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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독서도 혼자보다는 둘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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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관한 잡다한 생각들

새해가 되면 기계적으로 새해계획을 세우게 된다. 누군가는 머리 속에 간직해 두기도 하고, 누군가는 메모를 해서 부적처럼 고이 간직해 두기도 한다. 새해계획을 세우는 데는 무엇보다도 지난 일에 대한 후회가 짙게 자리잡고 있다. 흥청망청 보내는 연말 같지만 끝과 시작의 갈림길에 선 우리들은 미래를 상상하기 전에 본능처럼 뒤를 돌아보게 된다. 기우는 해가 길게 드리운 그림자에 나만의 색을 칠하는 작업은 결코 녹녹치 않은  고역이다. 이런 고역의 과정 중 새해계획은 밑그림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시간보다는 하루가, 하루보다는 한 달이 심지어 한 달보다는 일 년이 쏜살같은 게 우리네 인생이다. 지난 해가 저무는 세모(
歲暮)에 찾은 산에서 나는 2012년을 어떻게 스케치했을까.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캔버스를 어떤 색으로 칠하고 있을까. 돌이켜보면 역시 작심삼일의 유혹은 사탕보다도 달콤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또 해마다 되풀이되는 후회라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작심삼일은 마력과도 같았다. 

못말리는 나의 독서습관

결핍은 늘 욕구를 동반한다.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지만 시간이 주는 틈이 많을 때는 앙증맞은 그릇을 채워가며 허공과 부딪혀 경쾌한 음을 만들어내는 술의 노래가 좋았고, 중년의 수다는 아줌마들의 그것이 무색하리만큼 진한 쾌감을 주는 신선놀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여유가 사라진 지난 몇년 전부터는 그동안 내재되었던 욕구가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독서, 책읽기다.

물론 올해도 거창한 독서계획을 세웠다.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을 읽어볼까, 고전의 세계에 푹 빠져볼까. 한 분야에 나만의 전문성을 키워볼까.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을 모아 모아서 오랫만에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그럴듯한 독서계획을 발표했다. 나만 볼 수 있는 프리젠테이션으로.

역시나 한 달을 채우기도 전에 새해 시작하고 얼마간은 늘 컴퓨터 화면에 노출되어 있던 독서계획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렇게 된 데는 나만의 못말리는 독서 습관 때문이다. 우선은 필이 꽂히면 사고 보는 것이다. 빌려보는 책이  그리 익숙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어렴풋하게 어릴 적 책은 많을수록 좋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이런 습관을 몸에 배이게 한 것 같다. 문제는 사둔 책을 읽을만한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준비도 안되 있다는 것이다. 그저 쌓여가는 책에 행복을 느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언젠가 베스트셀러의 잔상이 끊어질 즘이면 뽀얀 먼지를 털어내고 빛바랜 문자여행을 떠나곤 한다. 

또 특정한 책 하나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재미있어서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특히 책 내용이 이해되지 않으면 시간이 주는 공간을 여기에 올인하고 만다. 다행히 이해력이 좋아 누구의 말대로 백 번을 읽으면 그 책을 통달하게 된다면 모르겠으나 결코 그런 능력을 타고나지 못한 터라 기계적인 반복만 거듭될 뿐이다. 요즘은 어느 신인작가의 짧은 단편소설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읽어도 읽어도 도통 그림이 그려지질 않으니 애먼 머리카락만 생고생이다.  

독서도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

이런 독서습관 때문에 요즘 독서를 주제로 한 오프라인 모임에 부쩍 관심을 두고 있다. 물론 밤에 일하고 낮에 자야하는 업무 특성상 그런 모임 참석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대안으로 서평 블로그나 카페를 자주 둘러보고 신문의 책섹션을 자주 들춰보고 있다. 그 외에도 책과 관련된 사이트들을 모아서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한번쯤 클릭해서 들어가보곤 한다. 한 권의 책을 두고 쏟아지는 다양한 생각들을 섭렵해 가는 과정도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나의 독서습관은 늘 변방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독서를 위한 클럽활동이나 동아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친구들끼리 모여 번외 소모임을 즐겨왔으니 말이다. 요즘 부쩍이나 그때가 그립다. 편협해진 독서습관과 그로 인한 편협한 감상이 나를 경직되게 만들수록 더더욱 그렇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입시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제대로 된 독서토론을 즐겨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대학 시절에는 한 달에 한번 꼴로 벌어졌던 너댓 시간의 독서토론은 여전히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사소한 문장 하나 가지고 서로 티격태격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독서의 진정한 맛이 아닌가싶다. 때로는 강의실에서, 때로는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핀 놀이공원 잔디밭에서, 때로는 가을이 떨어지는 산 속 널찍한 바위에 둘러앉아. 책 읽는 시간보다 더 소중하고 진지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하다. 비록 봄꽃에 취하고 가을단풍에 낭만을 실어보냈던 시간이 더 많았지만 말이다. 

혼자 있어 생기는 병은 있지만 둘이 있어 생기는 병은 들어보지 못했다. 독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혼자만 작은 공간에서 즐기는 독서는 자칫 스스로를 매너리즘에 빠지게도 하고 끝없는 편견의 세계로 몰입하게 할 수도 있다. 책을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책에 쓰여진 감상을 나누는 작업은 책 읽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다.

이제 겨우 한 달일 수도 있고 벌써 한 달일 수도 있다. 매월 말이면 그 달의 독서생활에 대한 단상들을 적어보려고 했는데 1월 한 달을 눈코 뜰새없이 보냈던 통에 뒤늦게 몇 자 적어본다. 부끄럽지만 다시 마음을 재정비하고 작심삼일의 유혹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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