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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창녀가 청소부를 사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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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태의 <청소부>/1988

 

세상에는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이율배반적인 선전선동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5공화국의 전두환이 그랬다. 그는 12·12 쿠데타를 일으켰고 수많은 광주 시민들을 학살했으며 양심있는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았고 심지어 갖은 탄압과 고문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제5공화국의 4대 국정지표 중 하나가 바로 '정의사회 구현'이었다. 그뿐인가. 전두환이 만든 당의 이름은 '민주정의당'이었다. 결코 정의롭지 못했던 아니 가장 불의했던 정권이 정의를 외친 것이다. 언제나 맑고 숭고하다고 여겼던 단어 하나가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동안 그렇게 믿고 살았던 소시민들도 동시에 나락으로 추락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때 담양 추월산 아래 대장간에서 시우쇠를 다루는 대장장이었으나 지금은 광주시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차남수가 보는 세상은 결코 정의롭지 못한 사회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불의한 세상에 눈을 감아주기를 강요받는다. 그가 부정한 세상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이라곤 쾨쾨한 냄새가 진동하는 쓰레기들을 손으로 허무는 게 고작이다. 문순태의 소설 <청소부>는 청소부 차남수의 눈으로 부정하고 불의한 세상을 고발하고 있다. 한편 차남수와 애인 순자의 순애보는 부정한 사회에 대항하는 힘과 의지의 원천으로 상징화된다.

부정한 사회를 고발하다


소설 <청소부>에서 고발하는 70,80년대 부패한 사회상은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긴다. 마치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출발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액의 등록금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대학들이 상아탑으로서의 역할이 상실된 태생적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 등장한다. 청소부들이 쓰레기를 야적해 두는 곳은 지정된 쓰레기 하치장이 아닌 주택가 공터다. 벽돌공장 사장이 이곳에 학교를 짓기 위해 쓰레기 수거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업체 관리자를 매수해 집값을 내리려는 수작인 것이다.

벽돌공장 사장이라는 작자는 공장 언저리의 널따란 공터를 쓰레기로 메워 학교를 짓는다고 했다. 빌딩들이 자꾸 올라가는 바람에 느긋하게 돈을 번 그는 벌써부터 학생 일인당 일년 동안에 받아들일 돈 액수부터 셈하고 있는 것이었으며 쓰레기를 덮어 주택을 한 집, 두 집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었다. -<청소부> 중에서-

뿐만 아니다. 쓰레기 수거 업무의 민영화로 인한 대량해고사태, 취직을 댓가로 상납해야 하는 뇌물과 생활고 때문에 쓰레기로 버려진 유아 사체, 농지의 대리경작 등 오늘날과 유사한 부정과 불의가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만 간다. 이런 부정과 불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소시민들이다.

그런데 지금 남수는 쾨쾨하게 냄새를 피우는 쓰레기 더미를 그 불도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불도저가 방울재를 깔아무지르듯 부와 쾌락의 찌꺼기들인 더러운 쓰레기 더미가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들을 밀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청소부> 중에서-

창녀가 청소부를 사랑한 이유

소설 <청소부>의 주제의식은 창녀와 청소부의 순애보로 상징화된다. 창녀인 개나리 하숙옥의 순자와 차남식은 연인 사이다. 폐병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순자에게 유일한 낙은 애인 남수를 보는 것이다. 할일없이 떠돌던 남수에게 청소부라는 직업을 구해준 이도 순자다. 그렇다면 순자는 왜 하필 남수를 사랑해야만 했을까? 
소설에서 창녀인 순자와 청소부인 차남식은 사회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소외된 기층민중들이다. 또 등장하지는 않지만 소설 전개의 핵심 인물인 길자도 식모라는 소외계층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결국 순자의 남수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연대의식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복지개념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사회 안전망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피폐해진 소시민들의 삶은 단순한 개인적인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회와 국가의 부정과 불의의 결과물인 것이다. 

남수는 어젯밤 순자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을 때 지붕을 덮어버릴만큼 쌓올려진 하치장의 쓰레기 더미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 쓰레기의 쾨쾨한 썩은 냄새가 찌누르는 압력 때문에 순자가 가슴 답답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당장 쓰레기 더미를 까무느고 싶었던 것이다. -<청소부> 중에서-

청소 하청업체 감독이 청소부들을 시청 광장에 모아놓고 새마을 운동의 의미를 연설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의한 정권에 대한 풍자가 엿보이기도 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정의사회 구현'이 있었다면 요즘은 '공정한 사회'라는 말이 많이 회자된다.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은 아니다. 권력에 의해서  주입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친재벌, 소수특권층을 위한 국가정책과 완전히 상반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소설의 제목 '청소부'는 국가의 부정과 불의와 불공정에 맞서 싸우려는 소시민들의 의지이자 희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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