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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다시는 말(言)의 향연에 홀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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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홀린 영혼>/2011

                                                    

아마 5년 전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5년마다였다. 누군가의 말에 홀려 좀비처럼 끌려다니다 5년을 다 채울 즈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삶의 일부는 이미 악취나는 시궁창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5년을 주기로 기억과 망각을 넘나들고 있다. 5년 전 뒷 겨울 우리네 영혼을 홀리고 만 것은 어이없게도 ‘747’이라는 결코 낯설지 않은 숫자이고 말았다. ‘숫자놀음이라는 경박한 단어도 있지만 우리는 그 숫자가 주는 장밋빛 미래에 영혼을 홀리고 만 것이다. 실로 대단한 숫자의 위력이었다.

 

경제성장률 연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그 어디에도 내 삶의 질을 담보해주는 숫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장과 복지는 그렇게 샴쌍둥이처럼 하나의 몸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유려한 말()의 향연이 있었다. 게다가 제 길을 잃은 언론의 이게 다 XXX 때문이라는 집단최면은 누군가의 말의 향연에 정당성까지 더해주었다. 도덕과 윤리는 망각의 박물관에서 먼지가 앉을세라 닦고 또 닦으며 고이 모셔지고 있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또 다시 시작이다. 말의 향연은 잠들었던 초목을 일으켜 세우고 긴 겨울잠에 빠진 동물은 기지개를 펼 것이다. 피아식별이 불가능한 농무(濃霧) 속에서 우리 영혼이 말의 향연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은 크게 뜬 눈, 쫑긋 세운 귀가 전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어느 날 내 친구가 된 이주선은 왕자처럼 귀티가 났다. 반사적으로 내가 더 거지처럼 여겨졌다. 귀티나는 외모는 첫인상일뿐 내가 이주선에게 홀리고 만 것은 그의 말()이었다. 이주선의 말에 홀리고 만 것은 나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뿐이 아니었다. 이주선 스스로도 자기의 말에 홀리고 있었다.

성석제의 소설 <홀린 영혼>에서 앞으로 살아갈 5, 아니 그 이상의 미래를 위해 결코홀릴 수 없는 우리네 영혼을 본다. 주인공 (오세호)’의 친구 이주선은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주인공 엄석대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 이문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에서는 과거 권위주의에 대한 진한 향수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엄석대가 급장이라는 달콤한 권력에 취해 있던 영웅이라면 이주선은 타고난 외모에 탁월한 언변을 주무기로 뭇사람들의 영웅이 된다. 주선 홀릭(holic)이다. ‘홀리다홀릭’, 이렇게 동서의 조화가 이뤄지다니 언어란 참 묘한 여운이 있다.

 

우리는 왜 누군가에게 홀리게 될까. 왜 또 다른 누군가를 홀리기 위해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걸까. <홀린 영혼>5년 전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 놓는다. 공포와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내 삶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비록 그것이 조작되고 조장됐을지언정 누군가의 사탕발림은 마력이 되고 만다. 한편 왜곡되고 뒤틀린 과거의 경험은 누군가를 제압하는 쾌감으로 보상받으려 한다. 주인공 내가 그랬고 이주선이 그랬다.

 

폭력과 갈취로 영역 구분이 된 읍내를 처음 방문했던 나에게 그곳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곳에서 만난 이주선은 나에게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마력이었다. 게다가 그의 나이답지 않은 말재주는 주선 홀릭(holic)의 근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주선 홀릭의 정체는? 이주선의 아버지는 읍내에서 가장 부자였다. 읍내에서 가장 넓고 호화로운 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주선의 아버지는 가난한 사기꾼에 지나지 않았다. 이주선이 쏟아내는 말은 사기꾼의 아들, 천민의 후예라는 멸시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목받지 않고 싶지만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자신이 무해하고 공격적이지 않다는 의미로 실속없는 공상을 담아 온 이야기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누군가의 말에 홀리지 않기를

 

거짓말은 어김없이 또 다른 거짓말을 동반한다. 누군가(뭇사람들)는 누군가(이주선 또는 누군가)의 말에서 어쩔 수 없는 사기꾼의 냄새를 맡는다. 한번 홀리고 만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시기나 질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게 바로 홀릭의 힘이다. 이주선이 참과 거짓을 자유자재로 뒤섞고 가공해 거대한 벌집처럼 복잡한 허구의 세계를 완성하고 있지만 한번 홀리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끝은 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주선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찾아간 장례식장에는 여전히 대통령, 대법원장, 장관, 검찰총장 등의 조작되고 연출된 조화들이 가득했지만 이미 주선의 이마에는 주름이 꽤 생겨 있었다. 그의 재력과 능력이라면 간단한 수술로도 없앴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주선은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의 좋은 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주름은 환상과 이야기라는 흡혈귀에 자신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빨려 생긴 것처럼 보였다. … 주선은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다 하려는 듯 쉴새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향연과 촛불을 배경으로 그 역시 무엇인가를 허공에 피워올리고 있었다. -<홀린 영혼> 중에서-

 

지난 5년을 살아봄에 홀릭의 대가는 너무도 참혹하다. 미래는 현재에 갇혀 버렸고 희망은 여전히 세상의 오물과 뒤섞여 판도라 상자를 두드려 보지만 금속의 기분 나쁜 굉음만이 고통에 고통을 더해주고 있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또 다른 누군가는 표를 구걸하게 될 것이다. 좀 더 솔직해지자. 구걸이라도 하면 예쁘게나 보지 뭇사람들의 영혼을 홀리기 위한 음모가 시작되고 있으니 그대들, 추하다.

 

한 켠에서는 잔다르크가 등장해서 지난 수 년 동안 뭇 영혼들을 홀린 당사자를 자신들의 영역에서 내쫓으려는 작전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었으면서 마치 자신은 지난 날 누군가와는 다르다는 듯이. 고작 이걸 반성이니 쇄신이니 하는 말로 뭇 영혼들을 홀리고 있다. 또 한 켠에서는 누군가가 흘린 떡을 주워먹기에 여념이 없다. 연신 희희낙락이다. 그대들은 지난 5년 동안 누군가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나락으로 내동이칠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시간의 압박은 초조한 마음에 엷은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아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 제 정신이 돌아왔으니 지금 이 순간을 또 다시 허비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누군가의 말()에 홀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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