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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요지경 세상을 조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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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의 <장씨 일가>/1959년

풍자(satire,諷刺)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문학이나 연극에서 사회 또는 개인의 악덕·모순·어리석음·결점 따위를 비웃음, 조롱, 익살스러운 모방, 반어법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비난하거나 때로는 개선하기 위한 의도로 쓰는 예술 형식'이다. 우리의 고전 예술 중 탈춤에서 보여주는 풍자는 그야말로 풍자 예술의 진수다. 지배자의 억압에 대항해 직접적인 저항이 힘든 경우 풍자는 가장 적절한 저항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탈춤에서 양반이 늘 고약하고 우스꽝스러운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위의 사전적 의미에서도 봤듯이 풍자에는 사회든 개인이든 그 대상이 있게 마련이다. 그 대상이 정해질 때 풍자의 표현방식인 해학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통쾌하고 짜릿한 감정적 지지를 유발하게 된다. 그렇다고 풍자문학이 전적으로 확실한 대상을 설정해 놓고 조롱을 하지는 않나보다. 유주현의 소설 <장씨 일가>를 보면 그렇다.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는 풍자소설임이 분명하지만 풍자 대상은 분명하지가 않다. 다만 이 소설이 발표된 시점이 1959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승만을 필두로 한 자유당 정권의 부패상이 비판대상임을 눈치챌 뿐이다. 즉 비판의식은 있으나 구체화시키지 못하고 불완전한 풍자에 그친 점은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아쉬움이다.

소설은 국회의원인 장만중 일가를 구성하고 있는 군상들의 일상을 따라다니며 진행된다. 소위 말하는 권력층의 주변인물들이다. 작가 유주현은 1950년대 시대상을 어떻게 장씨 일가의 일상에 담아냈을까? 저자의 비판의식은 장의원의 아들 장정표와 늘 장정표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강아지 루비를 통해 풀어낸다.

장정표,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울한 시대는 장정표의 신체 상태로 형상화되고 있다. 한편 보지도 듣지도 못한 장정표는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있는 상태로 암울한 시대에 대한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장정표가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은 가족 구성원의 일탈로 묘사되고 있다. 

권력 주변을 기웃거렸던 장정표는 뜻밖에도 군대에서 지뢰 사고로 시력과 청력을 잃게 된다. 장정표가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이 아내 경심은 시어머니의 49제가 있던 날 불륜이라는 비윤리적 행위의 극치를 보여준다. 게다가 그 상대는 바로 시아버지인 장만중 국회의원의 비서 김윤수다. 경심은 자신만이 향유하고 있다고 믿은 권력을 이용해 김윤수를 자기의 남자로 만드려 하지만 김윤수 또한 그런 경심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며 그를 위압하고 굴종시키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경심을 결박했으며, 소리없는 웃음으로 경심을 비웃고 있으며, 특출한 사나이의 힘으로 경심의 윤리적 양심을 짓밟아버린 것이다. 그러고도 언제든지 손 톡톡 털고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계단을 내려오며 경심은 그것이 서글펐다. -<장씨 일가> 중에서-

장씨 일가의 도덕적 타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S고등학교에 다니는 장정표의 동생 성표는 가정부 순자를 겁탈하여 임신까지 시키고 만다. 권력 주변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덕적 타락의 천태만상은 이렇게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루비도 이제는 장정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장정표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그가 키우고 있는 개 루비뿐이다. 장정표의 선택과 상관없이 루비는 늘 장정표 곁을 맴돌고 있다. 그러나 장정표에게 루비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자신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권력의 향수에 젖어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들을 알지 못할 뿐더러 시력과 청력을 잃은 그를 의식하는 가족도 없다. 가족들이 다 모이는 시간, 루비가 기댈 수 있는 무릎 또한 많아질 수 밖에 없다. 더이상 장정표가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장정표는 문득 무릎이 싸늘한 것을 의식했다. 그는 그때서야 루비가 자기의 무릎을 떠난 것을 깨닫고 손으로 주위를 두세 번 허우적거려보다가 하품을 싸악 했다.
"루비!루비!"
그는 어린 동물이 갑자기 귀여워진 모양이다. 연신 그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장씨 일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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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중 의원이 청운각 호화 술집에서 기생을 끼고 의사당을 점령한 X당을 탄압할 새로운 법률을 만드는 정치 공작을 감행하는 장면에서는 자유당 정권의 부패상과 몰락을 암시해 준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건이나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걸로 봐서 저자가 비판의식을 갖고 당시를 목도하고 있으나 직접적인 비판은 피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밤늦게 걸려온 조그만 아이의 장난 전화는 당시의 권력과 권력 주변부를 희화화시켜 버리고 만다.

속된 말로 이보다 더한 콩가루 집안은 없을 것이다. 당시 권력의 부패가 딱 이 정도였으리라. 결국 이 소설이 발표되고 1년 후에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은 몰락하고 만다. 장정표가 시력과 청력을 잃어 당시의 요지경 세상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최근에는 권력이 각종 억압구조를 총동원해 국민들로 하여금 상황 판단을 못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부패한 권력, 국민과 소통을 거부하는 권력은 결코 온전히 유지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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