 보게 된다. 이는 4월 혁명을 역사적 시각으로 좀 더 냉철하게 바라보려는 저자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무너진 극장'은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영국)의 '극장(劇場)의 우상'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저자가 의도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베이컨은 그의 저서 <신 오르가논>에서 인간이 버려야 할 편견을 우상(Idol)에 비유했는데 그 중 하나가 '극장의 우상'이다. 극장은 하나의 허구의 장이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지만 관객은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가치를 절대적으로 믿게 된다는 것이다. 시위대가 극장을 무너뜨리려 했던 것은 권력이 극장을 통해 조장했던 왜곡된 절대 가치일 것이다.

무엇인가가 확실히 무너져버렸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파괴된 극장과 함께 과거의 시간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지난 십 년의 시간이 파괴당했다. 과거의 극장은 부서져버렸으나 과연 새로운 극장, 새로운 무대는 어떻게 등장하려는 것인가? -<무너진 극장> 중에서-

그렇게 소설은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날인 4월 26일을 20세기로 들어온 이래 한국에서 가장 긴 하루 중 하나로 기억한다. 저자는 '무질서의 위대한 형식이 역사성 속의 미아처럼 다만 한순간의 고립에 불과하고 말았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여전히 의연히 버티고 있다'는 표현을 통해 당시 위정자와 지식인들이 혁명에 대한 천박한 인식으로 또 다른 독재정권이 탄생하는 빌미를 주고 말았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4월 혁명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진행형임을 결말 부분에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4.19혁명이 있은지 50여 년이 지난 2012년. 그때의 혁명정신은 완수되었을까. 저자가 1968년이 아닌 2012년에 이 소설을 썼다면 '인생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우리의 시련이 도리어 그때로부터 출발되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라는 소설 결말을 과감히 삭제할 수 있었을지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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